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만에 되풀이된 日 총리 암살..향후 아베노믹스와 개헌은?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지난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현직 총리는 아니지만,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여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수장이 참의원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유세 중 암살당하며 일본 열도도 충격에 빠졌습니다. 일본에서 90여년 만에 되풀이된 이번 사건으로 향후 경제와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도 클 전망입니다.
전후 최초의 前 총리 암살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으로도 총기 규제가 매우 엄격한 나라로 분류됩니다. 한국과 달리 총기 소유 허가를 받으면 총과 탄약을 자택에 보관할 수가 있지만 전직 총리가 총기로 암살 당한 경우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례가 없습니다. 특히 아베 전 총리는 총리직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현직 의원이었고, 일본 정계 막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역사를 2차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에서 정치인이 암살당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당시 총리 역시 1960년 허벅지에 칼을 찔리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1910~1920년대 일본에서 민주주의 사조가 확산되던 일명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도 결국 1930년대 연이은 정치인 암살로 끝이 났습니다.
1930년 11월에는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가 일왕의 통수권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극우파 청년의 총격을 맞았습니다. 직후 사망하진 않았지만 결국 병세가 악화돼 이듬해 8월에 사망했습니다. 1932년 5월엔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관저에서 우익 청년 장교들에게 암살당합니다. 1936년엔 내각 세계 대공황 시기 일본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펼쳐 일본을 대공황에서 제일 먼저 탈출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다카하시 고레키요 대장대신(현 재무상)과 사이토 마코토 궁내부대신이 암살당합니다. 두 사람 모두 암살당할 당시엔 장관이었지만 총리를 지낸 인물들입니다. 일본은 2.26 쿠데타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돌이킬 수 없는 군국주의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불투명한 '세 개의 화살'의 미래
아베 전 총리는 재임 시절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세계 정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 번째가 '아베노믹스'라 불렸던 경제 기조고 두 번째가 공고한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미국과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견제 노선을 구축한 점입니다.
아베노믹스는 △확장적 통화정책 △유연한 재정정책 △노동유연성 등의 구조개혁 등 크게 세 축으로 구성돼있어 '3개의 화살' 정책이라고도 불립니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를 극복하겠다는 기치하에 마이너스 금리와 국채수익률 곡선 통제라는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업이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돈을 빌리고 지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정부가 대규모 인프라에 적극 투자하고 기업들에 대한 적극적인 세제 우대 조치도 시행했습니다.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에서 모두 엇갈립니다. 일부에선 아베노믹스의 구조개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경제 양극화가 확대됐다는 점을 들어 비판합니다. 일본의 국가 부채가 지나치게 늘어났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현재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56%로 G7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2013년 3월 13%였던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 비율은 지난달 말 기준 50%를 넘어섰습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엔화 약세를 통한 일본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역설합니다. 실제로 일본 GDP는 2012년 아베 취임 이후 8.6% 증가했고 닛케이지수의 경우 2012년 9000선에 불과했지만 2015년 2만선을 넘기며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습니다. 특히 일본 경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엄청난 대재앙으로 장기간의 침체 중 최악의 악재까지 만난 상황이었는데, 아베노믹스 정책이 본격 시행된 후 2012년 말부터 2018년까지 71개월 연속 확장했습니다.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아베노믹스 정책은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상왕'으로까지 불리던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운명을 다 할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아베노믹스는 2013년 4월부터 일본은행(BOJ)을 이끌고 있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진두지휘해왔습니다. 아베 전 총리가 2020년 물러난 뒤 총리가 두 번 바뀔 동안에도 계속해서 일본은행 총재로서 금융완화 기조를 고집해왔습니다. '설계자'인 아베 전 총리와 '집행자'인 구로다 총재가 아베노믹스가 계속해서 유지되게끔 만든 것이죠.
반면 기시다 후미오 현 일본 총리는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소위 '건전재정파'입니다. 그런데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추모표까지 더해지며 기시다 내각이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며 기시다 총리의 영향력 또한 커질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 끝이 납니다. 기시다 총리의 입맛대로 금융완화 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사가 새 일본은행 총재가 될 가능성도 커진 것이죠. 이렇게 된다면 아베노믹스 기조 역시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평화헌법과 '집단적 자위권'
아베 전 총리는 2012년 두 번째로 총리 자리에 오른 뒤 8년 간의 재임 기간 중 미국의 반중(反中) 동맹의 핵심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안보협의체)입니다. 쿼드는 사실 2004년 동남아 대형 쓰나미 사태 발생 당시 이에 대한 구호지원 논의 차원에서 처음 창설됐지만 아베 전 총리가 1차 내각 당시였던 2007년 중국에 대항할 경제군사적 연대 필요성을 역설한 뒤에야 비공식적인 전략 안보 대화체로 격상됐습니다.
한동안 유명무실해졌지만 중국 견제를 위해 미·중 무역전쟁까지 피하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수면 위로 올라왔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이를 정상 간 협의체로까지 격상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아베는 쿼드의 재정립과 역할 확대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아베와 트럼프는 쿼드가 사실상 아시아판 나토의 역할을 하길 바랐고, 지금 그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상당 부분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논란이 계속되는 헌법 9조(평화헌법) 개정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평화헌법은 ' ①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에 따라 군대를 보유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의 군대인 자위대의 이름 또한 자국이 침공당할 경우 자위권 차원에서 이를 막는데에만 역할이 한정된다고 이름에서부터 명시한 것이죠.
하지만 2014년 7월 아베 내각은 '주권 국가로서 집단적 자위권을 가지고 있지만 행사하지 않는다'는 역대 내각의 공식 견해를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을 각의결정 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을 바꾼 것입니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아닌 타국, 특히 동맹국이 공격을 받았더라도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무력행사를 할 수 있는 권리로 말한다는 걸 뜻합니다. 예를 들어서 일본 같은 경우엔 미국의 대표적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등에 군대를 파병하지 못했는데,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을 바꾸며 이런 경우에도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베 내각과 여당 자민당은 2015년 9월에는 연립 여당을 구성하는 공명당과 함께 자위대의 활동 영역 확대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규정한 '평화안전법'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동맹국이나 우방국이 공격을 받았을 때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도록 만든 법안입니다. 그리고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아베 전 총리의 오랜 염원이었던 평화헌법 개정을 사실상의 당론으로 들고 나온 상황이었습니다.
자민당, 참의원 선거 압승
자당 소속 최장수 총리가 선거 유세 중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자민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거둡니다. 이번 참의원(일본의 상원) 선거 전 연립여당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석 수는 139석이었습니다. 기존에도 전체 의석인 245석의 과반은 넘은 상태였지만 이번에 7석을 추가합니다. 특히 자민당은 전체 의석의 절반만을 새로 뽑는 이번 선거에서 63석을 확보하며 연립여당인 공명당 없이도 단독으로 과반을 넘는 의석을 확보합니다.
여당 단독으로 개헌이 가능한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개헌에 찬성하는 보수 야당인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의 의석수를 더하면 총 177석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가뿐히 넘깁니다. 이미 하원 역할을 하는 중의원에서도 개헌파 정당들의 의석은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상황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개헌 추진 세력은 내년 중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헌법심사회를 열어서 내후년인 2024년에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안을 발의하고 그 다음해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 당일 방송에서 "가능한 빨리 (개헌안을)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앞으로 3년간 일본에 예정돼있는 대형 선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여당이 국회에서 안정적 과반을 확보한 상황에서 향후 중간선거 성격을 띠는 선거가 없다면 정부 여당에 힘이 실리기 마련인데요. 한 번의 국회의원 선거로 여당이나 총리가 바뀔 수 잇는 내각제를 택한 일본에선 더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 3년 간 대형선거가 없다는 점은 크게 밀어붙일 수 잇는 여지가 커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한·일 관계는 다시 '시계제로'가 될 전망입니다. 지난 5월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거듭 밝혀온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이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 본격 확산 이후 중단돼있던 한·일 양국 무비자 입국제도가 다음달이면 부활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전 총리 암살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그로 인한 자민당의 선거 압승으로 인한 일본의 우경화 가능성이 변수입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한국에 주로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아베파가 약진한 점이 양국 관계 개선에 적신호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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