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파산' 스리랑카 반정부시위..형제 18년 집권 막 내려

김미향 2022. 7. 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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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팍사 대통령 13일 사임" 밝혀

시민들 대통령 관저까지 점거
코로나 등 타격 생필품난 극심
경제위기 5월 디폴트 상태로

대통령·총리 동반 사임 발표
라자팍사 가문 장기집권 종식
지난 9일 스리랑카 콜롬보시의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거리에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해산시키려고 최루탄을 쏘았다. AFP 연합뉴스

경제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파산’을 선언한 스리랑카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동반 사임했다. 지난 9일 수천명의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를 점거하고 총리 자택에 불을 지르는 등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나온 결정이다. 20년 가까이 스리랑카를 지배하던 라자팍사 가문의 통치도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은 9일 밤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13일 공식 사임한다고 밝혔다.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은 스리랑카 방송에 나와 “대통령을 만나 퇴임하라고 요청했고 그가 동의했다. 그는 13일 사임한다고 공식 발표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에 더 이상의 소란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원활한 권력 이양이 가능하도록 모두가 평화를 유지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2019년 11월 권좌에 오른 고타바야 대통령은 2024년까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임하게 됐다. 지난 5월 경제 위기의 책임을 지고 형인 마힌다 전 총리가 사퇴하면서 새로 임명된 라닐 위크레마싱헤 총리 역시 이날 사퇴 의사를 밝혔다.

라우프 하킴 야당 통일인민전선(SJB) 국회의원은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해 임시정부 구성을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임시 대통령직을 맡은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은 물러나는 고타바야 대통령에게 초당적 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야당은 이들을 배제한 새 정부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은 보도했다.

라자팍사 가문은 2009년 북부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던 타밀족과의 내전을 성공적으로 끝내며 스리랑카 사회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확보했다. 이어 항만, 공항, 대형 건물 등 각종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집중 투자에 나서 경제개발을 주도했다. 그 결과 2012년 한때 스리랑카의 경제성장률은 9.2%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사업 대부분 국제 금융시장 등에서 외채를 끌어들인 것이어서 스리랑카 경제에 큰 부담을 안기게 된다.

2020년 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취약해진 스리랑카 경제에 결정타를 날렸다. 주요 산업인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국가 경제를 떠받치던 국외의 송금도 크게 줄었다. 여기에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인플레이션까지 겹쳤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나라 전체가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스리랑카 국민들은 몇달 전부터 식량·연료·의약품 등 필수품의 극심한 부족으로 고통받아왔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4월 일시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고, 5월18일 공식적 디폴트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들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를 신청하며 위기 극복을 시도했지만, 5일 ‘파산’을 선언했다.

9일 연료 부족으로 자가용을 이용할 수 없게 된 시민들은 전국에서 버스·기차·자전거를 타고 때론 걸어서 수도 콜롬보로 몰려들었다. 수천명의 시위대는 거리에서 깃발을 흔들고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며 관저로 향했다. 경찰은 행진하는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고 물대포를 퍼부었지만 진압하지 못했다. 시위대는 대통령 관저와 총리 자택을 점거한 뒤 그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찍은 영상을 보면, 군중은 점거한 대통령 관저 안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축배를 들고, 정원 수영장에서 물을 튀기며 환호하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총리 자택에 들어가 불을 질렀다.

대통령의 사퇴로 20년 가까이 스리랑카를 통치한 라자팍사 가문은 사실상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다. 2004년 마힌다가 총리직에 오르고 내전을 끝내며, 강력한 정치 족벌로 성장한 라자팍사 가문은 2019년엔 동생인 고타바야가 대통령이 되어 집권을 이어갔다. 대통령은 형제와 아들 5명을 내각에 배치해 3년간 국정을 이끌었지만, 결과는 파국이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지난 9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 있는 대통령 관저 앞에서 시위대가 부서진 경찰 트럭 위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9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시위대가 대통령궁을 점거한 뒤 환호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 수천명은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뚫고 대통령 관저에 들어갔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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