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학생들, 전쟁 속 한국어·영어 "열공 중"
"배우려는 학생 있으면 전쟁 끝날 때까지 수업 계속..코딩 교육도 신설 계획"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테레센코 나오세요."
우크라이나 현지시간 10일 일요일 오후 4시. 한국시간 오후 10시. 제주 국제학교 11학년생인 정세진 학생이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500km 떨어진 하리키우에 있는 학생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화상에 나타났다.
테레센코는 1998년 개교한 정수리 학교(교장 김 류드밀라) 재학생이다. 전쟁으로 학교 수업이 중단됐지만, 피난을 떠나지 못한 학생들은 화상으로나마 공부에 대한 갈증을 풀고 있다.
정 양은 지난달 22일부터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같은 시간에 1시간씩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일대일로 한국어 문장 구성 방법을 가르쳤다. 테레센코가 영어로 질문하면 한국어로 답하는 식이다. 한국어 단어는 이미 많이 알고 있어 어휘력보다는 문장 구성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 양은 1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소셜미디어(SNS) 인터뷰에서 "문장 구성하는데 알고 있어야 할 문법은 다 가르쳐서 앞으로 실생활 한국어를 알려줄 계획"이라며 "테레센코가 얼마나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는지 한눈판 겨를이 없다"고 했다.
학교가 폭파돼 등교하지 못하는 테레센코는 "한국에 가고 싶다"며 누구보다 한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올여름이 끝나면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좋아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가을 학기에 등교하는 것도 불투명해 보인다. 정 양은 그런 상황을 테레센코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한다"라고 힘을 북돋워 주는 말로 학습 열기를 달군다. 그러면 테레센코의 눈동자가 빛난다고 한다.
정 양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화랑청소년재단(총재 박윤숙)의 한국 지부 소속이다. 오는 8월 3일까지 13차례 가르친 후 잠시 쉬었다가 8월 중순 가을 학기에도 한국어 수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제주 영어 교육도시에 있는 브랭섬홀아시아 11학년에 재학 중인 김수영 학생도 정수리 학교 9학년 베레즈나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정 양과 김 양을 비롯해 인천 채드윅 송도국제학교, 한국외국인학교(KIS) 판교 캠퍼스 등의 화랑 한국지부 소속 학생 8명은 1대1 또는 2대1로 정수리 학교 학생 5명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정수리 학교 학생 23명은 영어도 배운다. 화랑청소년재단 미국 텍사스 오스틴 지부(지부장 임하늘)가 맡아서 영어 교육을 한다.
세인트 마이클즈 11학년 재학생인 임 지부장을 비롯해 15명의 '화랑'이 지난 6월 25일부터 매주 일요일 1시간 30분씩 고려인 5세를 포함한 현지 학생들을 담당해 지도한다. 한국 지부 소속 2명도 밤 11시부터 자정을 넘어서까지 영어를 가르친다.
화랑청소년재단 인터내셔널 부회장인 임 지부장은 "우크라이나 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하려는 이유는 취업 때 영어를 잘하면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전쟁 중이지만, 배우려고 하는 열기는 매우 뜨겁다"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은 배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미국과 한국에 있는 또래 청소년들을 통해 용기를 얻고, 전쟁의 힘든 상황을 우리와 나누고 있다"고 했다.
화랑들은 학생들의 열정에 보답하기 위해 1분도 쉬지 않고 수업을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영어 수업은 8월 6일까지 진행되며, 가을학기에 재개할 계획이다.
박윤숙 총재는 "한국어·영어 교육을 통해 우크라이나 청소년보다 화랑들이 더 많이 배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며 "전쟁 중 수업이기에 더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영어와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이 있는 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수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가을 학교부터는 코딩(컴퓨터) 교육도 신설할 계획이며, 정수리 학교 재건을 위한 기금 조성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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