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습격, 앞으로가 더 문제다
“물가가 6% 올랐다고요? 한 20%는 오른 거 같은데요.”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장에서 청소일을 하는 이아무개(74)씨는 최근 소비자물가가 6% 올랐다는 뉴스를 그대로 믿지 않는다고 했다. “과일 살 때 작은 소쿠리에 든 게 3천원이었는데 이제는 5천원부터 시작해요. 삼겹살 좋아하는 남편은 돼지고기값이 많이 오르니까 더 싼 거 찾는다며 대패삼겹살을 사와요. 올해 수박은 아직 못 먹었어요. 값이 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려고요.”
배추 35%, 치킨 11%, 경유 50% 가격 올라
이씨가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라면·쌀 같은 생필품을 따로 모아 집계한 ‘생활물가지수’는 7.4% 상승했다. 특히 식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 돼지고기 18.6%, 수박 22.2%, 배추 35.5%, 무 40%, 감자 37.8%, 수입 쇠고기 27.2%, 식용유 40.3% 등이다. 밥상물가 말고도 전기료(11%), 도시가스(11%) 등 공공요금도 크게 상승했다.
이씨는 아침 7시까지 출근해 오후 3시30분에 퇴근한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65만원 남짓이다. 이곳에 오기 전 대학병원에서 10년 넘게 청소일을 해왔고 늘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만 월급을 받았다. 법인택시를 모는 남편은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2년간 사납금도 채우지 못하다가 석 달 전부터 월 100만원 정도 벌어온다. 하지만 그동안 살면서 생긴 빚을 갚느라 허리를 펼 새가 없다. 최근 2023년도 최저임금이 5% 오르기로 결정났다. “다행이긴 해요. 자영업자 생각하면 (임금 올려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물가가 너무 오르니까 이마저도 아쉽죠.”
통계청이 2022년 7월5일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6% 올랐다. 6%대 상승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1월 이후 24년 만이다. 오랫동안 저물가에 익숙했던 시민들은 당장 씀씀이를 줄이기 바쁘다. 물가상승은 금리인상을 부르고 코로나19 때 빚내어 자산투자를 했던 사람들은 불어난 이자의 역습을 받는다. 모두가 크고 작은 고통을 겪으며 인플레이션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직장인에게는 당장 외식 가격과 기름값이 부담이다. 6월 외식물가를 보면 치킨은 11%, 갈비탕 12.1%, 자장면 11.5%, 라면 10.3%, 김밥 10.6%, 생선회는 10.4% 올랐다. 기름값은 더하다. 경유는 50.7%, 휘발유는 31.4% 자동차용 액화석유가스(LPG)는 29.1% 치솟았다.
직장인 홍아무개(44)씨는 서울에서 일하며 월급의 절반(250만원)을 부산에 있는 가족에게 생활비로 보냈다. 3월부터는 20만원 더해 270만원을 보냈다. 식재료 가격과 아이 태권도·영어 학원비가 올랐기 때문이다. 영업일을 하는 홍씨는 기름값 인상이 큰 타격이다. 일주일에 6만원어치 넣고 차를 몰았는데 최근에는 10만원어치 넣는다고 한다. “들어오는 돈은 고정되는데 나가는 게 늘어나니까 다른 데서 지출을 줄여요. 친구들과 술을 덜 마시고 모임을 자제해요.”
남편과 맞벌이하는 민보라(37)씨는 늘어나는 생활비 부담에 2022년부터 저축액을 월 2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줄였다. “아이 체험 행사 비용이 많이 올랐어요. (부부가) 각자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줄이고 아이한테 써요.” 아이 학원을 차로 데려다주는 민씨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 효과도 체감하지 못한다. “웬만한 주유소는 가격을 먼저 올린 다음에 내리니 실제로는 내린 것 같지 않아요.”
4월은 3월보다, 5월은 4월보다 덜 썼다
2022년 5월1일부터 유류세 인하폭은 20%에서 30%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7월1일부터는 30%에서 37%로 또 확대됐다. 하지만 에너지·석유시장 감시단 ‘이(E)컨슈머’가 6월 휘발유 가격을 분석해보니 국제휘발유 가격이 리터(ℓ)당 35원 오를 때 국내 정유사는 70원을 더 붙여 공급가를 105원 인상했다. 주유소는 여기에다 20원을 더 붙여 125원을 올려 팔았다. 민씨 말대로 유류세 인하 효과는 공급가 인상에 묻혀버렸다.
치솟는 물가에 시민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하자 소비 둔화 움직임이 나타난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2022년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연속 소매판매액지수가 줄었다. 사람들이 2월보다 3월에 적게 쓰고, 3월보다 4월에 더 적게 쓰고, 4월보다 5월에 소비를 더 줄였다는 뜻이다.
회식이 줄어들자 대리운전 기사들이 타격을 받는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위원장은 “코로나19 동안 수입이 절반 정도 줄었는데 거리두기가 풀리고 나서도 70~80% 수준까지만 회복됐다. 대리운전을 부르는 고객도 대부분 직장인이니 고물가에 압박을 느껴 수요가 많이 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름값 인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배달노동자들은 4월 정부를 상대로 유가보조금을 지원해달라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가게 사장님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는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김아무개(39)씨는 최근 물가상승으로 수입이 크게 줄었다. “그동안은 본사에서 가져가는 돈이 매출의 절반 정도였는데 3월 이후부터는 63%까지 올랐어요. 식용유·밀가루 등 재료값이 올라서 그래요. 수익이 이렇게 많이 감소한 건 (몇 년 전)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을 때와 지금이에요.” 이씨는 저금리 시절이던 2014년 회사를 그만두고 빚내서 가게를 차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집을 안 사고 가게를 차린 게 무척 후회된다고 했다. “그때 금리가 떨어지니 저처럼 퇴사하고 카페 차린 분이 많은데 요즘 다 힘들어하세요. 문제는 이렇게 오른 재료값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쉽게 떨어질 거 같지 않다는 거죠.”
2020년 1월 베이커리 카페를 차린 문아무개(44)씨는 3년째 적자를 보고 있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올해는 원재료값 상승 때문이다. 문씨 설명을 들어보면 밀가루 20㎏짜리 한 포대는 2021년 말 1만6천원이었는데 2022년 6월엔 2만3천원으로 44% 상승했다. 버터는 5㎏짜리가 6만5천원에서 7만3천원으로 13% 올랐고, 로스팅된 원두는 1㎏짜리가 2만원에서 2만4천원으로 20% 올랐다. 월 재료비는 1천만원에서 1400만원으로 늘었다.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손님이 좀 늘어나나 했는데 물류 문제 때문에 상황이 더 꼬였어요. 코로나19 확산세가 둔화돼도 경제상황이 나빠지니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소득 하위 20%, 소득보다 지출 많은 적자
정부는 물가안정 대책으로 2022년 7월1일부터 커피 생원두 수입에 붙이던 부가가치세 10%를 면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최종 소비자에게 골고루 퍼지지 않는다. 수입상한테 생두를 직접 공급받는 프랜차이즈 본부, 로스팅 업체, 일부 카페는 원두를 10% 싸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문씨는 “로스팅 업체들도 어려우니 이익을 더 가져가려 할 텐데 제가 공급받을 땐 잘해봐야 2~3% 정도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런 유통구조를 고려해 최종소비자에게 부가세 인하 효과가 나타나도록 업계를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모든 계층에 타격을 주지 않은 것처럼 인플레이션의 고통도 평등하지 않다. 안정적 수입이 있는 사람은 지출을 줄이면서 고물가를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소득이 적은 사람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야 할 상황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2022년 1분기 기준으로 소득 하위 20%는 월 소득(104만3천원)보다 월 소비지출(116만원)이 더 많은 적자 살림을 살고 있다. 소비지출액의 44.4%(51만5천원)를 식비와 주거·수도·광열비에 썼다. 단순히 먹고 자는 데만 지출의 절반가량을 쓰는 것이다. 반면 소득 상위 20%는 월 소비지출(435만4천원)이 월 소득(1083만3천원)의 절반에 못 미친다. 식비와 주거·수도·광열비 비중도 월 소비지출의 24%(104만5천원) 수준이다. 고소득층은 여가 등 다른 품목에서 지출을 줄일 여유가 많다.
하점순(74)씨는 월 70만원 남짓 연금을 받으며 혼자 산다. 지난 30년간 청소일을 하면서 꼬박꼬박 보험료를 낸 덕에 매달 국민연금 50만원을 탄다. 대신 기초연금은 깎여 월 21만원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지병이 있어 병원비와 약값으로 매달 20만원을 쓰는데 나머지 50만원으로 한 달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하씨는 “끼니를 줄일 수 없으니 반찬을 부실하게 해서 먹는다”고 했다. 오전에는 집에서 보내고 오후엔 밖에 나가 운동 겸 산책을 하고 오는 게 주요 일과다. 다른 데 특별히 쓰는 돈은 없다. 하씨는 “아껴 써도 매번 돈이 모자라서 모아놓은 돈을 조금씩 꺼내 쓴다. 내가 나이가 많아 일을 더 할 수 없는데 남아 있는 돈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의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매일 250~300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한다.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 이곳은 2022년 들어 재료비가 월 500만원가량 늘었다. 그동안 한 끼에 최소 세 가지 반찬을 내왔는데 4월 중순에 후원까지 감소하자 처음으로 반찬을 하나 줄이기도 했다. 고영배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전까지는 물가가 계절 요인에 의해 오르다 내렸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됐다. 2021년 하반기부터 조금씩 오르더니 이제는 장 볼 때마다 숫자가 달라진다. 앞으로 후원이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고 사무국장은 “이곳은 주로 노인들이 찾는데 3~4월부터는 40대와 50대도 간혹 보인다.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는데 밥 먹으려고 노인들 사이에서 (눈치 보며) 오랫동안 기다리는 데는 사연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고금리
대다수가 힘들게 견디는 인플레이션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기획재정부는 7월5일 “세계 공급망 차질 등에 따른 국제 에너지·곡물가 상승 영향으로 당분간 어려운 물가 여건이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7%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2022년 5월 기준 8.4로, 2001년 이후 5월 기준 가장 높다. 현대경제연구원 쪽은 “코로나19 이후 서민 체감경기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실업률은 크게 변동하지 않는 지표인 점을 감안하면 물가상승으로 인해 경제고통지수는 당분간 최고치를 이어갈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통화·재정 당국은 당장의 고물가도 문제지만 기업·소비자가 예상하는 향후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물가상승률은 연 2%인데 6월 소비자의 기대인플레이션은 3.9%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이 올라가면 임금과 상품 가격에 기대치가 반영되고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2차 효과가 발생한다. 기대인플레이션을 꺾지 않으면 정부의 물가안정 수단도 무력해진다.
물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공산이 크다. 예금·대출 금리가 오르면 저축을 더 하고 대출을 갚으려 한다. 가계·기업의 투자와 소비가 줄면 경제가 둔화하고 물가도 떨어진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를 낮추기 위해 경기 둔화도 각오하는 모습이다.
빚을 냈거나 앞으로 내야 하는 사람들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고금리에 당황하고 있다. 1인가구인 하아무개(32)씨는 5천만원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미국 주식에 쏟았다. 현재 수익률은 20~30% 마이너스다. “월급은 올라가지 않는데 물가가 오르고 금리도 오르는 아주 안 좋은 상황이에요. 지금 매일 주식 창 보고 있어요. 이자가 늘어나지만 버텨보려고요. 언젠가는 (주가가) 올라갈 거라고 봐요.” 배달서비스를 자주 이용하고 가끔 ‘플렉스’(소비 과시)를 했던 하씨는 생활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배달 줄이고 집에서 뭐라도 좀 해먹으려 해요. 이제는 밖에 나가서 와인 사먹는 이런 짓 안 해요. 휴가는 해외 가는 대신 집에서 쉬려고요.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 보면서 스페인 가보고 그런 거죠. 아무튼 안 움직여요. 갈 데도 없어요.”
‘플렉스’한 생활 대신 집안에서 ‘넷플릭스’
서울의 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곽아무개(36)씨는 2023년 9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입주 때 4억원 정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 2021년까지만 해도 3%대 대출금리를 생각했는데 지금은 최대 7% 얘기까지 나온다. “내년에 7% 금리로 대출받으면 제가 생각한 것보다 연간 내야 할 이자가 1천만원 이상 더 늘어나요. 코로나19 때 주식 투자했다가 번 돈은 이미 다 까먹어서 지금부터 돈을 열심히 모아야 하는데 식비나 기름값은 더 올라 저축은 줄일 수밖에 없고… 아직은 심각하지 않지만 앞으로가 문제예요.”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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