'열수분출공'과 '푸드코트'의 쉬운 우리말은 무엇일까
과학관·천문대 속 우리말 ③
무척추동물은 '민등뼈동물'
동위원소는 '같은자리원소'
산도는 '출산길' '분만길'로
지난달 21일 찾은 국립과천과학관에는 다양하고 유익한 주제별 전시와 해설 영상이 마련돼 있었다. 볼거리가 워낙 많아 6월 28일치에 이어 과천과학관 속 쉬운 우리말 두번째 기사를 쓰게 됐다.
‘한자 세대’에게도 어려운 과학 용어
2층으로 올라가니 푸드코트(food court)가 있었다. 푸드코트는 경기장, 놀이공원, 대형 할인점, 백화점 따위의 내부에 식당이 모여 있는 일정한 곳을 말한다. 영화 용어 및 언론 외래어 순화 고시 자료를 보니 푸드코트 대신 ‘먹을거리 장터’ ‘식당가’로 순화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라이브진화센터로 발길을 옮겼다. ‘탐구의 장’ 안내도를 보니 동선에 따른 전시 순서를 잘 설명해두었다. 도입부, 생명의 탄생, 진화의 핵심 사건, 유전자와 변이, 성과 유전적 조합, 환경과 자연선택, 탐구교실 순서 등을 따라 이동하면 과학 교과서의 관련 단원에 관해 잘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한데 원핵세포와 진핵세포의 차이점을 다룬 설명문은 전반적으로 어려웠다. 과학 용어의 특성상 원리와 이론을 압축해둔 말이 많았고 원핵세포(原核細胞)나 진핵세포(眞核細胞), 소포체(小胞體), 골지체(Golgi體), 원형질연락사(原形質連絡絲) 등의 말은 과학관을 함께 찾은 보호자에게도 쉽지 않아 보였다. 손녀의 손을 잡고 과학관을 찾은 이효철씨는 “한자를 꽤 아는 세대임에도 설명을 대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체험 도구나 그림 설명을 통해 어렴풋이 보고 지나가는 정도”라고 말했다.
시뮬레이션은 ‘모의실험’
골지체는 소포체에서 만든 단백질을 세포 밖으로 분비하거나 막으로 싸서 세포질에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이탈리아의 ‘골지’가 발견해 그 이름을 땄다.
원형질연락사는 식물세포에서 1차 세포벽을 가로질러 이웃하는 두 개의 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작은 구멍을 말한다. 지름은 작지만 수가 대단히 많은데, 이 구멍을 통해 세포 간 원형질이 이동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용어들을 별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이라 생각한다. 상세한 설명은 정보무늬(QR코드)로 확인하도록 하고 가능한 한 일반 안내문은 쉽고 재미있게 꾸미는 것은 어떨까. 같은 맥락에서, 쉬운 우리말에 관한 인식과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사)국어문화원연합회와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에서는 ‘학술용어 정비(순화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상 생명체 진화 시뮬레이션 전시 앞으로 갔다. 시뮬레이션은 복잡한 문제나 사회 현상 따위를 해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실제와 비슷한 모형을 만들어 모의적으로 실험하는 등 그 특성을 파악하는 일을 말한다. 실제로 모형을 만들어 하는 물리적 시뮬레이션과 수학적 모델을 컴퓨터상에서 다루는 논리적 시뮬레이션 따위가 있다. 시뮬레이션의 순화어는 ‘모의실험’이다.
지층은 ‘땅켜’라고도 해요
산호초(珊瑚礁) 지역에 관한 설명을 보자. ‘산호초는 수천 종의 물고기와 무척추동물에게 서식지와 먹이를 공급합니다’라는 설명에서 무척추동물은 민등뼈동물로 바꿀 수 있겠다.
깊은 바닷속에는 해저 지각에서 뜨거운 물과 기체가 차가운 바닷물로 뿜어져 나오는 열수분출공(熱水噴出孔)이 있다고 한다. 열수분출공은 1977년 해저 2500m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생명 기원의 장소로 추정하고 있는 곳 중 하나다. ‘열수분출공’은 말 그대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구멍인데 모양이 굴뚝처럼 생겼으므로 ‘열수굴뚝’이나 ‘뜨거운물굴뚝’이라고 순화해도 좋을 듯하다.
지층 속에서 찾은 생명의 흔적 전시 앞으로 갔다. 지층은 물, 눈, 바람 등의 작용으로 자갈, 모래, 진흙, 화산회 등의 물질이 강이나 바다 밑 또는 지표면에 퇴적하여 이루어진 층을 말한다. ‘땅켜’라고도 한다.
동위원소(同位元素)는 원자번호는 같으나 질량수가 서로 다른 원소를 말하는데 양성자 수는 같으나 중성자 수가 다르다고 한다. 전시를 지켜보던 한 중학생은 “동위원소라는 말은 뉴스에서 자주 들어본 말이라 귀에는 익지만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위원소란 주기율표에서 같은 자리에 있는 원소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같은자리원소’라는 말로 설명을 덧붙여 봐도 좋을 듯하다.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주면 어떨까
인류는 모든 동물군 중에서 가장 나약한 상태로 태어난다. 태어날 당시에는 눈을 뜨지도, 고개를 가누지도 못하는데 이는 좁은 산도와 큰 두뇌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인류의 골반은 직립 시에 발생하는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진화했다. 산도(産道)는 아이를 낳을 때 태아가 지나는 통로로 ‘출산길’ ‘분만길’로 바꿔 쓸 수 있겠다.
전기를 다룬 곳으로 이동했다. ‘태양 빛은 어떻게 전기를 만들까?’라는 질문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물질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데, 이를 광전효과(光電效果)라고 한다. 이때 발생한 전자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전문가들이 과학 용어를 순화하는 것은 참 어려운 작업일 듯싶었다. 광전효과는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순화가 어렵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질 때는 ‘광전효과(빛을 비추면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처럼 주석을 달아주면 좋겠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교수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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