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시기도 재취업도 캄캄" 석탄발전 비정규직 불안한 앞날

김한솔 기자 2022. 7. 1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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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사 2030명 설문조사 결과
정부의 순차적 폐쇄 계획에도
82%는 "정확한 시기 모른다"
경력 많을수록 "재취업 어려워"
국가 주도의 고용 지원책 절실
충남 태안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전남 여수에 있는 호남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정비 일을 하던 40대 노동자 ㄱ씨는 지난해 발전소가 문을 닫기 한 달 전에야 폐쇄 일정을 통보 받았다. 그는 충남 보령에 있는 발전소로 재배치돼 아이 셋과 부인을 두고 혼자 이사를 가야 했다. 회사에서 가족이 함께 살 만한 사택을 지원해 주지 않았고, 당시 살고 있는 지역의 지자체에서 주는 육아지원비 150만원을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첫째 9살, 둘째 7살, 막내가 돌이에요. 셋째가 어리니까 하동이나 여수 쪽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그랬는데 전혀 반영이 안 됐어요.” ㄱ씨가 혼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자 ㄱ씨의 부인은 혼자 아이 셋을 감당해야 했다. ㄱ씨는 재배치 된 지 3달 만에 휴직계를 냈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계획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가 순차적으로 폐쇄되면서 ㄱ씨와 같은 일들을 겪는 노동자들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회공공연구원과 공공운수노조는 11일 발전 5개사(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20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탈석탄 정책과 고용에 대한 인식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 1.91%)결과를 발표했다. 사회공공연구원과 공공운수노조는 정의당 류호정·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의 협조를 받아 지난달 2일부터 30일까지 발전소 폐쇄 시기, 재취업 준비, 기후위기 심각성 인지 정도 등 20개 항목에 응답을 받았다. 지난해 초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와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이 석탄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산업전환 과정에서의 고용실태 조사’ 이후 1년 만에 실시된 후속 조사이기도 하다.

설문에 응한 석탄 발전소 응답자 중 80% 이상은 여전히 자신의 직장이 언제 폐쇄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해 실시된 인식 조사 때와 1년이 지난 올해 실시된 조사에서 발전소 폐쇄 시기에 대한 인지 수준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사회공공연구원 자료집 갈무리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발전소 폐쇄 시기 정확히 몰라…고용불안”

조사 결과 82.2%의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발전소의 폐쇄 시기를 정확히 모르거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소 폐쇄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응답은 17.7%, ‘대략 듣기는 했지만 정확히는 모른다’는 55.6%, ‘잘 모른다’는 26.6% 였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발전소 폐쇄 일정이 이미 확정된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들 중에서도 ‘폐쇄 시기를 정확히 안다’는 답은 20.6%에 불과했다. 사회공공연구원은 “지난 조사 후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발전소 폐쇄에 대해 비정규 노동자 당사자와의 소통과 논의가 부족했음을 방증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79.3%의 응답자들이 ‘고용이 불안하다’고 답했고, 이 중에서도 56.9%는 ‘매우 불안하다’고 했다. 고용불안을 느낀다는 응답은 1년 전 조사(76%)와 이번 조사가 거의 비슷했지만, ‘매우 불안하다’는 답은 19.4%포인트나 증가했다.

석탄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나이대별 고용불안 정도.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일수록 고용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높았다. 사회공공연구원 자료집 갈무리

고용불안은 근무 경력이 10~14년으로 많고 가족 구성원 수가 5인 이상인 경우, 나이가 만 45~49세인 경우 높게 나타났다. 다른 일자리로 이직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29세 이하 젊은 층의 고용불안 정도는 10점 만점에 7.31점, 정년을 앞둔 60세 이상 노년층은 7.64점이었던 데 비해 35~49세 응답자들의 고용불안은 8점대로 더 높았다.

발전소 운영이 중단될 경우 바로 갈 수 있는 일자리가 준비되어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38.2%가 ‘재취업이 불가하다’고 했고, 17.6%는 ‘별도 교육이나 재취업프로그램 후 재취업 가능’, 19.5%는 ‘모르겠다’, 22.9%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재취업 가능’이라고 했다. 재취업이 가능하다는 응답은 29세 이하의 젊은 노동자(40.3%)에서 가장 높았고, 근무경력이 높을수록 적었다.

재취업이 어려운 이유로는 ‘나이가 많다’는 응답이 37.6%, ‘임금 등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다’가 25.7%, ‘지역을 옮기는데 어려움이 있다’가 21.9%, ‘재취업에 필요한 자격이나 기술이 없다’가 14.7%였다.

노동자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재배치는 ㄱ씨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ㄱ씨와 같은 발전소의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ㄴ씨 역시 발전소 폐쇄 한달 전에 통보를 받았지만, 지원책은 여수고용노동지청에서 ‘플랜트 쪽 일자리 알아봤으나 필요 인력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ㄴ씨는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개별적으로 일자리를 구했는데, 너무 열악하다. 임금도 적고, 너무 힘들어서 지금 막 퇴사했다. 같이 일 한 동료는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석탄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나이대별 기후위기 심각성 인식조사 결과. 나이가 많을 수록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사회공공연구원 자료집 갈무리
내 일자리는 불안하지만…“기후위기 심각, 고용보장 시 발전소 폐쇄 찬성”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공감하고 있었다.

응답자 중 61.2%가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답했고, 74%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고용이 보장된다면 석탄 발전소 폐쇄를 찬성한다’고 답했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찬성한다’는 답은 4.3%였다. 노동자들은 ‘가장 바람직한 고용보장’의 형태로는 ‘발전공기업 정규직 전환을 통한 고용보장’을(66.8%) 가장 많이 원했고,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분야 전환배치를 통한 고용보장’이 27.9%로 뒤를 이었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은 “일자리 보장과 기후위기 대응이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고용보장을 통한 정의로운 전환이 중요하다”며 “고용보장이 전제됐을 때 석탄 발전소 폐쇄에 대한 노동자 당사자의 적극적인 동참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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