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야간개장, 큐레이터와 문화재 데이트 위해 오늘은 '칼퇴'
[여름밤 기행] 국립중앙박물관
이달 매주 수·토요일 오후 9시까지 개방
괘불 등 전시 다양…전문가 동행 해설도
거울못 따라 야외 정원서 즐기는 밤산책
석불과 석탑 사이 거닐며 달님과 ‘눈맞춤’
여름밤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낭만적이다. 느리게 지는 해, 푹푹 찌는 날씨에 탈탈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수박을 먹던 평상, 반딧불이…. 살면서 여름밤 무더위를 식혔던 추억 한편쯤 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무더운 더위를 피해 여름밤을 시원하고 알차게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름밤 낭만을 찾아 전국의 명소를 직접 골골샅샅 찾아 나섰다. 야시장부터 수목원·박물관·경마장까지 각양각색의 여름밤을 시원하게 즐겨보자.
드넓은 공간, 쾌적한 환경 그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까지 만끽할 수 있다. 어스름 내릴 무렵 차분한 마음으로 전문가로부터 문화재에 얽힌 사연을 들을 수 있는 건 또 다른 특혜다. 야간 시간대까지 문을 여는 국립박물관 이야기다. 여기선 불쾌지수나 열대야도 비켜간다. 장마철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구겨진 넥타이처럼 변해버린 퇴근길을 뒤로하고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5월부터 ‘큐레이터와의 대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연구관 등이 자기 전공에 따라 다양한 소장 문화재를 주제로 설명해주는 방식이다.
박물관을 찾은 6월29일 야간개장 일정표에는 ‘빛의 향연-충남 예산 수덕사 괘불’ 프로그램이 잡혀 있었다. 조선 불교문화를 접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터라 주저 없이 불교회화실로 향했다. 오후 6시 정각 초대형 괘불을 보려는 관람객 30여명이 큐레이터의 입이 언제 떨어질지 숨죽이며 기다렸다.
“높이 10.6m, 폭 7.3m에 달하는 이 그림은 우주와 하나 된 존재, 인도 태자 석가모니의 또 다른 현신인 비로자나불이 주인공입니다.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이 큰 그림을 펼쳐놓는데 절을 찾은 이들의 불심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큐레이터로 나선 정명희 학예연구관의 설명을 들으며 탱화를 찬찬히 살폈다. 대자대비한 부처가 만면에 염화미소를 띠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다. 붉은색과 황금색 석채 안료가 입체감과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비로자나불 좌우에 배치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이야기도 사뭇 흥미롭다. 모든 중생이 성불하도록 제도한 후 가장 마지막에 성불의 길로 들어선다는 지장보살 앞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큐레이터와의 대화’는 이달에도 계속된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관람시간을 연장하는데 오후 6시부터 7시30분 사이엔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발명품 토기’ ‘직물마패의 보존’ ‘부채와 대나무로 여름나기’와 같은 다채로운 주제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천장에 닿을 듯한 관내 경천사지십층석탑은 밤이 되면 화려한 변신을 꿈꾼다. 탑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쏴 손오공의 모험, 석가모니의 법회와 열반 이야기를 형형색색 빛으로 풀어낸다.
오세연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부장은 “코로나19로 위축됐던 문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더 많은 이들이 박물관을 찾을 수 있도록 전국 국립박물관과 협업해 야간개장을 하게 됐다”면서 “관내 전문가 집단인 학예연구관이 큐레이터로 활동해 관람객이 우리 문화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물관 밖에서도 여름밤의 추억을 아로새길 공간이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 전통의 정원 원리를 반영한 거울못, 거울못의 운치를 더해줄 청자정, 석탑과 석불이 사이사이 밤길을 안내해주는 석조물정원에서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 속 달빛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물관 오른쪽에 자리 잡은 용산가족공원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6만2260㎡(1만8834평)에 이르는 잔디광장, 전체 길이가 35㎞인 산책로에서는 산들바람에 실린 풀벌레 소리가 한층 가깝게 들린다.
야간개장한 전국 국립박물관
●제주박물관=‘토요박물관산책’이라는 간판을 걸고 야간개장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퓨전국악과 태권도가 어울린 창작문화 공연’이 23일 오후 7시, ‘감성밴드, 작가와의 만남’이 8월13일 오후 7시, ‘크로스오버 연주팀, 작가와의 만남’이 9월17일 오후 6시30분에 열릴 예정이다.
●김해박물관=야간개장에 맞춰 관람객 체험행사가 한창이다. ‘배 모양 토기 만들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7월·9월·11월 셋째주 토요일에 맞춰 방문하면 된다.
●경주박물관=방문객이 문화재를 관람하면서 국악공연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매월 셋째주 토요일 오후 6시에 박물관에 오면 된다. 현재 남은 공연은 23일, 8월20일, 9월27일이다.
●부여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큐레이터와의 대화’ 행사가 마련돼 있다. 이달에는 백제 정가왕의 선물 백제금동대향로(10일), 글로벌 백제(14일), 백제의 그릇문화(15일)를 추천할 만하다. 야간개장과 연계한 공연도 펼쳐진다. 30일 ‘LED 테디베어와 태권발레’, 8월27일 ‘박물관 문화향연 안녕하신가영’이 예정돼 있다.
이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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