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있으나 마나..17년째 한 푼도 안 걷은 '재건축 초과이익'
최소 10억 이익 '반포현대', 서초구 3월 이어 7월에도 납부유예 전망
"정치적 이해관계로 유명무실"..윤 정부, 법 무력화하는 '손질' 예고
7월 말로 예정됐던 서울 서초구 반포현대(반포센트레빌 아스테리움) 재건축부담금 부과가 또다시 연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1호 단지이자 재초환 제도의 바로미터인 ‘반포현대’는 지난 3월 부담금이 부과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초구가 7월 말로 유예했고, 한 차례 더 연기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부담금 완화를 공약하고, 지자체들도 부과를 꺼리면서 재초환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헌 결정 이후 징수 ‘0’건
서초구 관계자는 10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반포현대 재건축부담금에 대해 “지난 3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제도 완화 입장을 냈었고, 조합에서도 연기 요청이 있어 7월 말로 연기했다”면서 “여당에서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에 국토교통부와 국회의 협의 의견 등을 추가로 확인해 부과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건축부담금 제도는 2006년 5월24일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법 제정 이후 2번의 특례가 적용되면서 실제로 이 제도가 적용된 단지는 거의 없다. 법을 만들어놓고도 17년째 집행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까지 재건축부담금 예정액이 통보된 조합은 전국 63개 단지, 3만3800여가구에 달하지만 2019년 이후 부담금이 실제 부과돼 징수까지 완료한 곳은 단 하나도 없다.
‘재건축초과이익’은 재건축사업으로 정상 주택가격 상승분을 초과해 조합에 귀속된 주택가액의 증가분을 말한다.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초과이익을 산정하고, 여기에 부과율(10~50%)을 곱한 값이 재건축부담금이 된다. 조합원 1인당 평균 이익이 3000만원 이하일 경우는 면제되고, 3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부터 2000만원 단위로 구간을 나눠 10%에서 최대 50%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징수된 재건축부담금은 국가 50%, 해당 특별시와 광역 시·도 30%, 해당 시·군·구 20%씩 각각 귀속되는데 귀속분은 도시·주거환경정비기금, 국민주택사업특별회계 등으로 쓰인다. 재건축으로 큰 이익을 봤다면 정상적인 이익을 초과하는 부분은 해당 지역 주거환경복지를 위해 쓰도록 하자는 데 재초환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재초환 제도는 2019년 12월27일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에도 유명무실한 상태다. 헌재는 2014년 9월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제3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5년여 만에 재판관 6 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건축사업 개시 시점의 주택가액과 종료 시점의 주택가액 산정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 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이은애·이영진 재판관은 “‘1가구 1주택자’나 ‘실거주자’가 현실적으로 재건축부담금을 부담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경우에는 부득이 소유권을 유지하기 위해 거액의 대출을 받거나 대상 주택 등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에 어긋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정부, 부과 방식 수정 검토
지난 2~3년 새 급격한 집값 상승으로 이익을 본 재건축단지들은 그러나 줄곧 “부담금이 너무 커서 납부할 수 없다”며 납부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반포현대는 2018년 전용면적 84㎡의 시세가 14억원 안팎이었으나 입주를 시작한 지난해 82㎡가 25억원을 넘겼다. 최근 호가는 30억9000만원 안팎이며, 공시가는 2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규모의 인접 단지들의 실거래가는 25억원선이다. 인근 단지를 기준으로 산술해도 재건축을 통해 10억원 이상의 이득을 본 셈이다. 2018년 실거래가 2억원 안팎이던 은평구 연희빌라(은평서해그랑블) 역시 지난 2월 전용 59㎡가 7억50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은평구 역시 지난해 조합원 1인당 770만원의 부담금을 결정하고도 현재까지 부과조치를 보류하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반포현대는 2021년 7월에 준공인가를 받았고, 은평구 연희빌라는 2021년 5월 준공인가를 받았다”면서 “법이 강행규정으로 준공인가일로부터 5개월 이내에 부담금 부과 결정을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아직도 부담금 통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정부와 지자체가 모두 법 위반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부담금 금액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결국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법을 만들어놓고도 국가가 나서서 법 위반을 장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선 공약으로 부동산 규제완화를 내걸었던 새 정부는 재건축부담금 부과 방식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합원 1인당 평균 이익 3000만원’ 기준을 상향해 면제 대상을 확대하고, 초과이익 구간별 부과율을 낮추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입주 후 현금 납부가 아닌 현물 납부의 방식 등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말 재건축아파트를 10년 이상 장기 보유한 1주택자에 한해 부담금을 50% 감면하는 내용의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조합원 간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 정비사업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가 재초환 제도 손질을 예고하고 있지만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야당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법 개정 사안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재건축 용적률 상향 조정 등 정비사업 규제완화 공약을 내놓았지만 재건축부담금 완화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또 지난 2년의 아파트값 급등 시기와 달리 현재는 집값이 전국적으로 하락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향후 재건축부담금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초환 제도 자체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으나 지난 정부에서도 실질적인 부과는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현 정부 역시 법을 폐지하지 않더라도 법 적용 자체를 무력화하는 방향의 수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류인하·반기웅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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