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듣는 사람 없는 세상 .. 말없이 정다운 산처럼

기자 2022. 7. 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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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물에 그 밥'은 서로 어울리는 것끼리 짝을 이뤘을 때 쓰던 속담인데 요즘은 쓰임새가 딴판이다.

"정말 산에 들어가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저 음악만을 위해서 살고 싶다는 얘기였다."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의 허준이 교수도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을 듣는 사람은 없으니/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만이/ 거리를 덮었네'(이정선 '거리' 중). 그의 음반 이력서엔 특이하게도 1집 이전에 마이너스집, 0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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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이정선 ‘산사람’

‘그 나물에 그 밥’은 서로 어울리는 것끼리 짝을 이뤘을 때 쓰던 속담인데 요즘은 쓰임새가 딴판이다. 신선한 조합과 거리가 먼 부정적 어감으로 바뀌었다. 상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질려서 안 먹는 것이니 식중독보다는 식상함에 가깝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문화게시판에 모처럼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 청량감을 준다. 한 사람은 피아니스트, 한 사람은 수학자다. 왜 떠들썩하지? 재능과 기량은 전문가들이 인정했으니 육성을 통해 인성을 가늠한다. 밴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임윤찬은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 해명을 했다. “정말 산에 들어가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저 음악만을 위해서 살고 싶다는 얘기였다.”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의 허준이 교수도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수학도 글쓰기나 음악 같은 예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종류가 다를 뿐 표현하기 어려운 대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같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듣다 보니 가수이자 작사, 작곡가인 이정선이 생각난다. 음악도 미술의 한 범주라 서로 통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서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오랜 기간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강의했다. 수학자인 허 교수 식으로 말하자면 재료가 다를 뿐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의 무언가(無言歌)엔 자연과 기타가 동행한다. ‘산에 들어가 기타만 치고 싶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 평생을 함께 살았다.

이정선은 자연인, 자유인이다. ‘어려서도 산이 좋았네…젊어서도…늙어서도 산이 좋아라…나는 나는 산이 될 테야.’ 산이 좋은 이유엔 군더더기가 없다. ‘말없이 정다운 친구’이기 때문이다. 말이 많거나 정이 없으면 오래도록 친구 삼기 어렵다. 그의 벗들은 작은 섬에서 큰 산까지, 깊은 바다에서 높은 하늘까지 푸르게 연결돼 있다. ‘바다 저 멀리 갈매기 날으면/ 소년은 꿈속의 공주를 불렀네’(‘섬 소년’ 중). ‘새파란 잔디 위에 누워/ 드높은 하늘을 보면/ 두둥실 떠가는 구름 한 점은/ 내 작은 마음이어라’(‘구름 들꽃 돌 연인’ 중).

호적이나 출석부에 적힌 본명보다 해바라기, 풍선, 신촌블루스란 예명으로 활동한 기간이 더 길었다. 이정선이 노래의 꽃밭에 들어가기 전 ‘해바라기’엔 김의철이 있었는데 두 사람의 이미지는 구름으로 이어진다.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가만히 이 땅에 내리면/ 어디라도 외로울까’(이정선 ‘뭉게구름’ 중). ‘저 하늘의 구름 따라/ 흐르는 강물 따라/ 정처 없이 걷고만 싶구나’ 김의철이 만든 이 노래는 제목이 두 개다. 하나는 ‘저 하늘의 구름 따라’ 또 하나는 ‘불행아’다. 불행을 불행이라 못 부르던 시절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노래의 첫 소절이 그냥 제목으로 행세한 거다. 건전가요의 대명사인 이정선도 엄혹한 시대의 칼날 앞에서는 무기력한 적이 있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을 듣는 사람은 없으니/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만이/ 거리를 덮었네’(이정선 ‘거리’ 중). 그의 음반 이력서엔 특이하게도 1집 이전에 마이너스집, 0집이 있다. 가사가 검열에 걸려 퇴짜 맞고 음반 사진이 퇴폐(장발)라서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영화처럼 살고 싶다고 하니까 ‘그럼 두 시간만 살 건가’라고 누가 댓글 단 걸 보았다. 음악동네 주민들은 노래처럼 살고 싶다. ‘노래하는 이유를 왜냐 묻지 말아요/ 항상 노래하는 기쁨으로 나는 노래할 테요’(이정선 ‘노래’ 중). 지루하게 말로 안 하고 평균 4분 안에 다 표현한다. 뒤끝도 없다. 그의 노래가 생명력을 갖는 건 그가 차린 밥상이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리듬앤드블루스 대신 한국적 포크앤드블루스를 추구했고 그가 저술한 기타교실은 수많은 생활음악인의 자양분이 됐다. 기타 치고 노래하며 평생을 ‘산 사람’이 뿜어내는 음악의 피톤치드로 그의 산은 오늘도 맑고 향기롭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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