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칭찬한 '한국 원전업계 공기·예산 준수'.."부실시공 조장"
공기 맞추려 설계 변경·야간 콘크리트 타설
한빛3·4호기 콘크리트에 264개 공극 생겨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정해진 공사기간(공기) 준수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원전 건설업계의 경영문화가 한빛 원전 3·4호기의 가동을 장기간 멈춰 세운 부실시공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원자력업계가 한국의 원전 시공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내세워 온 이른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이 한빛 3·4호기 원자로 격납건물 콘크리트에 수백개의 구멍이 나게 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온 타임 온 버짓’은 정해진 예산과 공기에 맞추는 것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원전 건설업계의 남다른 능력으로 추켜세운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경남 창원 원전산업 현장을 방문해 “원전을 예산에 맞게 적시 시공하는 ‘온 타임 온 버짓’은 세계 어느 기업도 흉내 못 내는 우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원안위 산하 원자력안전기술원(KINS·킨스)은 지난 7일 열린 원안위 회의에서 위원들에게 한빛 3·4호기 격납건물 콘크리트에서 빈 구멍(공극)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근본 원인에 대해 “(설계) 경험 부족과 공기단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경영문화가 공극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한다”고 보고했다. 킨스는 보고 자료에서 “설계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기 준수 달성이 강조됨에 따라 공극을 유발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고리 3·4호기 건설부터 국내업체가 주계약자로 경험을 축적한 점을 볼 때 사업자의 시공 경험은 공극 발생의 주된 요인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2016년 한빛원전 2호기 격납건물 내부 철판에서 부식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한국수력원자력은 한빛 3·4호기 격납건물에 대해서도 확대 점검을 시행했다. 점검 결과, 모두 264개(3호기 124개, 4호기 140개)의 공극이 발견됐고, 이 가운데는 깊이 157㎝짜리도 나왔다. 이에 따른 격납건물 안전성 평가와 보완 등을 위해 한빛 3호기는 2년 반가량 가동이 중단됐고, 한빛 4호기는 만 5년1개월째인 지금까지도 가동 중단 상태에 있다.
7일 원안위원들에게 보고된 내용은 원안위가 한빛 3·4호기에서 공극이 집중 발생한 원인 규명을 위해 구성한 ‘공극발생 근본원인 점검 태스크포스(TF)’가 내린 결론이다. 이 티에프는 원안위 사무처 인원이 팀장을 맡고 킨스에서 분야별 전문가 10여명이 참여해 2019년 8월부터 운영됐다.
원안위에 제출된 ‘한빛 3‧4호기 격납건물 공극발생 근본원인 점검 결과’를 보면, 티에프는 “동일 노형 원전과 비교한 결과 야간 (콘크리트) 타설이 많음을 확인(했다)”며 “잦은 야간 타설이 콘크리트 다짐에 영향을 미쳐 공극을 유발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야간 타설은 작업장의 조도와 작업자 피로도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콘크리트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티에프가 콘크리트 작업절차서 등을 점검했더니 한빛 3‧4호기의 야간 타설(19시~02시 타설 시작) 횟수는 각각 8회로 전체 타설의 53%를 차지했다. 반면 이어진 한빛 5호기에서는 1회에 불과했고, 6호기에서는 전혀 없었다.
티에프는 “콘크리트 타설 초기 공기 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야간 타설, 임시보강재 미제거 현장설계변경요청서(FCR) 발행 등의 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다른 원전 시공 때는 임시보강재를 제거한 뒤 후속 공정에 들어갔으나, 한빛 3·4호기 시공 때는 현장 설계 변경을 통해 임시보강재를 제거하지 않아,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것이 티에프의 판단이다
특히 티에프가 확인한 ‘영광원자력 3‧4호기 건설기술편람’에는 “외벽 1단 콘크리트 타설 시에는 37일간의 공기 지연이 있었고, 3단 타설 시에도 64일의 공기가 지연되어 단이 올라갈수록 공기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돌관작업 등 여러 비상조치 수단을 강구해 노력한 대가로 성공리에 목표를 달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돌관작업은 연장, 야간, 휴일 작업을 불사하며 인력과 장비를 집중 투입하는 것을 말한다.
티에프는 원안위에 제출한 자료에서 “(한빛 3·4호기)건설 과정에서 사업자의 최우선 목표는 공기 준수이며, 공기 단축을 위한 사업자의 노력을 확인(했다)”며 “설계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기 준수 달성이 강조됨에 따라 공극을 유발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보고했다. 티에프가 확인한 한빛 3·4호기 건설사업소 평가편람을 보면, 1993년부터 한빛 3·4호기가 상업운전에 들어간 1995년과 1996년까지 내부실적 평가지침에서 공기 준수나 공정관리의 비중이 30%로 1순위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해외에서 원전을 지을 때 공사비와 시공 기간이 계획보다 많이 늘어나는 것은 결국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데, 우리만 정해진 공기 안에 원전 건설을 끝낸다는 것이 자랑할 일이냐”며 “정부가 ‘온 타임 온 버짓’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부실시공을 조장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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