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소송 걸자 조합 예금 빼낸 조합장..대법, 무죄취지 파기환송

시공사와 추가 공사비 두고 갈등..민사소송 제기 직후 예금 인출
1·2심 강제집행면탈죄 인정..대법 "시공사 채권 존재 증명 어려워"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22.3.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 추가 공사비를 놓고 갈등을 겪던 시공사가 법원에 예금채권 가압류 신청을 하자 조합 은행에 있던 예금을 모두 인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재개발조합장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1심과 2심에서는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먼저 채권이 존재하는지에 관해 판단해야 하는데, 형사재판과 별개로 진행된 민사소송에서 시공사에게 채권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강제면탈집행 혐의로 기소된 부산의 한 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조합장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이 사건은 재개발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A씨가 있는 조합에 추가 공사비 61억원의 지급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조합장이었던 A씨는 추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이에 현대산업개발은 2014년 6월23일 부산지법에 소송을 냈다. 아울러 조합 은행 예금채권에 대해서도 가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송달받은 A씨는 같은 달 30일 조합 은행에서 자금 13억원을 인출한 것을 비롯해 7월까지 모두 34억원을 인출했다. 검찰은 A씨가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해 채권자인 현대산업개발에 해를 끼쳤다며 강제집행면탈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1심과 2심은 강제집행면탈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예금을 인출해 소비하기 쉽게 현금화한 행위는 재산의 소재 및 소유관계를 불명확하게 하는 행위로서 강제집행면탈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민사소송 소장을 받은 뒤 수표와 현금을 인출한 행위는 채권자인 현대산업개발에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강제집행면탈죄에서 말하는 '은닉'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강제집행면탈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선 먼저 채권이 존재하는지에 관해 판단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선 현대산업개발이 조합에 대한 추가공사비 채권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한 이유로 현대산업개발과 조합 간의 민사소송 결과를 들었다.

형사재판과 별개로 진행된 민사소송에서 1심은 현대산업개발이 승소했지만, 항소심은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산업개발과 조합 사이에 추가공사 실시 및 공사대금 지급에 관한 약정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추가공사에 관한 약정이 있었더라도 조합의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본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은 민사소송 항소심 판결 이후 상고했으나, 최근 민사소송을 취하해 패소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관계에 비춰 보면 현대산업개발의 이 사건 조합에 대한 추가공사비 채권의 존재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sewry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