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허리 강원 백두대간 대탐사] ⑬ 일제수탈의 아픔 간직한 구룡령
양양 서면-홍천 내면 경계
해발 1089m 백두대간 고갯길
도로 구룡령·구령령 옛길 구분
옛길 우리나라 문화재길 지정
묘반쟁이·솔반쟁이 지명 독특
일제 자원수탈 삭도 흔적 남아
정상 동쪽 남대천·동해 한눈에
남쪽으로 오대산 장엄함 절경
아! 백두대간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핵심 축이다. 북에서 이어져 온 백두대간은 남한지역 최상위 권역에 위치한 향로봉을 시작으로 설악산으로 산의 줄기를 이루며 이어진다. 설악의 험한 산세를 따라 한계령을 지나면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경계를 이루는 조침령이다. 산세가 얼마나 험하면 ‘새 조차도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고 해 ‘조침령(鳥寢嶺)’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조침령에서 다시 남으로 내려가면 백두대간의 줄기는 구룡령으로 향한다.
구룡령은 양양군 서면 갈천리와 홍천군 내면 명개리에 걸쳐 있는 해발 1089m의 고갯길이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 구룡령은 용이 구불구불 휘저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간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고개를 넘던 아홉 마리의 용이 갈천리 마을에서 갈천약수로 목을 축이고 쉬어 갔다고해 생긴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구룡령’이라고 하면 대부분 지금 차가 다니는 국도 56호선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도로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수탈 목적으로 구룡령 고개에서 1㎞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를 포장한 것으로, 일제 당시 지도에 이 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지금은 자동차도로로 개통된 ‘구룡령’과 조침령 사이에 오솔길로 남아있는 ‘구룡령 옛길’로 구분된다.
구룡령 옛길은 설악산, 점봉산, 오대산 등 백두대간 장벽으로 산지와 해안지역을 오가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 다른 고갯길에 비해 산세가 험하지 않아 양양은 물론 고성지역 사람들도 한양으로 갈 때 주로 이용했던 길이다.
일제가 자철석 같은 광물자원과 금강송 등 임산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원래의 구룡령에서 빗겨난 곳에 새롭게 도로를 개설하고, 이 도로가 1994년 포장되면서 구룡령 고갯길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졌다. 완만한 산세로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던 ‘구룡령 옛길’은 역설적이게도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새롭게 도로를 개설하고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백두대간의 다른 고갯길에 비해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이유야 어떻든 구룡령 옛길은 백두대간 고갯길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면서, 지난 2007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구룡령 정상에서 갈천리까지 2.76㎞ 구간이 명승 29호로 지정됐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구룡령 옛길을 포함해 죽령·토끼비리·문경새재·하늘재·대관령 옛길 등 모두 6곳의 문화재길이 있다. 이 가운데 구룡령 옛길이 가장 먼저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구룡령이 설악산과 오대산 사이 가장 깊숙한 백두대간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됐기 때문이다.
구룡령 고갯길 곳곳에는 묘반쟁이, 솔반쟁이, 횟돌반쟁이 등 다양한 사연을 지닌 독특한 지명들이 눈길을 끈다.
옛날에 양양과 홍천의 수령들이 같은 시각, 각자의 거처에서 출발해 서로 만나는 지점을 두 고을의 경계로 삼기로 하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양양 수령을 모시던 노비는 수령을 업고 열심히 달린 덕에 두 고을의 경계는 홍천 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갔지만 탈진한 노비는 돌아오는 길에 그만 숨지고 말았다. 이를 가엾이 여긴 양양 수령은 청년을 위해 큰 묘를 써 줬다고 하는데 ‘묘반쟁이’는 바로 이 청년의 묘가 있는 곳이라고 해 유래됐다.
1989년 경복궁 복원당시 구룡령의 금강송이 재목으로 보내졌는데 ‘솔반쟁이’란 소나무가 많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고, ‘횟돌반쟁이’는 장례때 나무뿌리가 관을 뚫지 못하게 하기 위해 회다지에 사용되는 횟돌이 많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구룡령 옛길에는 일제시대 때 숯을 구웠던 채탄장과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돼 강제 징집이라는 애환의 역사가 서린 철광소, 그리고 일제가 이렇게 생산된 철광석을 반출하기 위해 만들었던 삭도길 등 수탈의 쓰디쓴 역사도 그대로 남아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악인들은 설악산 한계령에서 오대산 두로봉에 이르는 58.4㎞ 구간을 가장 힘든 코스중 하나로 꼽는다.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구간은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계속되기에 그만큼 체력 소모가 많다고 한다.
그 옛날 영동과 영서, 해산물과 곡식을 교환하기 위한 수많은 발길이 백두대간의 험하디 험한 준령 사이, 이 구룡령 고갯길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선비와 상인들이 들러 목을 축이고 갔을 옛 주막터와 숯을 구웠던 채탄장, 철광석을 캐던 동굴의 흔적 등 구룡령 옛길에 남았는 일제 수탈의 현장에서는 고갯길의 힘겨움과 민중들의 꿈과 희망, 아픔과 좌절을 새삼 느끼는 듯 하다.
금강산 향로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설악산, 점봉산, 단목령, 조침령에 이어 ‘아홉마리의 용이 쉬어갔다’는 구룡령 고개.
구룡령 정상에서 동쪽으로 ‘연어의 강’ 양양 남대천을 따라 강의 끝자락에 이르면 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응복산, 두로봉, 진고개 등 또다시 백두대간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오대산으로 이어진다. 최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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