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찰제도 50일 만에 허물다..'제2의 윤석열' 원천 봉쇄?
경찰 망신 주고 길들이며 직접통제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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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 설치는) 경찰 행정·제도를 32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것이다.”(2022년 6월21일 국가경찰위원회 입장문)
“경찰에 대한 지휘계통이 헌법과 법률에 맞게 정상화되는 것이다.”(6월27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임기(2년)가 한 달도 남지 않은 김창룡 경찰청장이 6월27일 오전 8시30분 사의를 밝혔다. 그로부터 2시간30분 뒤인 오전 11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경찰국’ 설치, 경찰 지휘규칙 제정 등 행안부가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행안부와 경찰청 사이 점차 고조된 갈등이 결국 이날 폭발했다. 이상민 장관 취임 이후 지난 50일 가까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30년 경찰제도 50일 만에 허물어
이 장관은 취임 첫날인 5월13일 행안부 간부들에게 가장 먼저 ‘경찰 민주적 통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곧바로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꾸려졌고, 한창섭 행안부 차관과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황정근 변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네 차례 개선방안을 논의한 자문위는 △총경 이상 임용 제청권 등 행안부 장관의 권한 행사를 위한 관련 지원조직(경찰국) 신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지휘하는 규칙 제정 △경찰 고위직 후보추천위 설치 △경찰청장을 포함한 경찰 고위직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징계요구권 부여 등 4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이러한 개선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이 장관이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인 치안정감 6명의 개별 면접까지 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에선 큰 논란이 일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윤석열 정부의 경찰 장악 의도”라며 반발했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6월17일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린 데 이어, 20일 간부회의에서는 “자문위 주장은 경찰법 정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이 언급한 ‘경찰법 정신’이란 30년에 걸친 ‘경찰 독립’을 뜻한다. 과거 정권을 비호하려 경찰이 저지른 각종 인권유린 사건 등의 재발을 막기 위해 1990년 정부조직법이 개정돼 내무부(현재의 행안부) 담당 사무에서 ‘치안’이 삭제됐다. 1991년에는 경찰청이 외청으로 독립되고 경찰법이 제정되면서 경찰 고위직에 대한 경찰청장의 추천권이 신설됐다. 외부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경찰위원회(현재의 국가경찰위원회)를 두고 경찰 예산편성권, 정책·제도 심의·의결권을 줬다. 2003년에는 경찰청장 2년 임기를 보장하면서 법령을 위반하면 국회가 탄핵소추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는 방향으로 관련 법도 개정됐다. 경찰청 ㄱ간부는 “30년에 걸쳐 어렵게 만들어진 경찰제도를 ‘친정권’인 자문위가 네 차례 회의를 통해 경찰 관련한 모든 권한을 장관 1인에게 집중시키고 정권과 경찰이 다시 한 몸이 되도록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6월21일 오후 1시, 자문위가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경찰청과 행안부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임시회의를 소집해 “이번 권고안은 경찰 행정을 과거와 같이 국가권력에 종속시켜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 판단된다”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오후 2시30분 전국 시·도 경찰청장들도 긴급 화상회의를 열었다. “권고안은 경찰위원회 의결 대상이다. 행안부 장관이 그냥 시행하면 권한쟁의심판 청구 대상이고 장관은 탄핵 대상이다.”(ㄴ청장) “본청(경찰청) 대응이 너무 늦어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청장이 나서서 총리, 국회와 면담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라.”(ㄷ청장) 분위기는 심각했다.
‘퇴근 뒤 인사발령’ 유치한 보복
이날 저녁, 예고 없이 치안감 인사가 실시됐다. 다음날 오전 9시로 부임 시기를 못박았다. 이미 퇴근했던 치안감들이 부랴부랴 짐을 싸러 사무실에 나왔다. 이번 인사로 사실상 퇴직 상태인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노승일 충남청장도 퇴근한 상태에서 인사발령을 통보받았다. 그도 시·도 경찰청장 회의 때 장관 탄핵 가능성을 거론하며 강경 발언을 했다. 그는 이임식 겸 퇴임식도 할 수 없었다. 39년간의 경찰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시·도경찰청장 긴급회의를 주도했던 김학관 경찰청 기획조정관은 이날 저녁 7시30분 경찰청 교통국장으로 발령이 났다가 2시간 뒤 ‘치안감 말석’이라고 불리는 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으로 발령 내용이 수정됐다. 김 치안감뿐 아니라 7명의 치안감 보직이 2시간 만에 변경됐다. 경찰 전용 골프장 예약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명교 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은 6개월 만에 중앙경찰학교장으로 영전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와 경찰청은 “청와대에서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 내용이 공개돼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ㄹ경무관은 “이번 인사는 시기나 내용으로 볼 때 시·도경찰청장 회의에서 나왔던 발언에 대한 유치한 보복이다. 법적으로 시·도 경찰위원회와 사전 협의가 필요한 시·도청장 내정자들을 바꿀 수 없으니, 부임 시간으로 괴롭힌 것 같다. 보통 아무리 급해도 부임까지 하루이틀은 시간을 준다. 누가 위고 아래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려는 의도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경찰청장에 전남 출신을, 경북경찰청장에 전북 출신을 보냈는데, 이렇게 인사를 내면 청장들이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직) 인수위 출신들은 연고지 등으로 보내줬다. 속 보이는 인사”라고도 덧붙였다.
새로운 시·도경찰청장이 부임하고 하루 뒤인 6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에서 행안부로 자체적으로 추천한 인사를 그냥 보직해버렸다”며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를 “아주 중대한 국기 문란”이라고 말했다. 행안부 경찰국 설치에 대해서는 “경찰보다 어떻게 보면 더 중립성과 독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검사 조직도 법무부에 검찰국을 두고 있다.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없어졌으니) 당연히 치안이나 경찰 사무를 맡은 내각의 행안부가 그에 필요한 지휘통제나 이런 것을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대통령 발언 뒤 행안부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이상민 장관은 6월27일 브리핑을 열어 “경찰청 역시 대통령-국무총리-행안부-경찰청의 지휘라인에 있다. 행안부에 경찰 관련 조직을 두지 않으면 경찰은 아무런 지휘나 견제기관 없이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에 이어서 ‘제4의 경찰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경찰국 설치가 국회의 법 개정 사안이라는 지적과 관련해 이 장관은 “경찰청을 통해 (장관이) 치안 사무를 관장하는 것이지 (정부조직법에서) 치안 업무가 빠진 것이 아니다.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치안 사무 관장 주체가 누구인지 명백하게 알 것이다. 법에 이미 규정된 권한 행사를 위한 직제 신설은 국회 입법사항이 절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ㅁ치안감은 “검사는 하나의 독립된 기관으로 역할을 하면서 신분이 보장되지만, 경찰은 군인과 비슷하게 상명하복 조직이다. 중립성, 독립성이 중요한데 법무부 검찰국에 빗대 행안부 경찰국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의 이창민 변호사도 “경찰권 비대화를 막으려면 자치경찰제를 실질화하는 등 권한에 대한 수평적, 지역적 분산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자치경찰권 강화를 약속했다. 지금 급하게 추진하는 경찰국 설치는 공약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처럼 영웅 될까봐?
경찰청장 사퇴, 경찰 간부들의 집단 반발 등이 이어지자 이상민 장관은 6월2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7월15일까지 최종안을 발표하고 시행령(개정)을 거치면 또 한 달 걸린다. (경찰국 설치는) 8월 말에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이 이처럼 ‘경찰 직접통제’를 서두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30년 넘게 유지된 경찰제도를 바꾸려면 난리가 나서 국민적인 지탄을 받거나 경찰청장이 묵과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거나 하는 상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죠. (경찰) 수사권이 커졌으면 사법적 통제 강화로 가야지, 경찰을 장악하려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때 문재인 정권에서 ‘나가라’고 신호를 줘도 안 나가고 정권에 덤볐잖아요. 이제 덤비면 영웅이 되는 겁니다. 임기 2년 경찰청장이 말을 안 들으면 쫓아낼 방법도 없고 어떻게 하나,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경찰청장 후보군) 면접을 보고 징계권을 만들려는 거예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때) 했던 일들이 부메랑이 되는 거예요.”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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