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인가 사고인가 19년 전 그날의 진실
“안에 못 나온 사람이 한 명 맞습니까, 부인이 맞아요?” 몸이 흠뻑 젖은 남자는 횡설수설할 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다급한 표정의 남자를 뒤로하고 산소통을 둘러멨다. 흙빛 저수지에 뛰어들었다. 뿌연 시야가 금방 새카매졌다. 부유물을 헤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이마에 달린 랜턴을 이리저리 휘저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저수지 바닥 한편에서 희미한 쇳덩이가 보였다. 주변을 더듬어 윤곽을 그렸다. 머리가 박혀 꼬리가 들린 화물차였다.
사고 차량이다. 불필요한 흔적을 남겨선 안 된다. 적재함을 손끝으로 그으며 천천히 운전석으로 나아갔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무도 없다. 갑자기 반대편 조수석을 조사하던 동료의 랜턴이 빠르게 움직인다. 사람이 있다. 동료가 팔로 감아 그대로 수면 위로 올라갔다. 여러 개의 팔이 뻗어와 뭍으로 끌어올렸다. 붉고 푸른 경광등에 비친 이는 남자의 아내였다(2003년 7월12일 진도경찰서 참고인 잠수부 박은준·이용범씨 진술조서, 2022년 6월28일 인터뷰 재구성).
한 시간 전이었다. 저수지 앞 삼거리 교차로 멀리서 두 사람을 태운 화물차가 서서히 중앙선을 넘었다. 도로를 벗어나면서도 속도는 줄지 않았다. 저수지 앞 수풀에 세워진 표지판을 치고 지나쳤다. 그대로 저수지 속으로 사라졌다. 물속에서 남자가 헤엄쳐 나왔다. 함께 타고 있던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뭍으로 올라왔을 때,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2003년 7월9일 밤 8시39분, 전남 진도군 의신면 한 저수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고 직후 운전을 했던 남편 장동오씨는 경찰에 “졸음운전을 했고 저수지에 추락한 순간에서야 정신을 차렸다”라고 설명했다. 옆자리에 잠들어 있던 아내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걸 알게 된 건 그가 급히 헤엄쳐 나온 후라고 했다.
경찰은 장씨를 의심했다. 교통사고 조사 과정에서 그가 가입한 보험 내역을 확인하고부터다. 장씨는 사고 발생 1년 전부터 여러 건의 보험에 새로 가입하거나 보험금액을 늘리고 있었다. 저수지 추락 사고로 보험금을 지급받을 경우, 장씨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약 9억원이었다.
경찰의 의심이 시작된 직후 장동오씨 자녀 삼 남매는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경찰에 “아버지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고의로 사고를 내 어머니를 죽였다”라고 진술했다. 가족 진술은 경찰 수사에 속도를 붙였다. 사건이 검찰에 넘겨진 이후부터는 장씨에 대한 의심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앞서 경찰은 장씨가 고의로 살해한 직접증거를 끝내 찾지 못해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상태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장씨를 처음 불러 조사한 날 곧바로 그를 긴급체포했다. 이후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이라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검찰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1심 법원은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장씨는 곧바로 항소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대법원도 2005년 9월28일 장씨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건 발생 후 19년, 무기수 장동오씨가 반성과 사죄를 해야 했을 시간이다. 그러나 그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교도소 수감 이후 홀로 재심을 세 번 청구했다.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가 쓴 자필 재심청구서와 탄원서는 A4 용지 900여 쪽에 달한다. 장동오씨는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정말 어머니를 죽였을까
그의 말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인 사람이 나타났다. 충남 서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었던 전우상 전 경감은 처음 이 사건을 접한 2017년부터 경찰에서 퇴임한 2020년까지, 3년에 걸쳐 직접 사건을 재조사했다. 조사 결과 전 경감이 내린 결론은 장동오씨의 주장과 같다. 그는 2020년 6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한 막내딸 장수경씨는 뒤늦은 고백을 했다. 전우상 경감이 3년 동안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을 보고, 감춰뒀던 진실을 뒤늦게 고백할 용기가 났다고 했다. 장수경씨는 과거 자신의 경찰 진술과 법원에 낸 탄원서, 법정 증언 모두 “과장됐거나 거짓이었다”라고 주장한다. 19년 전 아버지가 유죄를 받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말들이 전부 ‘위증’이었다고 말한다.
2021년 12월31일, 삼례 나라슈퍼 사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등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장동오씨를 대리해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재심청구서를 접수했다. 박 변호사는 1년 전 장수경씨와 전우상 전 경감을 만나 사건을 다시 검증했다.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했다는 법원 판결문, 무죄를 주장하는 무기수와 사건을 역추적한 경찰관, 그리고 뒤늦게 위증을 고백하는 막내딸.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일까. 〈시사IN〉은 2020년 취재 과정에서 장동오씨 사건 수사·공판 기록을 확보했다. 최근 추가 입수한 자료와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사건을 역추적했다.
“이 사건에는 살해 범의에 관한 직접증거가 없다. 따라서 법원에 제출된 각종 간접증거를 통해 피고인의 범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1심 법원이 판결문에서 ‘판단의 전제’로 밝힌 내용이다. 살인 혐의가 적용됐지만 이를 입증할 직접증거가 없었다. 유죄 확정 판단의 근거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확인한 간접증거들이었다.
간접증거는 크게 세 가지다. △사고 이후 확인된 화물차와 장씨 아내 사체에 남은 흔적이 단순 교통사고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사고 직전 아내에게 감기약이라고 속여 수면제 2정을 먹게 한 점 △사고 이전 장씨가 가입한 다수의 보험 등이다. 그러나 과거 수사·공판 기록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서, 재심 청구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된 증거들을 비교한 결과 각 간접 사실마다 오류와 모순이 확인됐다.
①국과수 감정인의 양심선언
당시 경찰과 검찰, 법원은 화물차 전면 유리와 내부의 ‘햇빛가리개 고정대’에 주목했다. 화물차를 저수지에서 인양한 이후 촬영된 사진을 보면, 전면 유리와 햇빛가리개 고정대가 빠져 있고, 천장이 내려앉아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화물차 햇빛가리개 고정대를 분리하면 차량 천장의 내장재가 헐거워지고 △이 경우 화물차 천장과 연결된 전면 유리가 쉽게 빠진다’고 전제했다. 이를 토대로 장동오씨가 사전에 살인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판단했다. 장씨가 화물차 앞 유리가 쉽게 빠지도록 추락 사고 전 미리 조작하고, 실제로 물속에서 아내만 두고 혼자 앞 유리 쪽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햇빛가리개 고정대를 분리하면 전면 유리창이 쉽게 빠진다’는 전제의 근거는 당시 국과수 감정 결과에서 나왔다. 2003년 10월2일 작성된 국과수 감정서에서 감정인은 이렇게 밝혔다. “전면 유리 틀과 맞물려 고정된 차량 천장 앞 모서리가 분리되면, 전면 유리 고정 틀 이탈이 쉽다. 좌우측 햇빛가리개 고정대 분리와 천장 모서리 파손은 저수지 추락 후 화물차 전면 유리 이탈과 유관(有關)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장씨에게 이 감정 결과를 제시하면서 살인 혐의를 추궁했다. 장씨는 “중고로 산 화물차 차량 천장이 내려앉아 2003년 5월 수리했는데, 이때 나사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아 햇빛가리개 고정대가 사고 충격으로 빠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국과수 감정 결과를 간접증거로 삼아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사건 발생 18년 뒤, 박성지 대전보건대 과학수사과 교수는 다른 의견을 냈다. 박 교수는 2000년부터 2016년까지 국과수에서 근무하며 교통사고와 안전사고를 분석했다. 그는 저수지에 추락한 화물차와 동일한 차량을 검증해 2021년 9월23일 법공학 감정서를 작성했다. 박 교수는 감정서에서 “(차량 설계 구조상) 햇빛가리개 등 천장 내장재의 분리와 전면 유리 결속력은 전혀 관련이 없다”라고 밝혔다. 전면 유리는 수면에 부딪히면서 전체적으로 파손된 뒤 자연스럽게 빠졌다고 판단했다.
2003년 당시 화물차를 감정한 국과수 감정인은 최근 자신의 감정 결과를 철회했다. 그는 지금도 국과수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 2월 과거 수사기록과 판결문, 박 교수의 새 검증 결과 등을 전달하며 다시 의견을 물었는데, 2022년 4월22일 답변서를 보냈다.
감정인은 답변서에서 “화물차 전면 유리와 차량 천장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답했다. 이어 “(2003년 당시) 감정 결과 도출 과정에서 논리가 비약적이며 정교하지 못했고, 단정적인 표현을 쓴 점을 인정한다. (과거) 유관하다고 본 논리대로 실제 범행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감정인의 답변서에는 국과수 원장의 직인이 찍혀 있다. 박준영 변호사는 “질의서는 감정인 개인 앞으로 보냈다. 기관 차원의 공식 입장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허위 공문서 작성한 정황도
감정인은 왜 자신의 감정 결과를 철회했을까. 그는 답변서에서 “(경찰로부터) 인양 당시 차량 사진을 제공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사고 직후 저수지에서 꺼낸 화물차를 그대로 감정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기록을 보면 차량 인양은 사고 발생 다음 날인 2003년 7월10일 이뤄졌다. 경찰은 국과수에 같은 해 7월16일 감정을 의뢰했다. 수사기록 속 인양 당일 촬영된 사진과 국과수로 옮긴 이후 촬영된 사진을 비교하면, 국과수에 옮긴 이후 천장재가 더 내려앉아 있는 등 차량 파손 상태가 다르다.
감정인은 박 변호사가 질의서를 보내며 첨부한 자료에서 인양 사진을 처음 확인했다. 수사기록과 감정인의 말을 종합하면, 당시 경찰은 국과수에 기초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 국과수 감정인은 제한된 정보로 여러 가능성을 배제한 채 단정적으로 감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감정 결과가 살인 혐의 판단에 핵심 근거로 쓰였다.
차량을 국과수로 옮기는 과정에선 경찰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정황도 확인된다. 사고 다음 날 인양된 화물차는 6일 뒤 국과수로 옮겨지기 전까지 한 공업사에 방치돼 있었다. 당시 공업사 대표는 “경찰로부터 국과수로 옮겨달라는 말만 들었다. 별다른 공문이나 압수했다는 서류는 받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경찰 수사기록에는 압수조서와 차량 견인 협조문 등이 첨부돼 있다. 이 서류들은 사후에 조작돼 편철됐을 가능성이 있다. 서류(2003년 7월15일자)의 결재란을 보면, 서명을 남긴 수사과 계장은 A 경위였다. 그러나 수사기록의 다른 서류들을 종합하면, A 경위가 수사과 계장으로 부임한 건 2003년 8월6일께였다. 수사기록 속 다른 서류와 달리, 화물차 압수조서에는 실무자인 B 순경의 날인도 없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사고 직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장동오씨가 뒤늦게 경찰이 화물차를 국과수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원을 제기한 서류가 포함돼 있다. 압수조서와 차량 견인 협조문은 이후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5월25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서 열린 재심개시 결정을 위한 심문에는 A 경위와 B 순경, A 경위의 전임자 C 경위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당시 저수지 추락 사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다만 이들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수사과 계장 A 경위와 전임자 C 경위가 교체된 날짜(8월6일)가 특정됐다.
②직진해야 빠진다
화물차와 관련한 경찰의 기초 정보 오류는 다른 지점에서도 발견된다. 검찰과 법원은 장동오씨가 저수지 추락 직전 고의로 핸들을 좌측으로 꺾었다고 판단했다. 졸음운전이었다는 장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한 차례 현장검증을 했고, 법원도 재판부가 직접 재판 중에 현장에 나가 검증했다.
그러나 앞서의 박성지 교수가 현장에서 당시 현장검증을 재연한 결과, 핸들을 꺾지 않고 직진해야 추락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거 검증 결과와 다른 이유는 거리 차이에 있다. 공판 기록에 포함된 현장 검증조서를 보면, 검찰과 법원은 사고 지점 70~80m 뒤에서 실제 차량을 운행했다. 〈시사IN〉이 사고 현장을 직접 확인해보니, 직진 도로가 우측으로 굽기 시작한 곳이었다. 핸들을 좌측으로 꺾지 않으면 화물차 추락 지점에 닿지 못했다. 박성지 교수는 장씨가 당시 직진도로를 따라 저수지 앞 삼거리 교차로로 진행해왔던 만큼, 직선 구간인 135m 뒤에서부터 출발했다. 이 경우 핸들을 좌우로 조작하지 않고도 추락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2003년 경찰 의뢰를 받아 도로교통안전공단이 작성한 자료에도 화물차는 직선도로가 난 방향으로 주행하다가 핸들 조작 없이 저수지에 추락했다고 기재돼 있다. 검찰과 법원이 살인 혐의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도로교통안전공단 분석 결과를 활용한 기록은 없다.
검찰과 법원이 장씨의 핸들 조작을 추정하고 70~80m 거리에서 출발해 현장검증을 한 이유는 경찰이 사고 직후 그린 현장 약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그린 약도에는 ‘저수지 앞에서 차량이 좌측으로 운행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다만 경찰은 당시 장씨의 핸들 조작 여부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③사체에 남은 흔적은 다른 말을 한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저수지에 추락한 화물차에서 장씨가 단순히 혼자 탈출한 것으로만 보지 않았다. 사인은 익사였지만, 장씨가 탈출 당시 물속에서 아내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목과 가슴을 눌러 제압했다고 판단했다. 제압의 증거는 국과수가 장씨 아내를 부검한 결과 확인한 흔적들이다. 부검 사진과 감정서를 보면, 장씨의 아내 가슴에는 압박한 흔적들이 광범위하고 옅게 남아 있었다. 뒤집어 확인한 눈꺼풀에는 점상출혈(일혈점)이 발견됐다. 좌측 턱 아래에는 살갗이 벗겨진 상처(피하출혈)가 있었다.
부검 감정서에는 사인과 함께 ‘일혈점, 가슴 압박흔 등이 관찰된다’는 기초 사실만 적혀 있다. 부검의는 감정 이후 검찰 질의에 따른 답변서와 법정에서 한 증언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추가로 밝혔다. 검찰에 보낸 답변서에서는 ‘수중에서 목을 조르는 등 압박을 하였을 경우 점상출혈(일혈점) 등 상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정에서는 ‘피해자는 단순히 익사한 게 아니고 익사 과정에서 경부 압박을 받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좌측 턱 아래 상처에 대해선 ‘그 부위에 충격 또는 광범위한 압박이 가해져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국과수 감정인과 부검의는 법원이 지정해 전문가로서 증인으로 출석한다. 전문가로 출석한 증인들은 일반 증인들과 달리 법정에서 단순 사실관계뿐만 아니라 ‘의견 제시’도 허용된다. 법원은 이 의견을 법적 판단에 활용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부검의가 검찰에 보낸 답변서와 증언은 유죄판결의 근거가 됐다.
‘한국 법의학 대부’로 통하는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현 SJS법의학연구소장, 대검찰청 및 경찰청 법의학 자문위원)은 부검의의 ‘의견’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 전 원장은 2021년 10월, 2022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장씨의 아내와 관련해 새 법의학 감정서를 썼다. 그는 6월24일 〈시사IN〉과 한 인터뷰에서 “(장씨 아내의) 사체에서 타살의 흔적은 없다. 단순 익사다”라고 밝혔다.
서 전 원장은 가슴 부위 압박흔은 긴급하게 이뤄진 심폐소생술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수사기록을 보면, 구급대원이 장씨 아내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혈점에 대해서는 “익사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급사, 속발성 쇼크, 중독, 심폐소생술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질식사라는 결론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좌측 턱의 상처 형태는 압박보다는 추락 과정에서 생겼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밝혔다.
④검출되지 않은 수면제
감정인의 ‘의견’은 아내 사체를 둘러싼 또 다른 쟁점인 ‘수면제’에서도 문제가 된다. 수면제는 장씨가 아내의 저항 없이 사고를 낼 수 있는 범행 수단으로 인정됐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장씨가 사고 직전 약수터에 이유 없이 들러 감기약으로 속여 아내에게 수면제 2정을 먹인 뒤, 수면제 효능이 나타날 때쯤 출발해 저수지에서 고의로 추락 사고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재심을 반드시 해야 한다”
장씨 아내의 부검 감정서를 보면 소화되지 않은 캡슐 형태의 감기약 하나를 제외하고 다른 약은 검출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사기관의 가설(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함)에 힘을 실은 건 국과수 약독물 감정인의 의견이었다. 공판 기록을 보면, 약독물 감정인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수면제에 대해 정밀검사를 하지 않았다”라면서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통상 수면제는 미량이어서 복용하더라도 검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한 사실이 있느냐”라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증언했다. 법원은 이 답변을 근거로 ‘장씨가 아내에게 수면제를 먹였으나 미량이라 검출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 전 원장은 수면제에 대한 법적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검 과정에서 △캡슐 형태의 알약(감기약 성분) 외에 다른 약은 발견되지 않은 점 △약을 복용한 지 30분 이상 경과한 후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수면제 성분 약물이 모든 검사에서 검출되지 않은 점 △당초 감기약과 수면제가 별도로 분리 포장된 점 등을 토대로 “애초에 수면제를 먹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증거 판단 과정에서 이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어야 했다. 이 사건에서 수면제는 법의학적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 따라서 법적 판단에서 증거로 쓰일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서 전 원장은 수사·공판 기록 속 부검의와 약독물 감정인 의견에 대해 “차량 감정서(햇빛가리개)와 달리, 부검 감정서와 약독물 감정서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질문이다. 수사·공판 기록에서 감정인에게 질의하거나 자문한 내용을 보면, 장씨 아내가 살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모든 손상에 대한 해석을 그쪽(살인 혐의)으로 유도했다. 감정인들은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취지로 답하기도 했는데, 수사기관과 법원이 그 답에 대한 해석을 살인 혐의 쪽으로만 했다”라고 말했다. 서 전 원장은 “법의학자로서 이 사건은 재심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⑤살인의 동기, 보험
장동오씨가 가입한 보험은 교통사고를 살인사건으로 전환하는 데 핵심 근거가 되었다. 판결문을 보면, 사고 발생 1년여 전인 2002년 9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장씨 부부가 가입한 보험은 총 9건이다. 피보험자는 아내, 보험금 수익자는 장씨와 아내가 공동으로 지정됐다. 장씨 아내가 교통사고 사망으로 인정됐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 액수는 9억3000만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장씨 부부가 가입한 보험은 총 15건으로 확인됐다. 제외된 6건은 보험금을 받는 수익자가 법정상속인 또는 아들로 계약돼 있었다. 법정상속인은 장씨뿐만 아니라 장씨의 삼 남매도 포함된다. 가입 기간도 판결문에 적힌 기간과 겹친다. 6건의 보험이 제외된 이유는 수사·공판 기록에 없다.
보험료는 3건을 제외하고 모두 6500원부터 3만7000원 사이의 소액이었다. 나머지 3건의 보험료는 6만원, 7만원, 11만원이다. 보험들은 교통사고 보장보다 만기에 환급받는 저축성보험에 집중돼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보험 계약 내용만 확인해도 예금 목적으로 여러 건의 보험에 가입한 정황이 드러난다. 과거 수사기관과 법원은 보험 사기를 예단하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최고액의 보험료를 내야 했던 보험의 경우(11만원), 보험설계사가 과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장씨 부부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했다”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설계사의 진술은 법적 판단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 설계사는 이번 재심 청구 과정에서 박준영 변호사에게 “기회가 된다면 법정에서 증언하겠다”라고 밝혔다.
보험이 강력한 살인의 동기라는 판단은 단순히 보험 가입 건수와 거액의 보험금액 때문만은 아니다. 장씨의 삼 남매와 외가 식구들의 “장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했다”라는 진술이 뒷받침됐다. 그러나 장씨의 막내딸 장수경씨는 그 진술이 모두 과장됐거나 거짓말(위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수경씨의 위증 고백은 이번 재심 청구의 핵심 증거다.
⑥‘결정적 증인’ 막내딸의 늦은 고백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처럼 내일도 오지 않을 거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다.’ 장수경씨는 경찰서에서, 법원에서 부르고 물을 때마다 아빠가 엄마를 죽였을 거라고 말했다. 그때 장수경씨에게 아빠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엄마 대신 아빠가 세상에서 없어져야 했다. 그런 사람은 평생 감옥에서 나올 수 없어야 한다. 장수경씨의 바람대로 아빠는 무기수가 됐다.
2003년 여름밤, 장수경씨가 열여덟 살 때였다. 엄마와 아빠가 타고 가던 트럭이 전남 진도 마을 저수지에 빠졌다. 아빠는 살고 엄마는 저수지가 삼켰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살인사건 용의자가 됐다. 큰이모가 언니를 조용히 불러서 “경찰이 정황상 보험금을 노린 사건으로 의심되니, 자식들이 증언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주변 어른들 사이에선 ‘증거도 다 나왔다’는 말이 돌았다. 언니도, 오빠도, 수경씨도 그 정황과 증거는 직접 보지 못했다.
큰이모는 무속인이었다. 엄마 장례식장에 다른 무속인들을 데리고 왔다. 죽은 엄마의 넋을 달래려면 저수지에서 ‘넋걷이’라는 의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은 “니네 아빠가 날 죽였어”라고 소리쳤다. 옆에서 지켜보던 큰이모는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엄마가 억울하게 죽었어. 니네 아빠 징역 보내서 엄마 한 풀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맞지 않아? 응? 내 동생이 죽었어.’ 이런 내용의 말이었다.
경찰이 아빠를 의심하고 있다. 주변 어른들도 경찰 판단이 맞다고 한다. 저수지에서 혼자만 살아나온 아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 다음은 자식들 차례일 거라는 동네 사람들의 뒷말은 수경씨 등을 떠밀었다. 장수경씨 삼 남매는 외가 식구들과 한자리에 둘러앉아 경찰에 낼 진술서를 썼다. 언니와 오빠보다 취업이 늦어 가장 늦게까지 고향에 함께 머물렀던 장수경씨가 한 말이 곧 가족들의 진술이 됐다.
말에 말이 붙고 살이 붙어 부풀어 올랐다. 장수경씨가 교통사고 2년 전 엄마와 아빠가 한 차례 크게 다툰 일을 설명하면, 진술서에서 아빠는 엄마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한 사람이 되는 식이었다. 장수경씨 남매의 입에선 ‘평소 엄마를 막 대하고 괴롭히던 아빠가 엄마 앞으로 보험을 여러 개 가입해두고, 몇 날 며칠 일을 꾸며 기어이 사고를 쳤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그렇게 만들어진 이들 남매의 진술을 핵심 증거로 썼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장수경씨는 고향에 다시 가지 않았다. 집은 그대로지만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언니와 오빠는 오래전부터 육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친가와 외가 모두 왕래가 끊겼다. 장수경씨에게 남은 건 회사와 동료들뿐, 그곳이 집이고 울타리였다. 이곳에서 아빠의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뒷말이 나올 만한 일은 알아서 피해 다녔다.
좋은 사람을 만나도, 보너스를 받아도, 승진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늘 어딘가 허전하고 비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마다 어린 회사 후배의 전화 통화가 유독 크게 들렸다. “엄마, 나 지금 바빠. 금방 다시 전화할게.”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짧고 평범한 대화가 가슴에 말뚝이 되어 박혔다.
장수경씨는 허전함을 느끼면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떠올렸다. “몸 괜찮냐” 걱정해주던 엄마 목소리를 더듬었다. 아빠는 늘 꿈에 나왔다. 칼을 들고 수경씨를 쫓아왔다. 늘 쫓기고 도망치다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도 가족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어린 수경씨가 잠자리에 들 즈음 까칠해진 수염을 비비던 아빠의 까만 얼굴, 바닷가에서 올라타라며 내어주던 어깨가 보였다. 눈을 감으면 두려웠고, 눈을 뜨면 그리웠다. 장수경씨는 그렇게 11년을 보냈다.
나이가 차면서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하나둘씩 생겼다. 사실 그날, 교통사고 이후 아빠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누구도 아빠 말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건너 듣는 이야기도 없었다. ‘그때 나의 말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이었나. 정말 우리 아빠는 살인범인가. 만약 아빠가 엄마를 죽인 게 아니라면, 10년 넘게 감옥에 있는 아빠는 어떡하지. 아빠를 감옥에 보낸 나는?’ 허전함이 커질수록, 옛날 가족의 모습을 떠올릴수록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답은 찾지 못했다. 아빠의 얼굴을 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2014년 가을, 장수경씨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존댓말을 해야 하나. 멀리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철문이 열렸다. 어느덧 스물아홉이 된 딸을 본 아빠의 어색한 표정이 보였다. 주름이 몇 줄 생겼지만 옛날 얼굴 그대로였다. 아빠는 금세 주름을 더 만들며 웃었다. “우리 막내딸 왔어? 아빠가 걱정 많이 했어.”
어딘가에서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
아빠를 몇 번 더 찾아갔다. 그때마다 아빠는 하얀 종이에다 이것저것 쓰면서 그날 일에 대해 말했다. 장수경씨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동안 엄마와 아빠가 왜 그렇게 됐는지,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건기록도 본 적이 없다. 아빠가 억울해한다는 건 알았지만, 재판을 받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아빠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순 없었다. “알았어.” 듣기만 했다.
2017년 5월 전우상 전 경감을 만났다. 장수경씨는 전 전 경감에게 2003년 여름밤 자신의 아버지가 낸 교통사고와 교도소에 수감되기까지의 일부터, 10년 넘게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다는 이야기, 지금 느끼는 두려움과 그리움도 털어놨다. 전 전 경감은 “수경씨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말 속엔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사실과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면서 제 손으로 마음속에 크고 깊은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우상 전 경감은 30년 넘게 경찰로 근무해왔다. 수사기관이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어지는 사법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0년 전 무리한 감찰을 받고 3년 넘게 행정소송을 벌인 끝에 바로잡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수경씨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한 곳에서 단추가 잘못 끼워졌을 것만 같았다.
전우상 전 경감은 장수경씨와 그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수사기록을 받아왔다. 주말이면 진도에 내려갔다. 처음 교통사고가 발생했던 현장과 수사기록을 대조했다. 마을 사람들과 보험설계사들을 만났다. 직접 현장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허술한 부분들,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 쓴 메모와 정리한 종이들이 서류 가방을 잠그기 어려울 정도로 채워졌다. 장수경씨를 처음 만난 지 3년이 지나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은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
“내 원인이 커요. 지은 죄가 너무 크단 말이에요, 내가. 내 증언에서 시작된 거니까. 거짓말한 것 인정할게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할게요.” 장수경씨는 이제 그때 했던 말이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면, 꼭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게 아빠와 엄마, 그리고 자신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한다.
2021년 12월31일 재심청구서를 접수한 법원은 재심개시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을 열었다. 심문기일은 재심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절차다. 재심청구인을 법정에 불러 이유를 들어보고 사유가 합당한지 판단한다. 본격적인 재심은 심문기일 절차를 거쳐 개시 결정이 내려져야 시작된다.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은 3월30일 첫 심문기일을 열었다. 다음 기일은 7월11일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은 과학의 이름을 빌린 선입견, 편견이 만든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검찰과 법원은 장동오씨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직접증거가 없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간접증거의 핵심은 과학, 국과수 감정이었다. 장동오씨 삼 남매의 위증 역시 국가기관과 과학의 판단을 믿은 결과다. 재심 청구 과정에서 새롭게 제시된 지금의 과학은, 과거 검찰과 법원이 강력한 증거로 쓴 ‘그때의 과학’과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사건인가 사고인가. 법원이 답할 차례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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