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쌓기, 펌프.. Z세대가 열광한다, 미친듯 한우물 파는 'Z덕후'

신현지 기자 2022. 7.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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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8일 18세 한국인 임윤찬군은 북미 최고 권위의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며 단번에 화제의 인물이 됐다. 우승이라는 결과도 놀라웠지만, 10대인 임군이 음악에 몰입하는 태도에 대해 감탄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가 우승 후 남긴 “(제 꿈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하고만 사는 것” 같은 말들은 여태껏 회자되는 중이다.

왼쪽부터 스포츠 스태킹 조은진씨, 한선 그리기 유상호씨, 리듬게임 윤상연씨, 드론레이스 김민찬 군.

임윤찬군 같은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 중에선 세속적인 성취보다 순수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을 얻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3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20대 응답자의 약 60%가 “인생의 목표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본지는 최근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가 원하는 길을 우직하게 가고 있는 Z세대 ‘덕후’(마니아를 가리키는 말)’들을 만났다. 이들은 “성공은 누군가 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했다.

경기 파주시에 사는 김민찬(18)군은 6년째 드론 레이싱에 푹 빠져 산다. 드론 레이싱은 드론에 장착된 1인칭 카메라를 보며 드론을 조종해 누가 빠른지 경쟁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16년쯤 우연히 유튜브로 본 드론 레이싱에 푹 빠졌다. 당시만 해도 드론은 생소한 분야였다. 작동법부터 조립까지 모든 것을 독학으로 해결했다. 6년째 매일같이 아침 6~7시에 집 근처에 있는 드론 비행장에서 드론을 날린다. 세계 대회 우승 경험도 여러 차례 쌓았다. 지난 6월에도 미국에서 열린 세계 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는 “내가 생각해도 미친 것처럼 내 삶 전체를 드론에 쏟고 있다”면서도 “레이싱 말고도 드론으로 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해서 평생 드론을 날리고 싶다”고 했다.

스포츠 스태킹, 일명 ‘컵 쌓기’ 국가대표를 지낸 조은진(20)씨는 1.6초 만에 컵 9개를 삼각형 형태로 된 세 더미로 나눠 쌓았다가 다시 정리하는 기록을 갖고 있다. 10년 전 우연히 TV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그 뒤부터 매일같이 하루 4~5시간을 컵 쌓는 연습만 했다고 한다. 14살이던 2016년 세계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도전하는 것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누군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일에 도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노래에 맞춰 발판을 밟는 리듬게임에서 세계 상위권 선수인 윤상연(26)씨는 ‘그 노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더 성공했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맞선다. 5살 때 형을 따라 간 오락실에서 리듬게임에 반한 후 20년 가까이 매일같이 하루 4~5시간을 연습해왔다. 해외 팬도 많다. 직업에 대한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돈 버는 이유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인데, 하고 싶은 게임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이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하나의 이어진 선으로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한선그리기’ 작가 유상호(26)씨는 어릴 때부터 줄곧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었다. 결국 대학에서 전공으로 웹디자인을 선택했고 대학 졸업 후 AI 관련 업체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그는 밤마다 한선그리기로 작품을 만들며 자기 꿈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예전엔 ‘별종’이라거나 ‘오타쿠’ 취급 받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임윤찬의 사례가 그랬듯, 지금 10~20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보낸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응원과 관심을 보내며 이들을 인정해준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 세대는 한 가지 분야를 파고드는 사람을 ‘오타쿠’라고 하며 사회성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Z세대는 오히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끌려가는 것을 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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