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못해 썩어가는 양상추..밭떼기 상인들 횡포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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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추를 내 자식인 양 피땀 흘려 키웠고 작황도 어느 때보다 좋았죠. 그런데 중간 유통업자의 횡포로 1800여만원에 달하는 잔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결국 눈물을 머금고 밭 전체를 갈아엎었습니다."
지난해 6월 8㎏들이 한상자당 2만원 이상 받았던 양상추값이 최근 3000원까지 급격히 떨어지자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할 것을 우려한 유통업자들이 수확을 포기한 채 농가에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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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하 앞두고 가격 폭락하자
수확 미루고 잔금도 안치러
강원 횡성 120여농가 피해
영농·인건비 등 빚으로 남아
“최저가격보장제 도입 필요”
“양상추를 내 자식인 양 피땀 흘려 키웠고 작황도 어느 때보다 좋았죠. 그런데 중간 유통업자의 횡포로 1800여만원에 달하는 잔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결국 눈물을 머금고 밭 전체를 갈아엎었습니다.”
최근 찾은 강원 횡성군 안흥면. 이곳에서 1만6528㎡(5000평) 규모로 양상추를 기르는 윤충훈씨(63·송한리)는 “수년간 농사를 지어왔지만 올해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올 2월 중간 유통업자와 밭떼기(포전)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최선을 다해 양상추를 재배했다. 약속한 금액은 한마지기(661㎡·200평)당 100만원씩 모두 2200여만원이었다. 윤씨는 계약금으로 20%에 해당하는 440만원을 미리 받았고 잔금은 수확 이후 받기로 했다.
하지만 6월 수확철이 다가왔는데도 해당 유통업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수확을 차일피일 미뤘다. 양상추는 파종 후 60∼70일에 수확하지 않으면 더위에 녹아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던 윤씨는 속이 새까맣게 탔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결국 하루 이틀 수확기를 넘긴 양상추는 갑자기 찾아온 찜통더위에 장맛비까지 겹치자 손쓸 겨를도 없이 흑갈색으로 형편없이 문드러졌다.
양상추가 상품성을 잃은 후 뒤늦게 현장을 둘러본 유통업자는 “양상추가 망가졌으니 잔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했다는 것이 윤씨 설명이다.
인근 양상추농가 김인기씨(61)도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김씨는 “양상추는 생물이라 수확시기를 조금만 넘겨도 대번에 상품성을 잃는다. 결국 수확을 포기한 채 썩어가는 양상추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뒷그루로 콩을 심을 계획이지만 심란해 일손을 못잡고 있다.
당초 수확작업을 책임지기로 했던 유통업자가 이처럼 갑자기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나온 것을 두고 농가들은 양상추값 하락을 이유로 꼽고 있다. 지난해 6월 8㎏들이 한상자당 2만원 이상 받았던 양상추값이 최근 3000원까지 급격히 떨어지자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할 것을 우려한 유통업자들이 수확을 포기한 채 농가에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것. 윤씨는 “값이 좋은 해엔 미처 결구가 되기도 전에 먼저 찾아와 수확을 재촉할 때도 있는데 올해는 정반대”라며 “결국 그동안 들어간 각종 영농비와 인건비 등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는 비단 한두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흥농협에 따르면 지역 내 양상추농가 120여곳이 계약금만 받고 잔금을 받지 못해 큰 피해를 입게 됐다. 농가들은 밭떼기거래를 대부분 구두계약으로 하고, 표준계약서를 쓴다 하더라도 이후 값이 하락하면 유통업자들이 잔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남홍순 안흥농협 조합장은 “지난해엔 가을장마 뒤 기온이 올라 추석 이후 갑자기 무름병·흰가루병 등 각종 병해가 발생해 농가들의 피해가 컸는데 올해는 수확철 가격 폭락에 잔금 미지급 사태가 겹쳐 또다시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어 남 조합장은 “정부당국에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등을 조속히 제도화해 농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횡성=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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