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사라지면 삶도 희미해진다

한겨레21 2022. 7. 11. 11: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늙음의 과학]70대 약 30%, 80대 이상 3분의 2에게서 현저한 후각 저하 현상, 후각을 잃었을 경우 5년 내 숨질 확률도 높아져
장미꽃 향을 맡고 있는 한 노인. REUTERS

지난봄, 국내에서 한창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고 연일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던 시기에 저도 코로나19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미열과 기침, 인후통 등 독감 증상이 있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지나갔습니다. 이제 시간을 견디는 일만 남았지요. 그래서 몸이 회복되자 동네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한 잔 주문해 손에 들고 산책에 나섰습니다. 커피와 산책, 오랜만에 누리는 작은 호사에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코앞에 들고 있던 커피의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겁니다. 코로나19 감염 후유증으로 후각 상실을 본격적으로 인지한 순간이었습니다.

바이러스 공격으로 지워진 후각

코로나19의 고약함은 회복된 뒤에도 다양한 후유증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잔기침, 탈모, 브레인포그(Brain Fog·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한 현상), 미각 상실과 후각 상실(Anosmia) 등이 대표적인 후유증입니다. 세계 각국의 조사에 따르면 조금씩 수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회복된 사람의 30~70%에서 후각 기능 저하가 관찰됐고, 이 중 10~15%는 거의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는 완전 후각 소실 증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주로 후각상피세포를 통해 우리 몸속에 침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수적 피해 현상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가 후각상피세포를 주요 타깃으로 삼는 이유는, 이 세포의 표면에 풍부한 ACE2(Angiotensin-Converting Enzyme 2) 수용체 단백질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일종의 출입구로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초기에 과학자들이 더 걱정한 것은 후각상피세포 손상이 아니라, 이를 통해 혹시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후각상피에 존재하는 후각신경은 후각망울이 모였다가 변연계를 거쳐 대뇌의 후각피질까지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혹 바이러스가 후각신경을 타고 뇌로 들어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들의 뇌를 부검한 결과 후각신경을 통해 바이러스가 뇌에서 치명적 문제를 일으켰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후각 상실은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불편했습니다. 이전에도 코감기로 점막이 부어오르면 냄새가 잘 안 느껴지던 경험을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후각 상실은 그와는 달랐습니다. 코감기로 인한 후각 이상이 그저 냄새에 둔감해진 것이라면, 코로나19로 인한 후각 상실은 말 그대로 후각이 지워진 느낌이랄까요. 인간이란 뭐든 잃어봐야 그 중요성을 알게 된다지요. 후각이 사라지자, 후각이 궁금해졌습니다.

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지속적으로 노출된 감각입니다. 빛과 소리는 차단할 수 있지만, 냄새는 완전히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분당 12~20회, 하루에도 약 1만7천~2만8천 번 호흡하고,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0.5ℓ 내외의 공기가 몸에 들고 납니다. 이 과정에서 공기에 포함된 수많은 화학물질이 함께 들어오지요. 인간은 숨 쉬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에, 후각은 신경 자체를 마비시키지 않는 이상 차단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1년 365일 내내, 인간의 코점막에 퍼진 375종의 후각 수용체 500만 개는 외부 자극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부지런히 후각 정보를 뇌에 전달합니다. 그런데 노출된다는 건 마모되기 쉽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 몸은 후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후각상피세포를 주기적으로 교체합니다. 교체 주기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8주입니다. 코로나19 감염 이후 후각 기능을 상실한 환자를 추적한 연구에선, 후각 상실자 대부분이 한 달 뒤면 후각 기능이 완전히 돌아오거나 이전보다 현저히 향상된다고 보고합니다. 이대로 영영 냄새를 맡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맛 커피와 비린내 나는 밥 짓는 냄새

실제로도 한 달쯤 지나니 서서히 후각이 돌아왔습니다. 그 회복은 매우 단계적이고 무작위적이더군요. 제 경우에는 먼저 돌아온 감각이 악취였고, 그다음은 음식 냄새였고, 꽃과 과일의 향이 가장 늦게 돌아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과정에서 냄새의 교란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커피에선 식초 냄새가 나서 마실 수 없었고, 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비린내로 느껴져 구역질이 났습니다. 향수는 이전과는 다른 냄새였고, 어디선가 무슨 냄새가 나는데 이게 도통 어떤 냄새인지 구분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증상을 이상후각(Parosmia)이라고 하더군요.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에서 줄이 하나 끊어지면 그 부분만 보수하면 됩니다. 하지만 거미줄이 뭉텅이로 끊겨나가면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만들어진 거미줄은 아무리 똑같이 복제한다손 치더라도 처음과는 미세하게 다를 겁니다. 바이러스 침투로 후각신경세포가 대량으로 손상된 뒤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신경의 배선이 재배치되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시냅스가 만들어졌고, 이는 뇌에 엉뚱한 신호를 전달하는 원인이 되죠. 다행히도 잘못된 배선은 시간이 지나 점차 제자리를 찾아갔지만, 세상에는 그런 운이 비껴간 사람들이 있는 법이죠.

신경질환의 전조 증상이나 뇌손상의 결과

코로나19로 인한 후각 상실이 일시적이었던 건, 비록 후각상피세포가 손상됐더라도 이를 재생하는 줄기세포는 무사했기 때문입니다. 이 줄기세포도 나이 들수록 그 기능이 점차 쇠퇴합니다. 미국 보건국의 조사에 따르면 70대에선 약 30%, 80대 이상에선 3분의 2의 사람에게 현저한 후각 저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사실 나이 들면 감각이 쇠퇴하는 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노화로 저하되는 시각과 청각을 보조해주는 안경과 시력교정술, 보청기 등의 기술이 발달했지요.

후각 저하 증상에는 딱히 이를 보조하는 장치가 아직 없기에 증상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합니다. 노인성 후각 상실은 단순한 감각 상실이 아니라 생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후각 상실과 노인의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후각을 잃었을 경우 정상적인 후각을 지닌 이들에 견줘 5년 내 숨질 확률이 2~3배 높아진다는 것이 여러 곳에서 보고됐습니다.

냄새를 맡지 못하면, 상한 음식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삶에 대한 즐거움이 사라져 식중독이나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망률이 이처럼 극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노인에게 후각 상실은 단순한 노화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뇌손상, 특히나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질환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의 전조 증상이거나 다양한 뇌손상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의 90% 이상에서 후각 상실이 나타나는데, 심지어 후각 상실은 인지 장애나 보행 이상 등 퇴행성 뇌질환의 주요 임상 증상이 뚜렷해지기 전에 몇 해 앞서 나타나곤 합니다. 이는 노인성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인 알츠하이머의 경우, 해로운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여서 뇌세포가 파괴되며 일어나는데, 이 베타아밀로이드가 가장 먼저 축적되는 곳이 후각신경이 모인 후각망울 부분이며, 파킨슨병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이 부위가 가장 먼저 손상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노인의 경우, 후각을 잃어버린 이들의 사망률이 비약적으로 높게 나타납니다. 역으로 이를 이용해 후각 상실 정도에 따른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질환 환자를 조기에 감별해내는 선별검사법도 개발됐습니다. 현대의학에선 아직 퇴행성 뇌질환을 완치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조기 발견시 진행 속도를 어느 정도 늦추는 것이 가능하기에 이 진단법은 매우 유용합니다.

특정 냄새 계속 맡으면 없어진 후각이 돌아온다?

미국 버지니아코먼웰스대학의 연구진은 후각 상실자를 위한 후각 이식물(Olfactory Implant)을 연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후각 이식물은 특정 화학분자를 감지해 그 분자가 가지는 냄새를 전기신호로 바꿔, 후각피질에 직접 전달하는 물질입니다. 일종의 ‘전자 코’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분야의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 상용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현재까지 후각 상실 치료로 그나마 효과 있다고 알려진 방법은 몇몇 약물과 후각의 재훈련화입니다. 특정 냄새를 가진 다양한 물질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해서 뇌에 이 냄새를 각인시켜 기억하게 하는 거죠.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나마 후각을 되찾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놀란 건, 이래도 후각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방법으로도 후각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소리를 계속 들려준다고 귀가 밝아지지 않고, 빛을 쐬어준다고 시력이 되돌아오진 않지만, 후각은 냄새에 대한 지속적인 접근이 잠든 기억을 깨워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러니 냄새를 인지하는 능력이 아직 내게 남아 있을 때, 더 많은 좋은 내음을 찾아서 즐겨야겠습니다. 기억으로 냄새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역으로 좋은 냄새가 좋은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줄 수도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한겨레21 뉴스레터 <썸싱21> 구독하기 
https://url.kr/7bfp6n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