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파 日국회 ⅔ 유지..아베가 못이룬 '필생의 과업' 탄력받나(종합)

황정우 2022. 7. 1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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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합의가 관건..자위대 명기 '동상이몽'
우크라 침공·미중 갈등 속 안보 불안..아베 피격 사망 영향 가능성
개헌 못하고 떠난 아베 신조 (도쿄 교도=연합뉴스) 2020년 8월 28일 오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도쿄 총리관저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헌법 개정, 중도에서 직을 떠나는 것은 장이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입니다."(2020년 8월 28일,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의 사의 표명 기자회견 발언)

일본 참의원 선거 이틀 전 총격을 당해 목숨을 잃은 아베 전 총리는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꼽았다.

10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 결과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이른바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이상을 유지하게 된 가운데 1946년 공포 후 75년 넘게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일본 헌법 개정 작업이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군사력 확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향상 등으로 일본 내 안보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개헌에 관한 유권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엿보인다.

개헌 세력 발의 가능한 3분의 2 유지…헌법 9조 '뜨거운 감자'

현지 공영방송 NHK는 출구조사 결과와 개표상황을 자체 집계·분석한 결과, 이날 밤 12시 현재 개헌에 긍정적인 집권 자민당, 연립여당 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4개 당과 이에 동조하는 소수파·무소속 의원이 참의원 전체 의석의 3분의 2(166석)를 넘는 170석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헌법 공포 상유문 일본의 현행 헌법 공포일인 1946년 11월 3일 발표된 히로히토(裕仁·1901∼1989) 당시 일왕의 상유(上諭)문(헌법이나 법률 등을 공포할 때의 일왕의 발언)에 제국헌법의 개정을 재가하고 새 헌법(현행 헌법)을 공포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헌법 96조는 중의원과 참의원이 각각 총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함으로써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민 투표를 시행해 과반이 찬성해야 개헌이 성사된다고 규정한다.

중의원은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개헌안 발의를 위한 기본 요건이 유지되는 셈이다.

3년 전인 2019년 7월 실시한 참의원 선거에서는 개헌 세력이 3분의 2에 미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개헌 세력으로 분류되지 않던 국민민주당이 이후 개헌 논의에 임하기로 하면서 개헌 세력이 3분의 2를 넘기는 수준이 됐다.

일본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형세가 유지된 것이다.

자민당은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 대응 규정 신설,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선거제도 유지(통합선거구 해소), 교육 환경 충실화 등 4가지 구상을 담은 개헌 방안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특히 자위대 명기 구상이 특히 민감한 쟁점이다.

헌법 9조는 전쟁포기, 전력(戰力)보유·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하고 있는데 군대와 유사한 조직인 자위대를 두는 것이 전력보유를 인정하지 않는 헌법 9조 위반이라는 논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자민당의 주장이다.

자민당은 현행 헌법 9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자위에 필요한 조직을 두는 것이 헌법 9조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는 취지의 설명을 포함해 자위대의 존재를 규정하는 '헌법 9조의 2'를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일본 국회 인근의 헌법 개정 반대 집회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는 과거에 내놨던 개헌안과 비교하면 호헌 세력의 반발을 완화하는 구상이다.

자민당은 과거에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담은 개헌안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현행 헌법 9조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개헌 세력, 개헌 내용 합의 가능할까…자위대 명기 '동상이몽'

기시다 총리는 이날 개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개헌 논의를 심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이상이 되더라도 즉시 개헌안이 발의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합하면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수준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개헌을 할지는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21일 NHK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기시다 총리가 '언제 발의할 것이냐'는 마쓰이 이치로 일본유신회 대표의 질문에 내놓은 답변에서 이런 문제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헌법 9조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기시다 총리는 "요컨대 발의에 찬성하는 세력이 3분의 2가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며 "발의하는 내용에 관해 일치 가능한 세력이 3분의 2가 모이지 않으면 발의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방안에 관해서는 자민당 외에 일본유신회가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자민당의 자위대 명기 방안에 거리를 두고 있다.

자위대가 위헌이라는 주장을 극복하기 위해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시하는 구상에 대해 공명당은 참의원 선거 공약에서 "많은 국민은 현재의 자위대 활동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으며 헌법을 위반하는 존재라고는 보고 있지 않다. 계속 검토를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생전 모습 담긴 사진 (야마구치 교도=연합뉴스) 일본 참의원 선거 투표일인 10일 오후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에 있는 에지마 기요시 자민당 후보의 진영에서 관계자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진이 담긴 자민당 홍보물을 벽에 붙이고 있다. 야마구치현은 8일 유세 중 총격을 당해 목숨을 잃은 아베 전 총리의 선거구(지역구)였다.

국민민주당의 경우 자민당의 구상에 대한 찬반이 불명확하다.

이 당은 헌법 9조에 관해 "① 자위권 행사의 범위 ② 자위대 보유·통제에 관한 규칙 ③ 전력 불보유·교전권 부인을 규정한 헌법 9조2항과의 관계라는 3가지 논점에서부터 구체적인 논의를 추진한다"고 참의원 선거 공약에 모호하게 기술했다.

안보 불안…아베 사망 사건 충격파 변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불안감이 고조하는 상황이어서 정치권은 어떻게든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한 것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두고 중국과 대립 중인 일본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북한의 반복된 미사일 발사와 7차 핵실험 가능성도 헌법 9조와 관련된 개헌 여론을 확산하는 요소다.

일본 유권자 다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정치권도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일본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 [촬영 이세원]

교도통신이 올해 3∼4월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우편 여론조사에서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은 68% 수준으로 필요가 없다는 응답(30%)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응답자에게 국회가 헌법에 관해 논의하기를 바라는 주제를 3가지 선택하게 했더니 헌법 9조와 자위대의 존재 방식이 43%를 차지해 1순위로 꼽혔다.

이어 대재해 발생 시 등 긴급사태 조항(38%), 교육 충실·무상화(35%) 등의 순이었다.

아베 전 총리 추모하는 일본 시민들 (나라 교도=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한 8일 오후 사고 현장인 일본 나라현 나라시 소재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인근 노상에서 시민들이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며 헌화를 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참의원 선거 후보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의견이 52%로 3년 전 조사한 결과(25%)의 두 배를 넘었다.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의 영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 보도한 일본 석간 신문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일본 석간신문들이 8일 선거 지원 유세 중 총격을 받아 심폐 정지 상태가 된 아베 신조 전 총리 사건을 신문 톱 기사로 실었다. 아베 전 총리는 결국 사망했다.

임기 중 개헌을 역설했고 퇴임 후에도 개헌 논의에 앞장섰던 아베 전 총리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한 것이 개헌을 추동하는 재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공교롭게도 현재 자민당이 내걸고 있는 4가지 개헌 항목은 고인이 일본 총리와 자민당 총재를 겸직하던 시절에 마련된 것이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받들어 개헌하자는 주장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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