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보호관의 권한이 이상하다

2022. 7. 1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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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불시방문 불가…군부대 방문 시 3일 전에 알려야
ㆍ국방부 방문조사 중단 요구권에 활동 제약 우려도

“군사 보안이 사람의 소중함보다 앞설 순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6월 ‘군인권보호관’ 도입을 촉구하며 낸 성명 내용의 일부다. 인권위는 “군 문화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인권이 존중되는 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외부통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사건’ 등이 계기가 됐다.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부친 이주완씨가 지난해 10월 7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 중사의 빈소에서 국방부의 최종수사 결과 보도자료를 구기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는 그해 12월 군인권보호관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인권위 산하 군인권보호관은 지난 7월 1일 공식 출범해 첫발을 뗐다. 군대 내 인권침해·차별행위를 조사하고, 시정조치·정책권고 등의 역할을 한다. 군을 감시하는 ‘옴부즈맨’이다.

군의 옴부즈맨 제도는 2005년부터 논의가 진행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특히 2015년에는 여야가 결의안까지 채택하며 강조한 사안이지만 불발됐다. 국방부의 반대가 주된 걸림돌이 됐다. 그사이 수많은 폭행·성폭행 등 인권침해, 이와 연계된 사망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국방부는 사건이 발생해 비난 여론이 비등할 때는 어떤 개선안도 받아들일 것처럼 저자세를 나타내다가, 시간이 지나면 “이미 권리구제 제도가 10개나 있다”는 식으로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부대 방문 및 사망사건 입회 우여곡절 끝에 군인권보호관이 도입됐지만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권한과 조직·인력 면에서 과거에 제안된 안보다 후퇴했기 때문이다.

군인권보호관이 시행되면서 인권위는 군인권보호국을 설치했다. 그 아래 3개 과를 뒀다. 군부대 방문조사 및 상시 상담체계 구축, 군인 사망사건 수사 입회, 성폭력 사건 대응, 중대 인권침해 사안의 직권·실태조사 강화, 군인권 교육 전문성 강화, 유가족 지원 등의 업무를 맡는다. 인권위는 무엇보다 ‘상시적인 감시를 통한 예방’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군인권보호관의 권한 가운데 핵심은 군부대를 직접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구금시설만 출입할 수 있었다. 또 군인 등이 복무 중에 사망한 사례가 발생하면 국방부 장관이 즉시 군인권보호관에게 통보해야 한다. 사망사건의 조사·수사에 군인권보호관 등이 입회도 할 수 있다. 군의 사망사건에 인권위가 조기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기획조사 및 실태조사를 강화한다는 계획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의료조치 소홀로 인한 병사 사망사건, 보복감찰 등의 직권조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이 두가지는 그간 끊임없이 문제로 지적된 사안이다. 특히 보복감찰은 내부고발이나 신고를 한 군인에게 역으로 감찰을 통해 불이익을 주는 행태를 일컫는다. 건전한 문제 제기를 저해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심화하는 요소로 꼽혔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성추행 피해자가 신고했는데도 거꾸로 피해자를 샅샅이 뒤져 과거의 과오를 뒤집어씌우기도 한다”라며 “과거에는 인사 불이익을 주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역고소를 하거나 다른 사안을 털어 고소하는 등 더 악질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인권보호관 출범식이 열린 지난 7월 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참석자들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불시방문은 불가능 군인권보호관의 실효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군인권보호관이나 조사관은 필요하면 군부대를 방문할 수 있지만, 불시방문은 불가능하다. 군부대 방문을 위해선 부대장에게 취지, 일시, 장소 등을 3일 전에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 긴급한 상황 등에는 국방부 장관에게 12시간 전까지 통보해야 한다. 당일 조사가 필요할 때는 일과시간 중 4시간 전까지 통지해야 한다. 군인권보호관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권한이 없다. 이를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불시방문권이 당초 고안됐다. 또 수사 중인 사건의 자료는 제출받지 못한다.

국방부의 방문조사 중단 요구권도 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요소로 평가된다. 국방부 장관은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군인권보호관에게 방문조사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 특별한 사정이란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기밀에 관한 사항으로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주거나 국가비상사태 또는 작전 임무에 지장을 주는 등’이다.

인력 문제도 있다. 군인권보호관은 별도로 뽑는 게 아니다. 기존 인권위 상임위원 3명 가운데 대통령이 지명한 1명이 겸직하는 구조다. 업무 부담이 커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전체 인력 25명도 빠듯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인권보호관이 담당해야 할 부대가 무려 1300여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불시방문권과 상임위원 증원 문제는 지난해 11월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현행 안대로 정리가 됐다. 상임위원 증원은 제도 시행 1년 뒤 평가를 통해 재논의하기로 했다. 해당 법안을 논의한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는 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도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발언권을 얻은 이씨는 불시방문권과 상임위원 증원을 요구한 바 있다.

7년 전에 도입됐다면… 이씨는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중요성을 피력하며 이런 말도 했다. “만약에 황영철 의원이 새누리당 때 만들어준 그 법안을, ‘윤 일병’ (사건) 때 그걸 통과시켰으면 우리 예람이는…. 또 예람이 관 옆에 한 10일 정도 와 있던 하사 그 사람도 공군에 의해 은폐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안 나타났다니까요.”

이씨가 언급한 ‘황영철 의원 법안’은 2015년도에 등장했다. 과거 상황을 되돌아보면, 옴부즈맨 제도가 처음 논의된 건 2005년이다. 당시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간부가 훈련병에게 인분을 먹인 사건,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서 일병이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진 사건 등이 잇따라 터졌다. 이에 정부는 민·관·군 합동으로 병영문화개선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개선책을 논의했다. 그 가운데 옴부즈맨 제도도 포함됐다. 정부는 독일 사례를 차용해 국회 내 옴부즈맨을 두는 방안을 검토했다. 국방부는 독일을 직접 방문해 현지 조사까지 했다. 하지만 군의 반발로 무산됐다. 대신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 조직을 설치했다.

옴부즈맨 제도가 다시 부상한 건 2014년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정부는 물론 국회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국회는 2014년 11월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를 발족해 약 9개월간 병영생활을 둘러싼 문제 전반을 광범위하게 논의했다. 옴부즈맨의 일환으로 인권위 산하에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도출했다. 특위의 결과물을 토대로 여야는 군인권보호관 도입을 촉구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후속 조치로 황영철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2015년 7월 인권위 산하에 군인권보호관을 두는 내용의 인권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군인권보호관은 불시방문권을 갖도록 했고 인권위 상임위원을 1명 늘려 군인권보호관을 전담하게 했다. 국방부 장관의 방문조사 중단 요구도 제한적으로만 행사할 수 있게 규정했다. 현행 군인권보호관 제도보다 전향적인 내용을 담았다.

2014년 8월 4일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방부 ‘인권’에 거부감 아울러 당시 국회에서는 군인권을 향상하고 권리·의무와 관련된 사항을 포괄적으로 담은 내용의 여러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는 이들 법안을 병합 심사해 2015년 12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도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다만 구체적인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별도의 법률에 명시토록 했다. 군인권보호관 도입의 의지를 보여주는 선언적인 조항을 만드는 데 그친 셈이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군인권보호관을 어느 기관에 둘지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방부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당시 윤후덕 소위원장의 회의록 발언을 보면 국방부의 저항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국방부에서도 이 제도(군인권보호관) 도입에 아주 신중한 입장을 계속 피력하고 있다. 국회 특위와 민·관·군 합동특위에서 군 옴부즈맨 도입을 의결하고, 정부 내 어느 기관에 두는 것으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여전히 지극히 신중한 미온적 태도를 보여 군인권보호관에 관한 조항이 아주 미진하게 성문됐다는 심사보고를 드린다. 부끄럽다.”

국방부는 군인권보호관 설치에 관한 조항을 아예 빼자고 주장했다. 도입하더라도 국방부 산하에 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국방부는 논의 내내 ‘인권’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인권을 빼고 ‘군기본권보호관’으로 명명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권리구제 제도 10개가 이미 마련돼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헌병, 검찰, 기무, 소원수리, 감찰, 헬프콜, 병영생활 및 성고충 상담관 등이다. 그러나 “기존 제도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법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부대 정기 방문해 인권상황 등 조사”
박찬운 초대 군인권보호관 인터뷰

박찬운 초대 군인권보호관이 지난 7월 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군인권보호관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초대 군인권보호관은 박찬운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60)이 맡았다. 군인권보호관은 인권위 상임위원 3명 가운데 대통령이 지명하는 1명이 겸직한다. 박 위원은 지난 7월 6일 서면인터뷰에서 “군부대 방문조사를 체계적으로 실시해 인권침해의 상황을 조기에 발견, 제도적 차원의 권고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위원의 임기는 내년 1월까지다.

-군인권보호관 출범 배경과 취지, 의미는.

“한마디로 말하면 군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대해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군대 내에서 구타, 성폭력, 의문사 등이 일어났지만 많은 경우 피해자나 유족이 군의 사건처리를 믿지 못했다. 군인권보호관은 2014년 일어난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이라는 법률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군인의 기본권 보장과 인권침해 구제를 위한 기관으로 군인권보호관을 두기로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랜 기간 만들지 못했다.”

-역점 사업은 무엇인가.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사건 등 몇건의 성범죄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또다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군인권보호관의 우선적인 임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군에서 매년 극단적 선택 등으로 젊은 병사들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고 있다. 이런 사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군대 내에서 인권침해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도록 부대 방문조사를 체계적으로 실시해 인권침해의 상황을 조기에 발견해 제도적 차원의 권고를 해나가겠다. 군의 인권문화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군인들을 상대로 한 인권교육에도 큰 관심을 갖고 일해 나가겠다.”

-‘군부대 방문조사를 통한 예방강화 사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그동안 인권위는 특별한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교도소 등을 방문해 조사한 다음 인권개선을 위한 맞춤형 권고를 해왔다. 다만 군부대를 직접 방문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는데, 이번에 확보했다. 인권위는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군부대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인권상황이 어떤지, 인권침해가 일어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고 한다.”

-군의 특수성과 폐쇄성을 고려하면 군인권보호국 내 조사관 등 직원들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선 지원조직인 인권위 사무처(군인권보호국) 직원들의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권위는 이전에도 군인권조사과를 두고 매년 수백건의 군인권 진정사건을 처리해왔다. 상당수의 조사관이 이미 훈련돼 있다. 앞으로 조사관들의 역량을 더 높이기 위해 여러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정기적인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용하려고 한다.”

-불시방문 권한이 없어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법에 방문조사 때 사전통지를 해야 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군인권보호관의 활동을 (국방부나 군에서) 혹시나 방해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국방부와 최근 협의를 통해 시행령을 만들면서 방문조사가 필요한 경우 당일 조사도 가능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군당국의 자료제출 문제는 법률에 명문으로 자료제출 요구권을 규정하고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제출하지 않는 경우엔 인권위가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군당국이 인권위에 협조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국방당국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존 상임위원이 겸직해 업무 과중 우려도 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현재로선 군인권보호관을 전담하는 상임위원이 없이 기존 상임위원이 겸무하는 체제라 인권위로선 부담이 크다. 입법 과정에서 1년 정도 업무를 해본 다음 군인권보호관을 전담하는 상임위원이 필요한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임기가 반년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하고 퇴임하기는 어렵다. 다만 군인권보호관의 업무 체계를 잘 만들어 후임자에게 넘겨 줄 수 있도록 하겠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 아래 시급히 해야 할 몇가지 중요 인권과제를 골라내 임기 중에 관계기관에 권고하도록 하겠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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