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조선도공의 후손, 424년만에 조상묘 참배
김포=공승배 기자 2022. 7.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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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관가(家)는 424년 동안 단 한 번도 심 씨 가문 명예에 누를 끼칠 일을 한 적이 없음을 보고드립니다." 9일 낮 12시경 경기 김포시의 청송 심씨 선조 묘소.
자신의 '뿌리'를 찾던 15대 심수관은 올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한국을 찾았을 때 청송 심씨 일가를 만나 '심당길의 선조 묘가 김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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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日 끌려간 심당길의 조상묘, 종친 통해 김포 소재 사실 알게 돼
심씨 족보로 정확한 혈통도 확인.. 참배후 묘소 주변의 흙 따로 챙겨
"日 심당길 묘에 뿌려 父子상봉.. 청송-남원 이어 김포도 새 고향"
심씨 족보로 정확한 혈통도 확인.. 참배후 묘소 주변의 흙 따로 챙겨
"日 심당길 묘에 뿌려 父子상봉.. 청송-남원 이어 김포도 새 고향"
“심수관가(家)는 424년 동안 단 한 번도 심 씨 가문 명예에 누를 끼칠 일을 한 적이 없음을 보고드립니다.”
9일 낮 12시경 경기 김포시의 청송 심씨 선조 묘소. 15대 심수관(沈壽官·63)은 선조들에게 제사를 올린 뒤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보였다. 그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 온 도공 심당길의 15대 손이다.
○ 조선 도공의 후손, 선조 묘 찾아
심당길의 후손들은 규슈 가고시마에서 대대로 가업을 이으며 심수관요를 일본을 대표하는 도자기 명가로 키웠다. 메이지유신 때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이후 자손들은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자신의 ‘뿌리’를 찾던 15대 심수관은 올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한국을 찾았을 때 청송 심씨 일가를 만나 ‘심당길의 선조 묘가 김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청송 심씨 일가가 족보 등을 분석해 지금까지 정확한 혈통이 알려지지 않았던 심당길이 청송 심씨 가문 심우인(1549∼1611)의 차남이란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심당길의 아버지 심우인과 할아버지 심수(1522∼1580) 등의 묘는 경기 김포시 대곶면과 양촌읍 일대에 있다. 15대 심수관은 이날 심우인의 묘를 참배한 뒤 묘소의 흙을 퍼 담았다. 일본에 있는 심당길 묘에 뿌려 전쟁으로 헤어져 한평생 서로를 그리워했을 부자(父子)를 다시 이어주겠다는 뜻에서였다. 15대 심수관은 “초대 심당길 할아버지께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건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었겠느냐”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제사를 지내며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술을 조상들에게 올리기도 했다.
○ “대한민국이 뒤에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15대 심수관에게 선조들이 있는 김포는 또 다른 마음속 고향이 됐다. 15대 심수관은 “심당길 할아버지께선 부모님이 계시고 본인이 어렸을 때 뛰놀았을 김포를 평생 잊지 못하셨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마음엔 청송과 남원만 있었는데, 오늘 김포도 새로 고향이 됐다”고 했다. 청송은 청송 심씨 가문의 본향이고, 남원은 심당길이 일본으로 끌려가기 전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곳이다.
15대 심수관은 “아버지는 저에게 ‘절대로 외로움을 느끼지 마라, 너의 뒤에는 대한민국이 버티고 있다’고 말하셨다. 나 역시 지금도 심씨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일 간) 문화교류를 더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라고 말하는 15대 심수관은 지난해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 주가고시마 명예총영사로 임명돼 한일 관계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14대 심수관 역시 주가고시마 명예총영사였다. 청송 심씨 일가는 이날 15대 심수관에게 ‘1만 개의 가지가 있어도 뿌리는 하나’라는 뜻의 ‘만지일근(萬枝一根)’이 적힌 목판 등을 선물했다.
9일 낮 12시경 경기 김포시의 청송 심씨 선조 묘소. 15대 심수관(沈壽官·63)은 선조들에게 제사를 올린 뒤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보였다. 그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 온 도공 심당길의 15대 손이다.
○ 조선 도공의 후손, 선조 묘 찾아
심당길의 후손들은 규슈 가고시마에서 대대로 가업을 이으며 심수관요를 일본을 대표하는 도자기 명가로 키웠다. 메이지유신 때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이후 자손들은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자신의 ‘뿌리’를 찾던 15대 심수관은 올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한국을 찾았을 때 청송 심씨 일가를 만나 ‘심당길의 선조 묘가 김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청송 심씨 일가가 족보 등을 분석해 지금까지 정확한 혈통이 알려지지 않았던 심당길이 청송 심씨 가문 심우인(1549∼1611)의 차남이란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심당길의 아버지 심우인과 할아버지 심수(1522∼1580) 등의 묘는 경기 김포시 대곶면과 양촌읍 일대에 있다. 15대 심수관은 이날 심우인의 묘를 참배한 뒤 묘소의 흙을 퍼 담았다. 일본에 있는 심당길 묘에 뿌려 전쟁으로 헤어져 한평생 서로를 그리워했을 부자(父子)를 다시 이어주겠다는 뜻에서였다. 15대 심수관은 “초대 심당길 할아버지께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건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었겠느냐”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제사를 지내며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술을 조상들에게 올리기도 했다.
○ “대한민국이 뒤에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15대 심수관에게 선조들이 있는 김포는 또 다른 마음속 고향이 됐다. 15대 심수관은 “심당길 할아버지께선 부모님이 계시고 본인이 어렸을 때 뛰놀았을 김포를 평생 잊지 못하셨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마음엔 청송과 남원만 있었는데, 오늘 김포도 새로 고향이 됐다”고 했다. 청송은 청송 심씨 가문의 본향이고, 남원은 심당길이 일본으로 끌려가기 전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곳이다.
15대 심수관은 “아버지는 저에게 ‘절대로 외로움을 느끼지 마라, 너의 뒤에는 대한민국이 버티고 있다’고 말하셨다. 나 역시 지금도 심씨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일 간) 문화교류를 더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라고 말하는 15대 심수관은 지난해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 주가고시마 명예총영사로 임명돼 한일 관계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14대 심수관 역시 주가고시마 명예총영사였다. 청송 심씨 일가는 이날 15대 심수관에게 ‘1만 개의 가지가 있어도 뿌리는 하나’라는 뜻의 ‘만지일근(萬枝一根)’이 적힌 목판 등을 선물했다.
김포=공승배 기자 ks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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