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입법으로 해결하라"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 부진
승차공유 플랫폼인 ‘타다’의 운전기사를 ‘쏘카’ 소속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지난 8일 법원의 1심 판결을 놓고 노동계에서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외면한 판결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1심 재판부는 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했지만, 국회에서 관련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정부도 큰 의지를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의 타다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쏘카의 배차 중단 통보를 타다 기사들에 대한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본 배경에는 타다 기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있다. 부당해고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일단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돼야 하는데,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가 ‘종속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그 범위를 엄격하게 따졌다. 온라인 공간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노무제공을 하기에 누가 사용자인지 모호한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 보호 대상에서 배제했다.
재판부는 “디지털 데이터와 매칭 알고리즘 등을 기본 속성으로 하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노동에 종사하는 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필요성은 있다고 봤다. 하지만 “공유경제질서의 출현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사적 계약관계를 존중할 필요성이 있다”고도 했다. 공유경제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은 플랫폼 기업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쏘카 자회사인 VCNC가 타다 앱을 통해 기사의 출퇴근, 콜 미수락 등 근태정보를 관리했으나 이는 ‘플랫폼에 기반한 타다 서비스의 성격’에서 비롯됐다는 재판부 판단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기사가 ‘자유롭게’ 일했다고 했다.
노동계에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 제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판해왔다. 윤애림 박사는 “타다 기사가 누렸다는 자유는 마치 운수회사에서 대기 기사가 가지는 탄력적 근무시간이나 일용직이 내일도 구직활동을 할 것인가 여부를 선택할 자유에 불과했지만, 행정법원은 타다 기사가 개인사업자라는 사용자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플랫폼 기업이 혁신을 빌미로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려는 불공정한 행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판결에서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는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계약관계의 일방적 종료 등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입법을 통해 규율하거나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입법 논의는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3월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을 발의했지만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가 반대했다. 이에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플랫폼 노동자를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추정하고, 이를 부인하려면 기업이 증명하도록 하는 법 제정안을 추가로 냈다. 열세한 지위의 노동자가 근로자성 입증을 위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고, 법적 다툼에만 수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돼있는데 아직 진전은 없다.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정부 추산 66만명으로, 상당수가 청년이다. 전년도(22만명)보다 대폭 늘어나는 등 규모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법원 판단이나 법·제도들이 잇따라 나온다. 민주노총 노동자권리연구소는 플랫폼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 업무를 자유롭게 조직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수행을 통제했다면 근로계약에 해당한다는 2020년 독일 연방노동법원 판결을 10일 번역해 소개했다. 연구소는 “플랫폼 노동자는 계약상으로는 플랫폼 기업이 제안한 업무를 수락할 의무가 없었지만, 플랫폼 구조는 더 많은 미세작업을 수행해야만 레벨이 올라가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보수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설계됐다”며 “이 시스템을 근거로 플랫폼 노동자가 종속적 관계에서 일을 한 근로자라고 인정한 점이 판결에서 주목할 부분”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플랫폼 종사자 등 모든 노무제공자의 권리 보장”을 언급하며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한 모든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 보장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일하는 모든 사람의 보호를 위한 기본법’ 제정 의지도 드러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노동시장 개혁 방안 발표에서 현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할 정책으로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을 내세웠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대책은 아직 별달리 발표된 게 없다. 타다드라이버비대위·라이더유니온·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성명을 내고 “VCNC도, 인력파견업체도 타다 기사의 근무조건과 관련해 자율적으로 판단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쏘카 결정에 따라 일종의 업무부서로 기능했던 것”이라며 “타다 기사가 근로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근로자이냐”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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