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절차 폐지 시 관리인의 해제권 행사의 효력 [알아야 보이는 법(法)]
채무자가 재정적 파탄에 직면해 그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더라도 채무자의 종래 법률관계는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즉 채무자는 자신의 채무를 이행했으나 상대방은 그의 채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면 관리인이 상대방에게 채무 이행을 청구하면 되고, 상대방은 그의 채무를 이행했으나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미이행 중이라면 상대방은 회생담보권자 또는 회생채권자로서 회생 계획에 따라 그의 채권을 변제받게 됩니다. 한편 이미 쌍방이 이행을 완료하면 어떠한 법률관계도 남아있지 않고 관리인의 부인 여부가 문제 될 뿐입니다.
그런데 회생절차 개시 당시 쌍무계약에 채무자와 상대방 모두 자기 채무 이행을 완료하지 않은 상태, 소위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 때는 어떨까요?
이에 대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은 원칙적으로 채무자의 관리인에게 계약의 해제·해지 또는 이행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제119조 제1항).
관리인은 채무자의 회생을 위해 유리한 계약은 존속되기를 원하고 불리한 계약은 종료되기를 원할 것이므로, 채무자회생법은 계약의 운명에 대한 선택권을 관리인에게 부여하여 회생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도모하는 동시에 상대방 보호를 위한 일련의 규정을 두어 양 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위 규정에 따라 관리인이 계약의 이행을 선택하면 상대방이 채무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은 공익채권이 되어, 상대방은 회생절차에 의하지 않고 수시로 변제받을 수 있습니다. 채무자의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 역시 공익채권에 해당합니다.
이와 반대로 관리인이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하면 상대방은 이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하여 회생채권자로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원상회복과 관련하여 상대방은 채무자가 받은 반대급부가 현존한다면 채무자에게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 현존하지 않는다면 그 가액의 상환에 관하여 공익채권자로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회생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회생절차 개시 당시 쌍방 미이행 쌍무계약이 존재한다면 관리인이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해지 여부를 선택하도록 하고, 이에 따라 상대방이 회생채권자 또는 공익채권자로서 회생절차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생절차가 정상적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중도에 폐지되더라도 관리인의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에 따른 해제·해지권 행사가 유효할까요?
채무자회생법 제288조 제4항은 ‘회생계획 인가의 결정이 있은 뒤 회생절차가 폐지되는 경우 회생계획의 수행과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생긴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때 관리인의 해제·해지권 행사의 효력은 회생계획 인가 결정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요? 최근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나와 소개합니다.
채무자 회사는 2017년 8월10일 피고와 사이에 피고가 채무자 회사에 애플리케이션 시스템에 관한 유럽 독점 총판권을 부여하고, 채무자 회사는 피고에게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내용의 총판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사건 계약이 이행되지 않고 있던 2019년 3월18일 채무자 회사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졌고, 이후 채무자 회사의 관리인은 회생법원으로부터 이 사건 계약에 대한 해제 허가를 받았습니다.
채무자 회사의 관리인(원고)은 이 사건 계약이 무효·취소 또는 해제·해지되었음을 전제로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계약에 따라 지급한 금전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면서, 소장 및 준비서면 등을 통해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 계약을 해제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 사이 채무자 회사에 대한 회생절차는 회생계획이 인가되지 않은 채 폐지 결정이 내려져 그 무렵 확정되었고, 이후 원고는 제1심 제5회 변론기일에서 계약 해제 주장을 철회하였습니다. 원고는 제1심에서 패소하였고, 항소심인 원심에 이르러 다시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에 따라 총판계약이 해제·해지되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습니다.
원심은 “채무자회생법 제288조 제4항에 따라 회생절차가 폐지되기 전에 관리인이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에 따라 계약을 해제하였다면 이후 회생계획 폐지의 결정이 확정되어 파산절차로 이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위 해제의 효력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나, 회생계획 인가 이전에 회생절차가 폐지된 경우에는 채무자회생법 제288조 제4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서 “회생계획 인가 이전에 채무자 회사에 대한 회생절차가 폐지된 이상 채무자회생법 제119조에 의한 해제, 해지의 효력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하며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회생절차 폐지 결정은 그 확정 시점이 회생계획 인가 이전 또는 이후인지에 관계없이 소급효가 인정되지 아니하고,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에 따라 관리인이 쌍무계약을 해제·해지한 경우에는 종국적으로 계약의 효력이 상실되므로, 그 이후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확정되더라도 위 조항에 근거한 해제·해지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서 채무자 회사의 관리인이 제1심에서 소장 및 준비서면 등의 송달로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 계약에 관한 해제의 의사표시를 한 이상 채무자 회사에 대하여 회생계획이 인가되기 전에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확정되었더라도 이 사건 계약은 그 무렵 종국적으로 그 효력이 상실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하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습니다.
회생절차가 계획 인가 전에 폐지되든, 후에 폐지되든 회생절차 폐지의 효력은 소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학설과 판례의 입장이고, 채무자회생법 제288조 제4항이 적용되어야만 회생절차 폐지의 불소급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회생절차 폐지가 그 이전에 관리인이 행사한 해제·해지권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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