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보다 뛰어난 차세대 발사체 개발 착수" [차 한잔 나누며]

곽은산 2022. 7. 1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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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
나로호 이어 7년간 누리호 사령탑
"12년 동안 하루도 제대로 잠못자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등 과제
예산 지원 흔들리면 사업 끊어져
항공우주청 설치 등 환경 개선을"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 항우연 제공
“나로호 때는 러시아라는 기댈 곳이 있으니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좋아지겠지’ 싶었지만, 이번엔 우리가 해결을 하지 못하면 안 됐어요. 다행히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왔고 이제 진짜 ‘우리의 기술’이 남은 거죠.”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지난달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는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우주 발사체”라며 이같이 의미를 부여했다.

누리호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 7대 우주강국 반열에 올랐고 기술 이전을 거부한 기존 강국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고 본부장은 2002년부터 러시아와 협업한 나로호 프로젝트에 함께했다. 이후 2010년 시작한 누리호 프로젝트에서 7년간 사령탑을 맡아 누리호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고 본부장은 10일 세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누리호 성공의 가치를 “기존 우주강국들이 하던 우주 개발에 우리도 파트너로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우주 개발 프로젝트는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식으로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과거 우리나라는 프로젝트에 초대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누리호 성공으로 한국이 우주 개발을 함께할 기본 기술을 갖춘 사실을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다.
고 본부장은 “외국 전문가들을 만나다 보면 누리호 개발을 진행하면서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누리호 성능의 정확성 등을 향상시키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자체 기술을 인정받은 만큼 이제 우주 개발 세계에서 한국은 굉장히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후보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누리호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로 12년간 하루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리호 발사 전날도 마찬가지였다. 기상 악화 등으로 두 차례 발사가 연기된 상황에서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빠뜨린 건 없을까’ 이런 생각에 한 시간에 한 번씩 잠을 깨며 뒤척였다. 발사에 성공한 날 밤엔 그간 함께한 개발진들과 소주 한 잔을 하고 그대로 고흥 나로우주센터 기숙사 방에 쓰러졌다. 고 본부장은 “매일 제대로 잠을 못 자던 상태에서 그날도 새벽 다섯 시 정도에 깜짝 놀라 잠을 깼다”며 “누리호가 발사를 한 건지, 꿈을 꾼 건지 정신이 없어서 창밖을 보니 발사대가 비어 있었다. 그제야 꿈이 아닌 걸 알았다”고 돌아봤다.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나로호 프로젝트 초반엔 러시아 기술진에게 무시도 당했다. 고 본부장은 “러시아 엔지니어 중 고위직에 계시는 분이 ‘한국이 발사체를 개발해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없지 않으냐’는 식의 태도를 보여서 자존심이 상했다. 저희가 모르는 게 사실이고 배우는 입장이니까 뭐라도 하나 더 얻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러시아의 공식적인 기술 이전은 없었지만 그렇게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누리호 개발에 도전할 수 있었다.

누리호 개발은 녹록지 않았다. 누구의 도움도 없는 상황에서 수차례 기술적 문제에 부딪혔다. 고 본부장은 “2015∼2016년 엔진 개발 당시 연소기 불안정 문제와 추진제 탱크 제작 과정의 문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이어 “독자적으로 누리호 개발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걸 넘어서고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걸 확인했을 때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고 본부장은 누리호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누리호 발사 이틀 뒤부터 대전 항우연에서 그간 잠시 미뤄놨던 업무를 시작했다. 2027년까지 누리호를 4차례 더 발사하는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 누리호보다 성능이 뛰어난 발사체를 만드는 차세대 발사체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고 본부장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우주 개발 사업이 굉장히 긴 사업이고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다 보니 예산이 중간에 줄어들거나 흔들리면 잠시 쉬어가거나 사업이 끊어진다. 이런 부분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항공우주청과 같은 기관을 빨리 잘 준비를 해주셔서 우주 개발을 끊임없이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은산 기자 silv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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