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도전의 기회로..캐나다 육군 안예희 중령
캐나다 에드먼턴의 한 육군 부대.
많은 이들이 모여 박수와 함성으로 축하를 전합니다.
캐나다 왕립 사관학교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를 졸업하고 2009년 소위로 임관한 안예희 씨의 중령 진급식입니다.
능력과 진취적인 태도를 인정받아, 임관 13년, 소령 진급 4년 만에 중령으로 진급했습니다.
[올리버 데셔누 / 주임 원사 : 군인으로서 안예희 중령은 큰 그림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본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일에 대해서 생각하죠. 그리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위험을 완화하거나 피해 가는 방법을 찾습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했던 안예희 씨.
그런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버지의 권유로 사관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6살 어린 나이에 캐나다로 이민 온 예희 씨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한인경 / 어머니 : 훈련받을 때 제일 힘든 게 20kg짜리 군장 메고 40km를 걷는 거래요. 굉장히 힘든가 봐요. 그럴 때 자기는 태극기가 떠올랐대요. 나는 그게 너무 눈물 나요. 태극기가 떠오르고 고생하는 엄마, 아빠 얼굴이 떠올라서 걸었대요. 끝까지 걸었대요.]
운동, 공부, 프랑스어와 리더십 이 네 개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사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예희 씨는 에드먼턴의 군부대에서 복무를 시작했는데요,
201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7개월 동안 파병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남성 위주인 군에서 여성으로, 그것도 한인 여성으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한 예희 씨.
한인 후배들에겐, 닮고 싶은 존재가 됐습니다.
[에밀리 곽/ 대위 : 안예희 중령의 성공은 저에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람이고 제 롤모델이자 멘토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안예희 중령처럼 되고 싶기도 하고, 한국 여성 장교이면서 캐나다군이기 때문입니다. 또 선례를 만들면서 멘토링도 해주고 보살펴 줘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안예희 / 중령 : 사람들은 못 하는 게 있으면 피하잖아요. '나 그런 거 못 해, 나 그런 거 싫어해' 그러지만 나는 뭘 못 하면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가르쳐 주세요, 연습해 봐야지' 이런 마인드셋(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서 육군사관학교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한때는 소수 인종으로서 설움도 겪었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가 누구보다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예희 / 중령 : 옛날에는 김치 같은 걸 도시락에 갖고 오면 애들이 냄새나니까 놀렸잖아요. 그래서 인종차별 당하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그런 내가 한국인인 걸 숨겨야 하는 것 때문에 마음고생 했지 지금은 누가 냄새 맡든 김치 갖고 오고 // 한국 사람이 (가진 것 중) 다른 시민들이 안 가지고 있는 게 정, 깡, 그리고 눈치예요. 그 세 가지를 좋은 식으로 봐서 세상, 리더십에 적용하면 너무너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거예요, 그게 한국 사람이에요, 제 생각에.]
소수 인종, 여성이라는 점과 함께 군 생활에서 넘어서야 했던 산은 또 하나 있습니다.
여성 파트너와 부부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예희 씨는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존 볼란드 / 중령 : 캐나다 사회가 변화하는 동안 캐나다 군대 문화도 변화했고 안예희 중령도 그 일부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예희 중령이 장벽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죠. 그는 어려움을 있는 대로 받아들였고 리더로서 성 소수자들(LGBTQ)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희 씨가 중령으로 진급한 후 맡은 첫 임무는 라트비아 파병!
라트비아 주둔 지휘국인 캐나다의 군인으로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때문에 라트비아에 모인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 9개국의 군대를 지휘하는 역할입니다.
6개월로 예정된 파병 기간은 결혼 이후 처음으로 긴 시간 가족과 떨어지는 건데요.
[앤지 / 배우자 : 그립겠지만 배우자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안전하기를 바랄 뿐이죠.]
[안예희 / 중령 : 걱정하지 말고 그냥 잘하고 올게요.]
여성이자 동양인, 성 소수자로서 여러 어려움을 헤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예희 씨.
어디서든, 소수자가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겠다고 말합니다.
[안예희 / 중령 : 저는 일 못 할 때까지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할 것 같은데요. 저는 무슨 분야에 들어가도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게 UN이든 정부든 그런 쪽으로 계속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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