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명'의 역습..이재명, 세 번의 죽을 고비 넘길까
내년 4월 재보선이 첫 시험대..분당·정계개편說 휘몰아칠 수도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다. 그의 시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재인의 길'을 가려 하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절치부심하던 문 전 대통령은 2015년 당권을 잡은 후 지지기반을 점점 넓히며 2017년 대통령이 됐다. 대선 재수를 노리는 이 의원도 같은 길을 걸으려 한다.
'문재인의 길'은 얼핏 성공이 보장된 쉬운 코스 같지만, 이 경로는 그야말로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1997년 이회창, 2007년 정동영의 실패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이 의원과 경쟁했던 이낙연 전 대표도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지지율이 급락했고 이를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당 대표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선으로 가는 당 대표직은 '독이 든 성배'
이 의원에게는 세 번의 죽을 고비도 기다리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넘었던 그 세 번의 고비다. 문 전 대통령은 2015년 당시 당권에 도전하면서 "이번에 당 대표가 안 되어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다음 제 역할은 없다.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제 앞에 있다"고 말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위기의 야당 대표를 맡는 건 벼슬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말도 남겼다.
이 의원도 문 전 대통령처럼 ①대표 당선 ②당 살리기 ③총선 승리라는 세 번의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지금 여론의 관심은 온통 ①에 쏠려 있다. 이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면 당 대표 당선은 가능성이 높다. 다수의 민주당 차기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이 의원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집중해야 할 지점은 ②부터다. 민주당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대선과 지방선거 등 전국 단위 선거에서 세 차례 연속 패배했지만, 당 내부는 계파 갈등으로 사분오열 양상이다. 당내 금기어였던 '분당'이란 말도 전면에 등장했다. 정계개편 시나리오도 흘러나온다. 당을 수습하고 재건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의원은 자신을 향한 '사법 리스크'도 해결해야 한다. 만약 이 의원이 제1야당 대표가 된다면 사정 정국이 빚어낼 '이재명 리스크'는 고스란히 '민주당 리스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재명의 길'은 '문재인의 길'보다 험난하다. 자신을 향한 무수한 공격을 뚫고 당 대표직에 오르더라도, 당을 살리는 동시에 자신을 향한 사정의 칼날을 피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당 살리기에 실패하면 총선 승리 여부는 기대할 게 못 된다. 사실 당의 재건은 그 자체로 무한도전에 가까운 미션이다. 선명 야당에서 대안 야당으로, 계파 갈등을 용광로 정당으로, 악성 팬덤을 숙의 민주주의로 바꿔내는 일은 그중 하나만 성공해도 다행스러울 만큼 어려운 과제다.
무엇보다 이 의원에게는 시간이 관건이다. '어대명'이 상징하는 '이재명의 시간'은 역설적이다. 대세론은 과거 '아웃사이더 이재명'이 가졌던 강점을 희석한다. 더 이상 이 의원은 도전자가 아니다. 역대 민주당 대선후보가 얻은 최다 득표인 1614만 표를 얻은 대선주자로서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지켜내야 한다. 그 과정은 지금까지 이 의원이 걸어왔던 길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이 의원이 기득권처럼 보이는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분루를 삼켰던 이 의원에게는 "활주로가 짧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분석이었다. 이번에는 정반대 상황이다. 지금 이 의원 앞의 활주로는 충분히 길다. 다음 총선은 2년 후다. 1차 시험대가 될 내년 4월 보궐선거도 아직 10개월이란 시간이 남았다. 이 의원은 과연 어떤 비행을 보여줄까. 고공행진도, 급전직하도 모두 이 의원 자신에게 달려 있다. 훗날 이재명의 시간은 과연 어떻게 기록될까. '이재명의 시간'이 불러올 나비효과, 그 다양한 시나리오와 관전 포인트를 살펴봤다.
1. 이재명이 주류가 되는 길: 친명 대 친문의 대결
정치권에선 이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기정사실로 본다. 민주당의 최근 내홍도 이 의원의 출마를 놓고 벌어지고 있다. 내홍의 표면적인 이유는 명분이다. 친문(親문재인)계와 비명(非이재명)계는 대선과 지방선거의 패배 책임이 가장 큰 사람이 곧바로 다시 등판하는 게 적절하냐고 지적한다. 반면 친명(親이재명)계는 선거 패배의 책임은 모두에게 있고 마땅한 구심점이 없는 지금 이 의원만이 리더십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반박한다.
정당에서 계파 간 갈등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번 갈등의 본질은 가치와 비전의 노선 투쟁이 아닌 차기 권력의 향방과 관련돼 있어 의미가 다르다. 8·28 전당대회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차기 당 대표가 행사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민주당의 주류였던 친문은 대선 패배 이후 구심점을 잃고 급속도로 힘이 빠졌다. 그럼에도 당내 세력은 여전하다. 친문은 2012년, 2016년, 2020년 총선까지 세 번의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지금의 민주당은 '친문'당이 틀림없다.
문제는 힘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 지금 친문은 구심점이 없다. 당장은 이 의원에게 대적할 만한 차기 당권주자가 없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맞붙었던 이낙연 전 대표는 미국으로 떠나 잠시 중앙정치와 거리를 뒀다. 친문 입장에서 보면, 공천권을 가진 이재명 대표 체제는 그 자체로 공포다. 정치공학적으로만 해석하면 친문에 대한 공천 학살은 예정된 수순이다. 친문계가 최고위원 권한을 강화해 사실상 현행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흔들어 보려고 했던 것도 고민 끝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그만큼 친문 입장에서는 뾰족한 돌파구가 없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여론전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 의원이 지방선거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당은 참패하고 자신만 생존한 것을 두고 이 의원의 정치적 생명력이 이미 수명을 다했다고 공격하는 식이다. 이 의원 입장에서는 실제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민주당이 전당대회 룰(규칙)을 두고 극심한 내홍을 빚었던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읽어야 한다. 당초 전당대회 룰은 신주류로 대표되는 이 의원 측에 유리하게 만들어졌는데, 비상대책위원회가 이걸 뒤집자 친명계 의원 60여 명이 반대 서명을 내놓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그러자 구주류 세력이 한발 물러섰고 룰은 사실상 친명계 주장이 대폭 수용된 모양새로 정리됐다.
권토중래를 꾀하는 이 의원 입장에서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친명 측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후보인 이 의원을 당내 주류세력인 친문계가 제대로 돕지 않았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 당내 기반을 확실히 닦지 못하면 차기 대선도 쉽지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2.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이재명의 살길, 민주당의 살길
이 의원은 당 대표가 되더라도 곧바로 큰 산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사법 리스크'다. 검경은 정권교체 뒤 대장동 개발 특혜,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이 의원 배우자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의혹 관련 수사 등을 본격화하고 있다. 여론의 시선은 엇갈린다. 윤석열 정부가 대선 맞상대였던 이 의원에 대한 정치보복을 자행하고 있다는 시선과 이 의원이 국회의원 신분에 더해 당 대표 직함까지 갖춰 정당한 수사에 대한 '두 겹의 방탄복'을 입으려 한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이 의원 측은 사법 리스크는 없다는 입장이다. 검경의 수사 자체를 정권 차원의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본다. 부정한 사실이 없으니 리스크도 없다는 논리다. 속내는 어떨까. 이 의원을 지근거리에서 돕고 있는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기자를 만나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검경 수사는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수사를 치고 들어온다는 것은 정권 차원에서도 사실상 모든 걸 걸고 해야 하는 일이다.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 다 걸고 한판 할까' 식의 《오징어 게임》이 되는 것을 정권도 피할 것이라는 관측이자 기대다.
정치는 사실의 영역이 아닌 인식의 영역이다. 대중은 이슈 자체보다는 이슈를 다루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본다. 이 의원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서는 어떨까. '정당한 수사'와 '정치보복' 프레임 중 어느 구도가 더 강하게 작동할까. 이 의원의 사법적 논란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 의원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로 관전 포인트는 이동할 것이다. 결국 관건은 이 의원의 리더십 문제로 귀결된다. 자신을 향한 위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정반대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한 방이 될 수도 있다.
이 의원 입장에서는 '이재명이 사는 길이 민주당이 사는 길'이라는 논리를 민주당 전체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정치검찰의 수사가 야권 전체를 겨냥할 수 있는 만큼 특정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다. 현실은 어떨까. 결코 녹록지 않다. 당권 도전에 나선 강병원 의원은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우리 정치가 '이재명 지키기' 대 '이재명 죽이기'라는 늪에 갇혀 혁신과 통합이 사라지고 경제와 민생도 실종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고 했다.
결국 이 의원의 사법 리스크는 '개인 차원'과 '민주당 전체의 일' 중 어느 영역으로 인식되는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왜 이재명을 지켜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의원 스스로가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 의원 출마에 부정적인 한 수도권 의원은 "유무죄를 떠나 '방탄 출마' 논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재명이 왜 당 대표가 돼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경우에도 지지자를 부끄럽게 하면 안 된다. 이미 지방선거에서 본인만 살았고 당은 기록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당 대표가 돼서도 본인만 사법 리스크를 피하고, 당은 이회창의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닌지에 대한 물음표를 이 의원 스스로가 지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도 이런 지적을 모르지 않는다. '왜 이재명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출마선언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이 의원이 어떤 가치와 비전으로 당 대표 깃발을 들지 심사숙고하고 있다"면서 "민심과 당심의 괴리를 어떻게 마이너스 정치가 아니라 플러스 정치로 바꿔낼지, 대의 민주주의를 더 넓고 깊은 참여와 숙의 민주주의로 만들어낼지 여러 안을 두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이기는 혁신'을 기치로 당 혁신안과 정치 개혁안을 낸 것처럼 이 의원도 '이재명식 정치 혁신안'을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3. 이재명으로 이길 수 있을까: 총선 전초전 승부가 관건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계파 갈등과 팬덤 논란, 사법 리스크 등은 사실상 고정값으로 따라붙는 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의원이 살아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거에서 이겨 실력과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의원의 1차 시험대는 내년 4월 치러질 것으로 보이는 보궐선거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이상직 전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전주을 지역구 보선은 내년 4월에 열릴 예정이다. 아직 보궐선거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수도권 등이 포함되고 5석 이상일 경우 '미니총선'이자 총선을 앞둔 전초전으로 펼쳐질 수 있다.
정치의 원칙은 간단하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이기고 좁히면 진다. 중도 외연 확장이 불가피한 이유다. 이 단순한 진리가 지금의 이 의원에게는 '고르디아스 매듭'처럼 풀기 어려운 과제다. 대선에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당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 의원의 정치적 생명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5년 전에는 '문재인이 싫어서', 이번 대선에선 '윤석열이 싫어서' 이 의원을 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겨난 것이다.
이 의원이 '팬덤정치'에 갇혔다는 인식이 강한 것도 한계다. 이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개딸'(개혁의 딸), '양아들'(양심의 아들) 등으로 불리는 적극적 지지층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들은 언론 등에서 '강성 지지층' '악성 팬덤' 등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 일부가 이 의원을 비판하는 의원들에게 '좌표 찍기' '문자폭탄' 등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최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과도한 표현을 멈춰 달라"고 호소한 이유도 자신의 정치적 확장성에 한계를 긋지 않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에게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는 당내에서 '정계개편'과 '분당'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일이다. 만약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됐는데 ①사법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불거지거나 ②4월 재보선에서 패배하거나 ③당직 인선 등에서 계파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면 이 의원에게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는 이 의원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될 여지도 있다.
'이재명 없는 민주당'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질서가 사라진 곳에는 혼돈이 찾아온다. 친명과 친문 모두가 내세울 대선주자급 수장이 없는 상황은 뻔한 비대위를 불러올 것이고, 이것으로는 수습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은 결코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언론 노출을 늘리고 있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이런 타이밍에 등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국민통합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대표도 이때를 기점으로 정계개편 등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치 부재 시대를 틈타 노련한 '정치 9단'들이 정치판을 뒤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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