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와 전쟁 피해 한국 온 우크라 고려인, 생계와 또 다른 전쟁 [심층기획]

한현묵 2022. 7. 1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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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에 454명 둥지
전쟁터 무작정 탈출.. 신분증·여권 못 챙겨
인접국 루마니아·폴란드 등서 난민생활
전쟁 장기화.. '할아버지 나라'에 도움 요청
고려인마을, 모금운동 벌여 한국 데려와
300여명 항공권 구입 못해 아직 난민생활
취업비자 있는 동포, 농촌·공사장서 구슬땀
언어장벽 가장 큰 애로.. 밤엔 한국어 '열공'
기업· 병원·코트라 등서 후원 손길 이어져
단기비자론 취업 못해 생계 유지 어려워
건보 혜택 없어 장애인·부상자 치료 막막
“전쟁을 피해 겨우 한국에 왔는데, 생계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지난 3일 7000여명이 모여 사는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마을 한복판의 고려인마을 지원센터와 고려인마을 교회 입구에는 10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국내 한 화장품 회사가 기증한 생필품이 담긴 선물 꾸러미를 받기 위해서다. 매주 이 지원물품과 후원을 받아 생활하는 이들은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다. 이날 최근 고려인마을로 온 고려인 동포 레나씨는 “우리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치약과 칫솔, 비누가 들어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난 2월 러시아 침공으로 무작정 피란길에 오른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가 고려인마을에 오기 시작한 지 이날로 110일이 지났다. 이들 대부분 낮에는 농촌과 건설현장의 일용근로자로 일을 하고 밤과 휴일에는 한국말을 배우거나 문화를 익히는 주경야독의 낯선 생활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 고향’ 한국에서 안정적인 정착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전투기 소리에도 대피소로… 여전한 트라우마

이날까지 전쟁의 참화를 피해 고려인마을에 둥지를 튼 고려인 동포는 454명이다. 이들이 고려인마을로 들어오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신분증이나 여권도 챙기지 못하고 무작정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인접국인 루마니아와 폴란드 등에서 난민생활을 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떠올렸다. 지난 3월부터 광주 고려인마을에 도움을 요청하는 문의가 잇따랐다. 하지만 비자 발급과 항공권이 한국행의 발목을 잡았다.

고려인마을은 비행기표 마련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이날까지 7억원 정도를 모금했다. 고려인마을은 이 후원금으로 항공권을 구입해 고려인 동포를 고려인마을로 데려왔다. 고려인마을 대안학교인 새날학교 이천영 교장(목사)은 “난민생활을 하는 고려인 동포 300여명이 비행기표가 없어 아직도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후원금이 모이면 바로 비행기표를 구입해 보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벗어났지만 고려인 동포들의 ‘전쟁 트라우마’는 여전했다.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에서 고려인마을로 온 고려인 동포 안엘레나씨는 ‘지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엘레나 가족의 집은 한밤중에 날아온 미사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간단한 짐만 챙겨 인근의 지하창고로 피신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폭격으로 이들은 한 달간이나 캄캄한 지하에서 지내야 했다. 고려인마을에 왔지만 엘레나 가족은 끔찍한 지하생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은 매주 일요일 고려인마을 지원센터에서 후원물품을 받아 생활한다.
◆후원 손길 잇따라… 빠른 한국생활 정착

고려인마을 지원센터는 전쟁을 피해 온 고려인 동포에게 3개월 치 월세와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후원금이 바닥나면 이런 지원도 줄여야 한다. 때문에 석 달 후에는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한다는 약속을 받는다.

취업비자가 있는 고려인 동포들은 경제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들은 농사철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일당제 일을 다닌다. 또 건설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기도 한다. 하루 10만∼20만원의 수입을 저축하면서 경제 자립의 발판을 삼고 있다.

고려인마을 앞에는 매일 새벽 4시부터 용역회사의 대형버스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용역회사 관계자는 “고려인 동포들이 성실하게 일을 잘해 농촌에서 인기가 많다”며 “농촌에서는 부족한 일손을 채울 수 있고 동포들은 돈을 벌 수 있어 상호 이익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인 동포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데 가장 큰 애로는 언어다. 고려인마을은 3곳에서 매주 2∼3차례 한국어 교실을 연다. 이날 고려인마을 교회에 마련된 한글학교에서는 6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주제로 말하기 수업을 했다. 강사는 한국어 자격증을 취득한 고려인 동포다.

고려인 동포를 돕는 후원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기독병원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 협약을 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벽산은 최근 고려인 동포의 항공권 구입에 써 달라며 현금 2억원을 전달했다. 코트라 임직원도 고려인 동포의 생활에 필요한 이불과 주방용품 각 30세트를 기부했다. 씨월드고속훼리는 최근 4000만원을 들여 고려인 동포 150명을 초청해 제주도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사랑실은 제주도 투어’를 했다.

◆단기 비자로 생활 불안정… 치료비 마련 막막

90일짜리 단기 비자를 발급받은 고려인 동포들은 생활의 제약이 많다. 이들은 전쟁 중에 급하게 탈출하느라 서류를 갖추지 못해 재외동포나 방문취업 비자를 받지 못한 경우다. 고려인마을 지원센터 도움으로 단기 비자를 장기 비자로 바꾸고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 포기하는 고려인 동포들이 적지 않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장기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고려인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며 “조부모와 부모, 본인까지 3세대의 출생·사망 증명서와 여권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서류를 챙겨 오는 이들이 적어 난감할 때가 많다고 신 대표는 설명했다.

단기 비자로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다. 취업을 하지 못하고, 아파도 건강보험공단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고려인 동포는 3명이다. 박스베타씨는 피란 중 옆에 폭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청각을 손실하고 파편으로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건강보험 미적용으로 수술비 마련이 걱정이었다. 다행히 고려인마을 부설 광주진료소의 도움으로 지난 4일 전남대병원에서 수술 전 검사를 했다.

전쟁을 피해 고려인마을에 온 고려인 동포 가운데는 6명의 장애인이 있다. 장애 정도가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수술조차 미루고 있다. 이들은 평생 의료지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이를 감당해야 할지 앞이 캄캄할 뿐이다.

◆1860∼1945년 러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우리 동포

광주 광산구 월곡동에는 고려인마을이 있다. 경기 안산과 인천 함박마을도 고려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최근 러시아 전쟁을 피해 고려인마을에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높다.

고려인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항일 독립운동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농업이민 등 다양한 이유로 러시아(구소련)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우리 동포다.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등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됐다. 또 1938년 소련의 민족어 사용금지 정책으로 고려인 후손들은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점점 잃게 됐다. 2, 3세 등 고려인 후손들은 한국과 단절된 채 낯선 땅에서 살았다.

고려인 후손들이 한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은 1991년 한·러 수교 이후부터다. 2000년 초반부터 고려인 후손들이 한국을 찾아 집단생활을 하면서 고려인마을이 생겨났다. 광주 고려인마을도 2004년 산업연수생으로 온 고려인들의 임금 체불 문제를 계기로 결성된 공동체 모임이 모태가 됐다. 이후 문을 연 고려인마을 지원센터가 새로 입국하는 고려인들의 한국어 통역과 숙소 제공, 취업 알선 등을 하면서 성공적인 정착의 기틀을 마련했다. 광주시는 2013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고려인 주민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고려인 상당수는 무국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고려인에게 국적 회복 신청 기회를 부여했지만 대부분 시골에서 살아 그 기회를 놓쳤다. 또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가 없어 국적 취득을 하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무국적 고려인에게 국적 취득을 허용하면서 600여명의 고려인이 기회를 얻었다.

고려인마을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이용빈 의원이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5만명 이상의 무국적 고려인 동포가 재외동포 자격을 갖게 된다. 또 국내 무국적 동포들을 돕고 있는 관련 단체에 사업비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광주=글·사진 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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