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대책에 횡재세·대중교통 지원 정책 활용하자[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5)
2022. 7. 11. 08:15
전 세계가 물가로 난리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2로 전년 같은 달보다 6.0%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에 기록한 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물가가 외국에서 수입된 유류, 곡물 중심으로 오르다 보니 서민들의 체감도가 더욱 크고, 대외적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고물가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지난 5월 30일 제1차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핵심은 식용유, 돼지고기 등 식품원료 7종에 대한 관세와 커피와 코코아 원두에 붙는 부가가치세를 내년까지 면제하는 등 생산자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줄여 판매 가격의 인하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가 선호하는 이른바 ‘시장친화적 물가 대책’인 셈이다.
시장친화적 물가 대책의 한계
특정한 정책을 선호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선호하는 방식의 장단점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생산자에게 감세하는 방식의 물가 대책은 시장친화적일 순 있어도, 효과가 늦을 수밖에 없다. 시장이 경쟁적일수록 느리게나마 줄어든 생산비가 판매 가격에 반영되고, 덜 경쟁적인 시장에선 줄어든 생산비는 생산자의 잉여로 돌아간다. 실제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의 효과는 미미했고, 시장에서 거의 잊힌 물가 대책으로 취급받았다.
뒤늦게 정부는 6월 19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당면 민생 물가안정 대책’을 내놨다. 골자는 이미 30%까지 인하한 유류세를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낮추는 것이다. 7월까지였던 유류세 인하 시한도 연말까지로 늘렸다. 또한 경유 사용 운송사업자에게 9월까지 한시적으로 지원 중인 유가연동보조금의 기준가격을 낮춰 지원액을 늘리고, 대중교통비의 소득공제율을 상향하는 등의 내용도 담았다. 이렇게 여러 물가 대책을 내놨지만, 사실상 유류세 인하가 물가 대책의 거의 전부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딜레마의 관점으로 유류세 인하는 얼마만큼 효과적인지, 다른 효과적인 대책들은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유류세 인하는 물가 대책으로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정책이다. 물론 유가가 낮은데 물가가 고공행진 하는 경우엔 고려 대상이 아니겠지만, 한국의 고물가는 대부분 고유가를 동반했다. 이는 고물가의 요인이 외부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 즉 ‘공급’ 측면에서 상당 부분 비롯됐다는 의미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11일 국무회의 의결로 이듬해 4월까지 유류세를 역대 최대폭인 20%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엔 유류세 인하 폭을 30%로 확대하고, 인하 시한을 7월까지로 연장하는 등 고유가 부담 완화 3종 정책을 발표했다.
유류세 인하 이후로도 기름값은 계속 올랐다. 지난해 11월 1700원대인 휘발유 가격이 유류세 인하폭을 30%로 확대한 5월엔 1900원대를 넘어 최근엔 21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기간에 국제유가는 일정 기간 올랐다가 내렸다. 보통 국제유가와 유류세 변화가 유가에 반영되기까지 일정 기간이 걸린다. 국제유가가 반영되기까지는 비축량에 따라 다르지만 2~3주일, 유류세는 ‘제조장에서 반출될 때’ 부과되기 때문에 가격 반영에 1~2주일의 시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유류세 인하, 효과는 제한적
문제는 시차를 감안해도 국제유가나 유류세의 변화가 고유가 시기에 국내 가격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정부는 유류세를 인하하고선 매번 전국의 주유소들에 가격을 내렸는지를 점검한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7월 1일 “주 2회 이상 전국 순회 주유소 현장점검을 집중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여러 수치로도 드러난다.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실이 지난 6월 2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류세 20% 인하 시에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은 1리터당 182원이 감면됐지만, 실제 가격에 미친 효과는 69원 인하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유류세 인하 전후의 국제 휘발유 가격 차이를 감안한 것이다.
정유사들은 고유가의 상황에서 이익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국내 정유 4사인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의 합산 영업이익은 올 1분기에만 4조766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유류세 인하는 상당한 세수 결손을 감수하고 실시하는 정책인데도 소비자들이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감세로 유류 소비가 유지되도록 지원하는 성격도 있어 탄소 배출 감축에도 역행하고, 정유기업의 막대한 이익을 정부가 일부 보장하는 성격도 있다.
유류세 인하의 혜택도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이 더 많이 누린다. 이는 소득계층별로 ‘기름값에 따른 수요의 변동’(수요의 가격탄력성)을 따지지 않아도 분명하다. 고소득층의 유류 소비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계층별로 가격탄력성은 여러 연구마다 조금씩 결론이 다른데 기본적으론 고소득층이 더 탄력적으로 수요를 조절하는 편이고, 소득계층보다 차량 보유 여부 등 다른 요인들이 탄력성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유류세 인하의 장점은 ‘신속성’이다. 이는 현행 유류세 법체계에서 탄력세율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력세율이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정부나 지자체가 신속하게 일정 범위 내에서 세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하는 제도다. 유류세 인하가 물가에 대한 자동반사적 대응인 것처럼 유류세 인하의 효과가 제한적일 때도 자주 나오는 대안은 탄력세율을 조정하는 법 개정이다. 현행 30%인 탄력세율을 50~60%로 확대하자는 법률 개정안들이 다수 제출됐다. 이렇게 법률이 개정되면 신속하고도 과감한 세율 인하가 가능해진다.
유류세 인하가 장단점이 뚜렷하기에 다른 정책 대안들과의 조합을 이뤄 단점을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전례가 있다. 유가가 급등하던 2008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유가환급금’ 제도를 시행했다. 명칭이 ‘환급금’이었을 뿐이지, 실제론 유류 구매 여부를 따지지 않고 연 소득이 3600만원 이하인 근로자(자영업자는 연 소득 2400만원 이하)에게 최대 24만원을 지급했다. 수요 측면에서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물가로 고통을 받는 소득 계층에 직접 현금을 지급한 선례이고, 당시 소득재분배와 소비효과 등이 충분히 검증됐다.
횡재세와 대중교통 지원 정책
‘횡재세(windfall profits tax)’라고 불리는 초과이득세는 국내에선 여러 오해가 있지만,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미국 상원에도 법안이 제출되며 진지하게 논의하는 제도다. 일각에선 초과이득세가 부과되면 유류 공급이 줄어 오히려 유가가 올라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익에 대한 과세는 공급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의 석유회사들엔 횡재세가 공급을 늘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들 업체는 최근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리면서도 셰일가스 개발 등 공급량을 늘리는 투자에 인색하고,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 비정유 사업 비중을 늘리고 있는 국내 정유 업체들에도 횡재세는 괜찮은 투자 유인이 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세계 10위 이내의 배터리 업체이고, GS칼텍스는 수소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소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고,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복합시설 등에 투자하며 정유사업의 비중을 꾸준히 축소해왔다. 이들 신산업에 대한 투자액을 늘릴수록 세금이 부과되는 이익의 규모가 줄어든다. 그러고도 거둔 횡재세 세수입은 다른 고물가 대책에 사용할 재원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횡재세 비판 논리가 있다. 적자일 때는 지원하지 않으면서 왜 이익이 날 때만 더 과세하려 드느냐는 주장이다. 통상적인 이익에 과세하는 게 아니라 유류 급등기에 얻은 초과이득에 대한 과세이고, 심지어 정부가 유류세 인하라는 조세지출을 통해 보장한 이윤이라 과세의 명분은 충분하다.
국내에서도 조만간 횡재세 법안이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은 유가가 급등한 해에 정유사가 얻은 이익을 최근 몇년간 얻은 평균 이익과 비교해 ‘초과이득’을 개념화하고, 여기에 일정한 세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담아 법안을 마련 중이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정유사들이 자발적으로 출연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자발적인 출연이 안 될 경우 횡재세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하나 고려해볼 만한 전향적인 정책 분야는 대중교통이다. 이 정책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촉진하는 ‘캠페인’이 될 수 있다. 유류세 인하라는 역진적인 정책을 불가피하게 사용할 때가 실험적인 교통정책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미 독일은 6월부터 석 달간 ‘9유로 티켓’ 하나로 한 달간 근거리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뉴질랜드는 지난 3월 석 달간 모든 대중교통 요금을 절반으로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국내에선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수도권에 혜택이 집중되는 단점이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지옥철로 불리는 서울지하철 9호선 등 각 지역의 대중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서 지난 7월 4일 주최한 ‘고유가 대책’ 토론회에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대중교통 활성화는 고유가 시대에 유류 사용을 줄일 수 있고,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며 “독일의 9유로 티켓과 같은 정책이 고유가 대책으로 먼저 제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기후친화적, 경제정의적, 서민친화적 정책들과 조합을 이룬다면 정부의 시장친화적 대책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정부가 유연한 자세로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형중 정책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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