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못해 단장의 심정"이라던 아베..사후에 '정치 숙원' 이루나
1980년 오히라 총리 사망후 압승
이번에도 개헌 정족수 충족할 듯
개헌안 아베 재임땐 발의 못했지만
우크라 사태 등 최근 여론 우호적
향후 선거없어 '기시다 황금 3년'
당내 권력 개편땐 日정치권 요동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망과 그 충격 속에서 10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가 일본 정치권에 심상치 않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날 출구조사 결과 개헌을 지지하는 연립여당과 일본유신회 등이 압승한 것으로 나오면서 아베 전 총리의 숙원인 헌법 개정이 본격적인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수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함으로써 자민당 내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날 총 125명의 참의원을 뽑는 선거에는 총 545명이 입후보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양원제를 채택한 일본에서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3년마다 전체 의원의 절반을 새로 선출한다.
NHK방송은 이날 선거 종료 직후 공개한 출구조사에서 선거 대상인 125석(보궐 1석 포함) 가운데 집권여당인 자민당이 59~69석,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10~14석을 확보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보도했다. 두 여당이 합해 69~83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자민·공명당이 목표로 제시한 55석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참의원에서 현재 임기 3년이 남은 여당 의석수는 70석(자민당 56석, 공명당 14석)인데 여기에 이번 출구조사 결과를 더하면 선거 후 여당의 의석수는 최소 139석에서 최대 153석으로 전체 의석(248석)의 과반(125석)을 훌쩍 넘기게 된다.
아베 전 총리의 피격이 자민당의 압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1980년 당시 중·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오히라 마사요시 당시 총리가 급성 부정맥으로 사망하자 분당 위기까지 몰렸던 자민당이 예상을 깨고 압승을 거뒀듯이 이번에도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이 가뜩이나 안정적인 승리가 예상됐던 자민당에 더욱 힘을 싣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이번 선거로 아베 전 총리의 숙원인 개헌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개헌안이 발의되고 국민 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해야 개헌이 이뤄지는데 출구조사에 따르면 개헌 세력인 자민·공명·일본유신회·국민민주 등 4개 정당이 82석 이상을 확보한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이날 출구조사에서는 일본유신회가 10~15석, 국민민주당이 2~5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따르면 이들 4개 정당은 이날 총 81~103석을 얻으면서 기존 의석(84석)을 포함해 총 165~187석을 확보하게 된다. 아사히신문은 “이들 4개당이 90석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며 “4개당의 의석수가 개헌 발의에 필요한 166석 이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일본 정치권이 방위비 증가, 개헌 등 아베 전 총리의 핵심 대의에 더 많은 추진력을 가할 것”이라며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동정으로 개헌에 찬성하는 여론이 늘며 개헌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재임 중 의회 내 개헌 세력을 확보했음에도 개헌안 발의조차 하지 못했을 만큼 일본 정계에서 개헌은 어려운 일로 여겨졌다. 아베 전 총리는 퇴임 후 인터뷰에서 “개헌을 할 수 없었던 것이 단장(장이 끊어지는)의 심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한 데다 아베 전 총리의 총격 사망 사건으로 일본인들의 개헌 지지 여론이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교도통신의 3∼4월 여론조사에서 개헌 지지 의견은 68% 수준으로 반대(30%)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내년에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헌법심사회를 열어 2024년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안을 발의, 2025년 개헌 국민투표를 한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향후 일본 정국에 대해서도 다양한 예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 이어 정권 중간평가 성격인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내면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는 3년간 굵직한 선거가 없는 ‘황금의 3년’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기시다 총리가 통치 기반을 공고히 하고 국방비 지출 확대라는 자신의 목표를 실행할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계와 자민당 내 구심점이던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당내 세력도가 변하고 정치권이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 전 총리 장기 집권 덕에 10년간 안정됐던 정치권에 혼란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매파’인 아베 파벌에서 그나마 아베 전 총리가 파벌 내 극우 목소리를 제어해온 가장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 받았는데 그의 부재로 자민당이 더 우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WP는 “아베 전 총리의 부재로 당파 개편이 일어날 경우 당내 권력 역학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며 “이는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김연하 기자 yeon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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