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마다 다른 성격 찾아내 매력 전하죠"

박대의 2022. 7. 1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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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연주자 최규미
고1때 늦깎이로 시작해
유럽 유학하며 실력 쌓아
세인트올번스 콩쿠르
아시아인 최초 우승자
20일 롯데콘서트홀 공연
내성적인 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잘 모르는 상대를 앞에 둔 어색한 순간 표정은 굳어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식은땀이 흐르기도 한다.

악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것을 들고 다닐 수 없어 매번 다른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연주자들에게 적응의 시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과 마주하는 느낌이에요."

오르간 연주자 최규미(32)가 매번 연주에 임할 때 가장 크게 받는 느낌도 어색함이다. 연습할 때 전자오르간으로 듣던 소리는 실전을 앞두고 파이프오르간 콘솔 앞에 앉았을 때 전혀 다른 소리로 변하기도 한다.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가 내향성이라는 그에게 매번 마주하는 악기의 성격을 파악하는 일은 고되다.

"매번 적응해야 해요. 음색을 만들고 (소리를) 저장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어떤 오르간은 저장하는 기능이 없어서 악보에 적어둬야 해요. 제 악기로 하면 편하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매번 시간이 필요하죠."

파이프오르간은 콘솔에 배치된 4단의 손건반과 음색과 음역을 조절하는 68개의 음전(音栓·Stop)을 통해 5000여 개 파이프를 울리며 다양한 소리를 낸다.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파이프를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악기의 규모는 크고 다양하다.

어릴 적 피아노를 쳤던 최규미는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오르간을 시작했다. 교회에서 반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어머니의 권유는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됐다. 크게 흥미가 없던 피아노와 달리 수많은 버튼이 복잡하게 연결된 오르간은 그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피아노도 교회 반주 목적으로 배웠어요. 그래서 오르간 연주를 권유받았을 때 별 거부감이 없었어요. 피아노를 치면 졸렸는데 오르간은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더라고요(웃음)."

오르간 연주자 최규미가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롯데문화재단]
최규미는 2009년 입학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수없이 많은 파이프오르간과 마주했다. "한국에 파이프오르간을 다 합쳐도 200개가 될지 모르겠어요. 일본만 해도 전국에 2000개가 넘어요. 유럽은 어딜 가도 있거든요. 그 장소에 맞게 건축된 오르간을 제가 만나러 가는 거예요. 매번 다른 악기를 만나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그 장소만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거든요."

'오르간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오르간에 앉았지만, 최규미는 2019년 영국 세인트올번스 오르간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회 60년 역사상 아시아인이 우승한 것은 최규미가 처음이다.

"체력과 레퍼토리 면에서 어느 정도 숙련되지 않으면 준비조차 못 할 대회였거든요. 그래서 출전 전에 이전 우승자가 누군지 알아볼 겨를도 없었어요. 결과가 나오고 저더러 '첫 아시안 우승자'라고 불러주시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주변에서 더 놀라워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동안 코로나19로 제공받지 못했던 콩쿠르 우승의 수혜도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최규미는 지난 2년간 스위스에서 배운 실력을 유럽 순회공연과 단독 음반에 담아낼 계획이다. "2년이나 미뤄지니까 막막하고 힘들었어요. 예정된 공연이 취소될 땐 제가 잊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다행히 학교를 다니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는 2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오르간 오딧세이-오르간 팔레트'에서는 파이프오르간이 가진 매력을 관객들에게 알기 쉽게 알리려 준비하고 있다. 선곡 중 바흐의 '프렐류드 내림마장조'는 오르간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정통 레퍼토리다. "마티네(낮) 공연이다 보니 어쩌면 오르간에 관심이 큰 분들이 주로 오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시는 분들은 아실 만한 오르간스러운 곡을 하나 넣었죠. 부디 오르간의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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