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비위 직원의 잇딴 승진에 들끓는 대한적십자사
(시사저널=이석 기자)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는 지난해 말 2·3급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계약직 여직원에 대한 성비위 전력이 있는 간부 A씨를 2급으로 승진시켜 내부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시사저널이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대전 동구)을 통해 단독 입수한 적십자의 징계의결서에 따르면, A씨가 팀장으로 있던 특수복지사업소는 2013년 11월 서울 장충동에서 회식을 했다. 간단한 음주를 겸한 2차 자리가 끝나자 A씨는 계약직 직원 B씨만 데리고 서울 신림동의 치킨집으로 향했다. 이때가 밤 11시30분이었다. B씨는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상급자의 요청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A씨는 B씨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주를 먹여줬다. 이후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A씨는 갑자기 한쪽 팔로 허리를, 다른 팔로 어깨를 잡아 B씨를 자신 쪽으로 잡아당긴 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했다.
"얼굴 마주칠 때마다 심리적으로 감당 안 돼"
간신히 뿌리치고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A씨는 다음 날 B씨가 퇴근하기를 기다린 후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고집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참다못한 B씨가 고충처리 부서에 상담을 의뢰하면서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B씨는 문답서에서 "사건 이후 한 달 정도는 출장 등으로 사무실에서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후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치면서 심리적으로 감당이 안 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물론 A씨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그동안의 습관으로 볼 때 안주를 집어줄 수는 있다. 노래방에서도 노래를 잘해 등을 크게 흔들어줬을 수 있지만, 의도나 고의성을 가지고 한 행위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적십자는 A씨의 행동으로 B씨가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느꼈으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고,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할 만한 여러 가지 상황적 사실관계 등을 감안해 정직 3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후 A씨의 직위 역시 해제됐다.
지난해 말 A씨가 2급으로 승진하면서 적십자 내부적으로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이번 승진 인사는 균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내부 공모로 진행됐다. 그동안의 업무추진 실적이나 향후 업무계획서 등을 제출받은 뒤 서류심사와 면접까지 거쳤다. A씨의 성비위나 징계 사실이 전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 측은 "내부 규정이나 절차상 문제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한다. 적십자 인사는 국가공무원법에 준용해 진행된다. 징계 수위에 따라 최대 24개월까지 승진이 제한된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말소 규정에 따라 징계 사실이 인사기록에서 삭제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징계받은 직원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십자 관계자는 "A팀장의 경우 성희롱 사건으로 중징계를 받은 만큼 징계 말소 기간이 7년이었다. 이 징계 기록이 말소되면서 9년여 만에 승진할 수 있었다"면서 "심사 과정에서 업무추진 실적 등을 모두 감안해 승진을 결정했다. 면접관 역시 절반 정도가 외부 인사로 배치했을 정도로 심사는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십자 내부에서는 다른 얘기가 흘러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적십자 관계자는 "A씨 성희롱 사건은 당시 적십자 내에서 큰 이슈가 됐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직위 해제됐던 A씨가 팀장으로 복귀하고 또다시 2급으로 승진했다"면서 "심사 과정에서 어떻게 이런 문제가 걸러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적십자는 2020년 10월 김태광 부산지사 사무처장을 제25대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신 회장의 서류·면접 심사와 중앙위원회 위원 28명의 승인을 모두 거쳤다. 문제는 김 전 총장이 과거 경남혈액원 재직 시절 여성 간호사들에게 성희롱 예방지침을 위반해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다는 점이다. 이때도 징계 사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서 적십자 내부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결국 김 전 총장은 이듬해 3월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됐고, 논란이 커지자 적십자는 김 총장을 해임한 바 있다. 윤정표 적십자 노조위원장은 "신 회장은 김 전 사무총장의 문제에 대해 보고받고도 임명을 강행했다가 논란을 일으켰다"면서 "결국 김 전 총장은 이듬해 3월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됐고,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해임했다"고 지적했다.
적십자 일각에서는 신희영 회장 체제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지적하기도 한다. 기자가 만난 또 다른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8월 신희영 회장 취임 이후 인사 관련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이와 같은 깜깜이 인사가 오히려 적십자 내부의 위화감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지난해 10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을 특보로 발령하면서 국정감사장에 불려갔다. 올해 3월 수혈연구원장 공모 과정에서도 내부적으로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적십자 노조는 지난 5월 보도자료를 통해 신희영 회장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지적하며,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계속되는 인사 난맥상에 직원들도 반발
적십자의 난맥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적십자는 2018년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직원 C씨에게 거액의 급여를 지급해 논란을 빚었다. 15개월간 지급된 급여만 7000만원에 달한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적십자는 C씨를 파면 조치했다. 현재 이 직원과 파면 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적십자 측은 "형사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직위해제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사법부에서 별도로 통보받지 못한다. 당사자가 비위 사실을 숨길 경우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서 "이 때문에 올해 1월1일자로 자진신고 의무를 골자로 규정을 개정했다. 소송 역시 1심 승소 후 2심이 진행 중인 만큼 지켜봐 달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적십자의 성격상 업무를 좀 더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적십자의 경우 대통령이 명예회장이다.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은 만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적십자는 국민의 회비와 헌혈사업 등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어떤 기관보다 청렴성과 공정성이 요구된다"면서 "최근 계속된 적십자의 인사 논란이나 공직기강 해이 문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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