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시기도 재취업도 캄캄" 석탄발전 비정규직 불안한 앞날
정부의 순차적 폐쇄 계획에도
82%는 "정확한 시기 모른다"
경력 많을수록 "재취업 어려워"
국가 주도의 고용 지원책 절실
전남 여수에 있는 호남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정비 일을 하던 40대 노동자 ㄱ씨는 지난해 발전소가 문을 닫기 한 달 전에야 폐쇄 일정을 통보 받았다. 그는 충남 보령에 있는 발전소로 재배치돼 아이 셋과 부인을 두고 혼자 이사를 가야 했다. 회사에서 가족이 함께 살 만한 사택을 지원해 주지 않았고, 당시 살고 있는 지역의 지자체에서 주는 육아지원비 150만원을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첫째 9살, 둘째 7살, 막내가 돌이에요. 셋째가 어리니까 하동이나 여수 쪽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그랬는데 전혀 반영이 안 됐어요.” ㄱ씨가 혼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자 ㄱ씨의 부인은 혼자 아이 셋을 감당해야 했다. ㄱ씨는 재배치 된 지 3달 만에 휴직계를 냈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계획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가 순차적으로 폐쇄되면서 ㄱ씨와 같은 일들을 겪는 노동자들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회공공연구원과 공공운수노조는 11일 발전 5개사(남동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20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탈석탄 정책과 고용에 대한 인식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 1.91%)결과를 발표했다. 사회공공연구원과 공공운수노조는 정의당 류호정·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의 협조를 받아 지난달 2일부터 30일까지 발전소 폐쇄 시기, 재취업 준비, 기후위기 심각성 인지 정도 등 20개 항목에 응답을 받았다. 지난해 초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와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이 석탄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산업전환 과정에서의 고용실태 조사’ 이후 1년 만에 실시된 후속 조사이기도 하다.
조사 결과 82.2%의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발전소의 폐쇄 시기를 정확히 모르거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소 폐쇄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응답은 17.7%, ‘대략 듣기는 했지만 정확히는 모른다’는 55.6%, ‘잘 모른다’는 26.6% 였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발전소 폐쇄 일정이 이미 확정된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들 중에서도 ‘폐쇄 시기를 정확히 안다’는 답은 20.6%에 불과했다. 사회공공연구원은 “지난 조사 후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발전소 폐쇄에 대해 비정규 노동자 당사자와의 소통과 논의가 부족했음을 방증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79.3%의 응답자들이 ‘고용이 불안하다’고 답했고, 이 중에서도 56.9%는 ‘매우 불안하다’고 했다. 고용불안을 느낀다는 응답은 1년 전 조사(76%)와 이번 조사가 거의 비슷했지만, ‘매우 불안하다’는 답은 19.4%포인트나 증가했다.
고용불안은 근무 경력이 10~14년으로 많고 가족 구성원 수가 5인 이상인 경우, 나이가 만 45~49세인 경우 높게 나타났다. 다른 일자리로 이직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29세 이하 젊은 층의 고용불안 정도는 10점 만점에 7.31점, 정년을 앞둔 60세 이상 노년층은 7.64점이었던 데 비해 35~49세 응답자들의 고용불안은 8점대로 더 높았다.
발전소 운영이 중단될 경우 바로 갈 수 있는 일자리가 준비되어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38.2%가 ‘재취업이 불가하다’고 했고, 17.6%는 ‘별도 교육이나 재취업프로그램 후 재취업 가능’, 19.5%는 ‘모르겠다’, 22.9%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재취업 가능’이라고 했다. 재취업이 가능하다는 응답은 29세 이하의 젊은 노동자(40.3%)에서 가장 높았고, 근무경력이 높을수록 적었다.
재취업이 어려운 이유로는 ‘나이가 많다’는 응답이 37.6%, ‘임금 등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다’가 25.7%, ‘지역을 옮기는데 어려움이 있다’가 21.9%, ‘재취업에 필요한 자격이나 기술이 없다’가 14.7%였다.
노동자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재배치는 ㄱ씨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ㄱ씨와 같은 발전소의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ㄴ씨 역시 발전소 폐쇄 한달 전에 통보를 받았지만, 지원책은 여수고용노동지청에서 ‘플랜트 쪽 일자리 알아봤으나 필요 인력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ㄴ씨는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개별적으로 일자리를 구했는데, 너무 열악하다. 임금도 적고, 너무 힘들어서 지금 막 퇴사했다. 같이 일 한 동료는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공감하고 있었다.
응답자 중 61.2%가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답했고, 74%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고용이 보장된다면 석탄 발전소 폐쇄를 찬성한다’고 답했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찬성한다’는 답은 4.3%였다. 노동자들은 ‘가장 바람직한 고용보장’의 형태로는 ‘발전공기업 정규직 전환을 통한 고용보장’을(66.8%) 가장 많이 원했고,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분야 전환배치를 통한 고용보장’이 27.9%로 뒤를 이었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은 “일자리 보장과 기후위기 대응이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고용보장을 통한 정의로운 전환이 중요하다”며 “고용보장이 전제됐을 때 석탄 발전소 폐쇄에 대한 노동자 당사자의 적극적인 동참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 열광시킨 ‘수학천재’ 소녀 씁쓸한 결말
- 한양대와 숙대 교수들도 “윤 대통령 즉각 퇴진”…줄 잇는 대학가 시국선언
- [종합] 과즙세연♥김하온 열애설에 분노 폭발? “16억 태우고 칼 차단” 울분
- 여당조차 “특검 수용은 나와야 상황 반전”···정국 분기점 될 윤 대통령 ‘무제한 문답’
- ‘킥라니’ 사라지나…서울시 ‘전동킥보드 없는 거리’ 전국 최초로 지정한다
- 추경호 “대통령실 다녀왔다···일찍 하시라 건의해 대통령 회견 결심”
- “사모가 윤상현에 전화 했지?” “네”···민주당, 명태균 음성 추가 공개
- ‘명태균 늑장 수사’ 검찰, 수사팀 11명으로 대폭 증원…특검 여론 차단 꼼수 논란
- [이기수 칼럼] 저항은 시작됐다
- 마약 상태로 차량 2대 들이 받고 “신경안정제 복용” 거짓말…차에서 ‘대마’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