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회 회의록은 대체불가 보물, 역사의 기록자 역할에 큰 보람"

홍경진 2022. 7. 1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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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손숙자 국회 의정기록심의관
위원회 회의록 디지털화 물꼬
2028년 전체 작업 완료 전망
“음성인식기술보다 사람 우월”

#제헌국회 첫 회의는 전체 의원이 기독교식 감사기도를 드리고 시작했다(1948년 5월31일).

#국회 회의장에서 한 의원은 국무위원들을 향해 악취 나는 오물을 뿌렸다(1966년 9월22일).

국회 회의록이 없었다면 곧이 믿기 어려울 의정사의 한 장면이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전설로 존재할 뿐. 조선왕조가 실록을 남겨 정통과 실체를 웅변하듯 대한민국 국회는 회의록으로 유장한 현대사를 진술한다. 회의록을 쓰는 속기사가 ‘현대판 사관(史官)’으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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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주년 제헌절을 앞두고 만난 손숙자 국회 의정기록심의관은 “1인 매체가 많은 정보홍수 시대지만 국회 회의록은 대체불가한 보물덩어리”라고 했다. 그의 책상에 놓인 수십년 전 회의록엔 ‘조선 인구의 8할을 차지하고 있는 농민’ ‘한 손으로 곱뿌(컵)를 깨고 와이샤쓰의 앞단추를 클름’ 등 당시 시대상과 언어 표현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손 심의관은 “국회 회의록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지만 여전히 기록이 진행되고 있어 아직 대상이 되진 못한다”며 회의록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손 심의관은 1982년 국회 속기양성소를 거쳐 1983년 정식 공무원이 됐다. 국회 근무 40년차로 속기직렬 최고위직에 오른 그는 국회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지금은 속기사 전용 키보드 장비가 전면 도입됐지만 그가 현역으로 뛰었던 2005년까지만 해도 손으로 직접 쓰는 수필 속기가 많았다. 암호 같은 속기를 일반 표현으로 번문(飜文)하려면 12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5분간 속기한 내용을 풀어내는 데 족히 1시간이 걸렸던 셈. 손 심의관은 “의원들이 아무리 속기록을 재촉해도 빨리 제공하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며 “최근엔 기계화 작업으로 번문 시간이 크게 단축돼 초고는 당일 제공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본회의든 상임위 소위원회든 국회 회의는 속기사가 없으면 무효다. 회의록이 남아야 의사 결정으로 인정돼서다. 이 때문에 과거 본회의장이 아닌 장소에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상황에선 다른 당 몰래 속기사를 모셔오는 ‘007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회의가 장시간 길어지거나 동시다발로 열릴 땐 보통 5분 단위로 교대하는 속기사의 고충이 커진다. 손 심의관은 “2016년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대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가 꼬박 8일 동안 이어지면서 속기사들은 완전 녹초가 되기도 했다”며 “상임위원회가 모두 가동되는 가을철 국정감사나 조각·개각 인사청문회 시기엔 거의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일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신속성·정확성과 함께 체력이 속기사의 중요한 자질로 요구되면서 최근 국회 의정기록과의 남성직원 비율은 30%를 넘어섰다.

속기사는 얼마나 빨리 기록해야 할까. 손 심의관은 “국회 속기사가 되려면 1분에 330자 정도를 95% 이상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한 글자가 초·중·종성으로 이뤄지니 일반 타자수로 환산하면 900타 이상일 것”이라고 했다. 음성인식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속기사가 ‘사라질 직업’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의 우월성을 신뢰한다. 손 심의관은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 같은 분들은 발음이 또렷한 편이지만 사투리나 불명확한 발음으로 표현하는 분도 많아 음성인식기로 95% 이상 정확한 워딩을 포착하긴 어렵다”고 했다.

손 심의관은 한자 표기가 많고 인쇄본 또는 이미지 파일로 저장된 국회 회의록의 한글화·디지털화 물꼬를 튼 주역이다. 본회의 회의록은 이미 한글로 디지털 전환이 완료됐지만, 의정기록의 핵심을 담은 위원회 회의록은 3대 국회부터 15대 중반인 1999년까지 작업 분량이 80만면에 달해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손 심의관은 의정기록1과장이던 2020년, 김영춘 당시 국회 사무총장에게 위원회 회의록 디지털화 필요성을 직언해 예산 확보에 성공한다. 이로써 지난해 3대 국회 위원회 회의록이 한글 텍스트로 처음 전환됐다. 전체 작업은 2028년 마무리될 전망이다.

“회의록 한글 디지털화 작업을 모두 마치면 현대 정치사와 한국사회를 이해·연구하는 데 소중히 활용될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자로 복무한 40년 세월에 보람과 영광을 느낍니다.” 내년 은퇴를 앞둔 ‘사관 손숙자’의 소회와 기대다.

홍경진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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