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집권여당 압승..아베 애도표 결집 '개헌세력' 3분의 2확보

김소연 2022. 7. 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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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 출구조사]
"자민·공명당과 개헌찬성 야당
125석중 86~102석 얻을 전망"
평화헌법 개정 발의 속도 낼듯
아베파 '유지 계승' 강경 목소리
온건파 기시다 입지 애매해져
'힘의 공백' 속 파벌 투쟁 예고
10일 진행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10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이른바 ‘개헌 세력’이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했다. 개헌을 ‘필생의 과업’이라 말해온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치른 선거에서 개헌 세력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전후 70여년 동안 유지돼온 평화주의의 상징인 일본 헌법 개정이 눈앞에 성큼 다가오게 됐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이날 저녁 8시 선거 종료 직후 공개한 출구조사에서 개헌에 찬성하는 연립여당인 자민당·공명당과 야당인 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 등 4개 당이 개헌 정족수(재적의원 3분의 2) 확보를 위해 필요한 의석(82석·전체 166석)보다 많은 86~102석(선거 치르지 않은 의석을 합쳐 170~186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의원에서도 개헌 세력이 이미 개헌 정족수를 확보하고 있어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개헌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앞서 자민당은 지난달 16일 공개한 공약집에서 “헌법 개정을 조기에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기시다 총리는 개표 도중 <엔에이치케이> 방송과 인터뷰에서 개헌과 관련해 “자민당이 제안하고 있는 4개 항목의 개헌안은 긴급한 과제다. 국민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논의를 심화시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선 125석(결원 1석 보궐선거 포함)을 새로 뽑았다. 참의원의 전체 의석은 248석으로 6년 임기에 3년마다 절반을 새로 뽑는다. 정당별로 보면 자민당은 59~69석(115~125석), 공명당은 10~14석(32~36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선거의 승패 기준이라고 밝힌 자민당·공명당 ‘55석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애초 ‘여당 우세’ 판세에 더해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보수·우익 세력의 구심점 구실을 했던 아베 전 총리가 선거 이틀 전 불의의 죽임을 당하면서 애도 분위기가 더해졌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13~20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개헌 세력이 압승을 거두며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개헌 논의에 물꼬가 트이게 됐다. 하지만 이번 승리가 ‘승자’ 자민당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매우 복잡하다. 먼저, 당내 ‘온건파’를 대표하는 기시다 총리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선거 승리를 계기로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향후 국정 운영에선 ‘기시다 색깔’을 내세우려 고심해왔다. 자신의 ‘중간평가’ 성격이었던 선거가 갑작스러운 변고로 ‘아베 추모 선거’가 되어버렸다. 압승을 거둔 뒤에도 승리의 지분을 온전히 주장하기가 다소 껄끄러워졌다.

나아가 아베 전 총리의 장례가 끝나면, 자민당 내 역학 구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퇴임 뒤에도 최대 파벌의 수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아베 전 총리가 사라지며 거대한 ‘힘의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가 수장을 맡고 있던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는 전통적인 매파·보수 파벌로 당내에서 가장 많은 현역의원 95명을 거느리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아베파에서 관방장관, 경제산업상, 방위상(이상 각료), 총무회장과 국회대책위원장(이상 당직) 등 정부와 여당의 핵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파는 아니지만 지난 총재 선거에서 3위로 선전한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도 아베 전 총리의 핵심 측근 중 측근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아베파’를 누가 이끌어가는지부터 관심의 대상이다. 아베 전 총리가 ‘후계자’를 만들지 않은 상황이라 다양한 하마평이 쏟아진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 시모무라 하쿠분 전 정조회장,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정책적으로 보면, 자민당이 선거 공약으로 내건 헌법 개정과 방위비 증액 등 주요 정책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아베파의 주력인 강경파 의원들이 아베 전 총리의 ‘유지 계승’을 주장하며 개헌을 적극 주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는 특히 무력 사용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 개정’에 열의를 보여왔다. 자민당 역시 2018년 3월 당론을 통해 9조에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명기하는 안을 확정한 바 있다. 현재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인 방위비(5조4005억엔)를 5년 내에 2%로 올리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될 수 있다. 다만, 막대한 재원 마련 방안을 둘러싸고 복잡한 논의가 이어질 순 있다.

하지만 개헌 세력 내의 의견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연립여당 내에도 개헌과 방위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방향성엔 공감대가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공명당은 평화를 당시(정당의 기본 방침)로 내걸고 있는 정당이어서 9조 개헌에 신중한 입장이다.

그 때문에 아베 전 총리의 부재가 강한 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전 총리가 당내에서 개헌이나 방위비 증액 등을 강하게 주장한 것이 정책의 추진력이 되어왔다. (그의 부재로) 중장기 정책 축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아베 전 총리의 ‘강경 노선’과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정치 기반으로 삼는 기시다 총리의 ‘온건 노선’ 사이엔 적잖은 온도 차가 있었다. 둘 사이의 노선 차이는 지난해 10월 기시다 총리 집권 후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 일부 노출된 바 있다. 기시다 총리는 당시 아베 전 총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온건파인 하야시 요시마사를 외무상으로 기용했다. 기시다 총리는 개헌 등 이념 이슈보다 분배를 강조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등 경제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방위비 증액 논란에 대해 “(국내총생산의 2%라는) 숫자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내용을 결정한 뒤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고, 9조 개헌에도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요미우리신문>에 “아베 전 총리가 있었기 때문에 (정책을 결정하는) 마무리가 잘됐다. 방위비 증액이나 재정정책 등을 둘러싸고 당내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베 전 총리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워낙 강해 부작용도 있었지만 의견 취합이 쉬웠다는 뜻이다. 결국 아베 전 총리의 부재 속에서 기시다 총리가 어떻게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해갈지가 향후 개헌 논의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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