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판단 기준, 과연 공정한가

임석규 2022. 7.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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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꼬여 모텔방을 공유하게 된 세 남자.

미국 뉴욕 빈민가 출신 클라런스와 크리스토퍼는 명문 헤럴대학 편입 면접을 보러 왔다.

편입생 선발 기준의 공정성 문제가 핵심 논점이다.

오는 23일까지 공연하는 <편입생> 은 두산아트센터의 '공정 시리즈 연극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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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 연극 '편입생'
'미국식 교육 불평등' 다룬 작품
원작자 루시 서버 교직경험 바탕
능력주의·공정에 대한 질문 던져
미국식 교육 불평등의 문제점을 다룬 연극 <편입생>은 우리 사회의 공정, 능력주의 논쟁과 맞닿아 있다. 두산아트센터에서 5일 개막해 23일까지 이어진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일정이 꼬여 모텔방을 공유하게 된 세 남자. 미국 뉴욕 빈민가 출신 클라런스와 크리스토퍼는 명문 헤럴대학 편입 면접을 보러 왔다. 데이비드는 이들을 ‘지역 인재’로 추천한 장학 프로그램의 담당자다. 바깥은 찬 바람이 몰아치고, 주문한 배달 음식은 오지 않으며, 조붓한 모텔에 침대는 하나밖에 없다. 세 남자는 각각 처한 상황으로 화가 나 있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지난 5일 개막한 연극 <편입생>(연출 윤혜숙)은 ‘미국식 교육 불평등’을 다룬 작품이다. 원작자 루시 서버가 뉴욕 브롱크스의 한 고교에 재직할 당시 만났던 두 청년이 모델이다. 2018년 미국 초연 당시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작품 주제가 능력주의와 공정이라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과 맞닿아 있다.

섬세한 문학청년 클라런스와 뉴욕 레슬링 랭킹 2위인 체육특기생 크리스토퍼. 같은 빈민가 동네 출신인 두 청년은 앞날이 빤히 예견되는 삶으로부터 탈주를 꿈꾸며 각각의 궤도에서 분투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삶을 기약할 수 있는 동부 명문대 편입이란 일생일대의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세 남자와 2명의 면접관이 출연진의 전부인 이 단출한 연극에서 면접관 조지아 교수와 데이비드가 펼치는 불꽃 튀는 논전이 절정을 이룬다. 편입생 선발 기준의 공정성 문제가 핵심 논점이다. 이 대학 출신인 데이비드는 두 청년 모두 편입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면접관 조지아는 그중 한명을 한사코 거부한다. 에스에이티(SAT) 점수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기준이 존재하는 이유가 다 있어요. 당신은 지금 기준을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가 그동안 구축해온 시스템을 흔들려 하고 있어요.” 이에 데이비드는 조지아가 말하는 그 기준이란 게 본시 공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 애는 결핍에서 시작했어요. 우린 과잉에서 시작했고요.” 공정하려면 기준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조지아, 출발선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기준은 공정하지 않다는 데이비드. 두 사람의 대립에서 어쩔 수 없이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쓴 공정, 능력주의 논란을 떠올리게 된다.

결과는 면접관의 승리. 두 청년 가운데 한명은 탈락한다. 명문대 편입을 통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건너고자 했던 청년의 꿈은 좌절된다. 연극 막바지, 그 청년이 카페 청소를 하면서 담담하게 내뱉는다. “이젠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봐야겠어.” 연극은 묻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있어야 할 곳’이 정해지는 사회가 공정한가.

연극 <편입생>은 선천적 삶의 조건이 교육과 일자리의 질을 결정하고, 그것이 다시 대물림되는 구조에 질문을 던진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이 연극엔 좀 더 근본적인 여러 물음이 숨겨져 있다. 죽기 살기로 명문대에 들어가야만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사회를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빈민가에 남은 두 청년의 친구들은 어쩔 건가. 연극 속 면접관이 외치는 소리도 외면할 수 없다. “깨끗하고 정직하고 고통스러운 싸움, 이거밖에 없어.” 부조리한 구조의 사회에 속수무책으로 내던져진 개인이 택할 수 있는 방책이란 그저 고통스러운 싸움일 수밖에 없는가. 윤혜숙 연출은 “선천적 삶의 조건이 교육과 일자리의 질을 결정하고, 결국 선천적 삶의 조건이 대물림되는 구조를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검열과 공정, 안전 등 이 시대 사회 현안에 천착해온 윤혜숙 연출은 2020년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했다.

오는 23일까지 공연하는 <편입생>은 두산아트센터의 ‘공정 시리즈 연극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앞서 제헌헌법 제정 과정을 다룬 이양구 작, 이연주 연출의 <당선자 없음>, 영국 극작가 루시 커크우드 원작의 <웰킨>을 각각 지난 5월과 6월에 상연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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