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북송 어민들, 당시 자필로 귀순 의향서 썼다"

김형원 기자 2022. 7.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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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강제 북송된 북한 어민들이 귀순 의사를 자필 문건으로 남겼다고 통일부가 10일 밝혔다. 이들이 자필 귀순의향서를 제출했음에도 강제로 북측에 넘겨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고 했던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귀순의향서 제출에 대해 “나중에 전해 들었다”고 했다. 통일부 장관에게까지 북한 어민의 ‘진짜 귀순 의사’를 은폐한 상태에서 강제 북송이 이뤄졌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최근 어민 사건 조사를 서둘러 종료한 혐의로 서훈 전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2019년 11월 8일 오후 해군이 동해상에서 북한 목선을 예인하고 있다. .2019.11.8 /통일부

통일부는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당시 북한 주민들은 서면으로 귀순 의사를 표명했다”며 “통상적인 귀순의향서 양식에 자필로 인적 사항, 귀순 희망 여부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귀순의향서를 제출하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통일부가 당시 합동정보조사 참여 기관이 아니어서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귀순의향서는 국정원을 비롯한 합동정보조사 참여 기관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인사들은 강제 북송의 이유로 “귀순 진정성이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사건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이던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한 어민들은) 귀순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했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최근까지 “그 사람들이 귀순할 의도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어민들의 귀순 의사가 담긴 자필 의향서가 확인되면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탈북자 업무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귀순의향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경위도 향후 검찰 수사에서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태영호 의원은 “공문서인 귀순의향서를 북한 어민들의 최종적인 의사로 보는 것은 상식”이라며 “그럼에도 이들의 귀순 의사를 왜곡해서 북한 김정은에게 갖다 바친 것은 반(反)인륜적인 범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귀순어민 강제 북송 사건 직후인 2019년 11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어민들의 귀순의향서를 묵살했다는 것은 강제 북송 자체가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가정보원은 자체 조사에서 당시 서훈 국정원장이 귀순 어민 합동조사를 서둘러 강제 종료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탈북자 합동 신문에는 수개월씩 걸리는데, 귀순 어민의 경우 서 전 원장이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조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북한 어민들의 ‘귀순 진정성’이 명확했다는 정황도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당시 귀순 어민들의 눈을 가리고 포박한 채로 판문점까지 이송한 배경엔 “송환 시 자해할 위험이 있다”는 당국의 판단이 작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내부적으로는 귀순 어민들의 강력한 귀순 의지를 인지하고, 강제 북송 시 자해할 상황까지 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 강제 북송 당일인 2019년 11월 7일 오전 9시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국방부에 “군이 (귀순 어민을) 송환해 줄 수 있느냐”며 “송환 시 자해 위험이 있어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 대대에서 에스코트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국방부는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쯤 “군 차원에서의 민간인 송환은 불가하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청와대 안보실은 경찰특공대원 8명을 동원해서 같은 날 오후 3시 10분쯤 판문점에서 강제 북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표류해 온 북한 주민을 호송할 때는 대한적십자사가 인계한다.

경찰청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게 “경찰은 관계 기관으로부터 ‘자해 우려가 있다’며 지원 요청만 받았다”고 했다. ‘지시를 내린 관계 기관이 어디냐’는 물음에 경찰 측은 “알지 못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귀순 진정성을 의도적으로 오염시켰다”고 주장했다.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이 강제 북송 이튿날인 11월 8일 국회에서 “(북한 어민들이)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도 분명히 했다”고 말한 것은 대표적인 왜곡 사례로 꼽힌다.

당시 김 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귀순 어민들이 우리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죽더라도 돌아가겠다’ 발언은 정부 조사 과정이 아니라, 선상 살인이 벌어진 뒤 북한 항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눈 대화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귀순 어민들은 북한 김책항에서 도주했고, 우리 군의 경고사격을 받고도 남하한 끝에 나포됐다고 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합동조사 때 새로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발언을 하진 않았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본지 통화에서 북한 어민들이 귀순의향서를 제출한 것과 관련해 “우리(통일부) 소관이 아니어서 몰랐고, 나중에 그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북한 어민들이 귀순의향서를 제출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국회에 나와 답변했다는 취지다. 당시 국회 발언에 대해서 김 전 장관은 “덧붙일 말이 없다”고 했다.

16명 살해 혐의를 받는 귀순 어민들에 대한 합동조사가 약 사흘 만에 종료된 이유도 검찰 조사에서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2월 국회에서 “범죄 행위를 우리 정부가 정확하게 규명할 수는 없었다”며 “그것은 북한에서 규명해야지 우리가 규명할 문제는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범죄 행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귀순 어민뿐만 아니라 살해 현장인 오징어잡이 어선도 북에 넘겼다. 국정원은 ‘증거인멸’ 우려에도 이 오징어잡이 어선의 소독을 의뢰한 바 있다. 서훈 전 국정원장은 귀순 어민 강제 북송 과정에서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로 현재 국정원에 의해 고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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