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차례 일 총리 피살 때마다 '극우 득세'..이번에도 재현될까
1932년·1936년 잇따라 발생
내각 위축·군국주의화 초래
전후 민주주의 공고해졌지만
극우 준동 가능성 배제 못 해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살해당한 일곱 번째 총리이다. 일본 현대사에서 총리 암살 사건은 정당정치가 붕괴하고 군국주의가 세를 떨치는 계기가 됐다.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 역시 극우세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베 전 총리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정치인들은 애도의 목소리와 함께 ‘민주주의’를 거론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는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며 9일 선거유세를 재개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최근까지 일본에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습격과 암살 사건은 여러 건 일어났다. 대부분 우익 세력이나 군부가 저질렀으며 특히 민주주의에 친화적인 총리나 거물 정치인이 대상이 됐다.
일본 해군 위관급 장교들이 1932년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살해한 ‘5·15 사건’은 정당정치를 무너뜨린 계기로 평가받는다. ‘5·15 사건’의 영향을 받아 육군 청년 장교들은 1936년 ‘2·26 사건’을 일으켰다. 쿠데타는 진압됐지만 이 사건은 내각을 완전히 위축시켜 군부가 중심이 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본 군국주의화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21세기에도 습격을 당해 사망한 정치인이 계속 나왔다. 정경유착 문제에 집중해 의정활동을 벌여왔던 이시이 고키 민주당 중의원은 2002년 자택에서 나와 차를 타려던 순간 우익단체의 칼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숨졌다. 모토시마 히토시 나가사키 시장은 1988년 시의회에서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2년 뒤 테러를 당했다.
다만 전후에는 이 같은 암살 및 암살 시도가 일어나도 정국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 살해는 종교단체와 관련한 개인적 원한이 동기가 된 범행으로 추정된다. 과거 우익 청년이 저지른 정치인 암살과 다르다. 하지만 극우의 열망을 대변하면서도 통제하는 역할을 했던 아베 전 총리의 ‘빈자리’가 향후 극우의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극단적 행동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나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치야마 유 도쿄대 교수는 “한때 ‘세계 최고 일본’이라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일본은 태어났을 때부터 하강하는 나라”라면서 “정치인들이 (시민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으면, 선거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과격한 수단에 호소하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간 플래시에 말했다.
미쿠시야 다카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의회민주주의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해도 테러리즘이 일어나기 어려운 나라를 만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성과였다”면서 “오랫동안 총리를 맡은 정치인이 총격으로 살해된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결의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사히신문에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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