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아베 피격 소식에 '좋아요' 누르는 중국인들

김지성 기자 2022. 7.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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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 소식은 중국에서도 단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신화통신과 CCTV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피격 직후부터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으며,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선 관련 해시태그가 연일 검색 순위 상위에 랭크되고 있습니다. 사건 초기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아베는 이미 생명 징후가 없다#는 해시태그는 10일 오전 현재 조회 수가 17억 회를 넘어섰습니다. 중국의 인구가 14억 명임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개중 일부는 2번 이상 이 소식을 접한 셈입니다. 관련 기사 중 하나에는 '좋아요'가 210만 번 이상 눌렸습니다. '좋아요'가 수십만 번 눌린 다른 기사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접하는 중국인들 반응에는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이 엿보입니다.
 
중국 웨이보에 올라온 아베 전 일본 총리 피격 관련 CCTV 보도. '좋아요'가 216만 회 눌려있다.

중국 네티즌들, 국치일 '7·7 사변'과 아베 피격 연결 지어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하기 하루 전인 7월 7일은 85년 전인 1937년 중국에서 '7·7 사변', 이른바 노구교 사건이 발생한 날입니다. 7·7 사변은 중국과 일본 군대가 베이징 노구교에서 충돌한 사건으로, 중일전쟁의 발단이 됐습니다. 당시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렸다는 이유로 베이징 교외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주력 부대를 출동시켜 노구교를 점령했고, 이후 베이징과 톈진에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해 12월에는 난징에서 대학살이 자행됐습니다. 중국인들은 7월 7일을 국치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라의 수치를 잊지 말자'고 보도한 7일 자 중국 매체 펑파이의 보도


때문에 7월 7일이 되면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고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일본 전자회사 소니가 중국에서 7월 7일을 신제품 출시일로 잡았다가 중국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고 우리 돈 2억 원에 가까운 벌금까지 물어야 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7일 '오늘의 중국은 1937년의 중국이 아니다'라는 게시물을 웨이보에 올렸습니다.

인민일보는 7일 '오늘의 중국은 1937년의 중국이 아니다'라는 게시물을 웨이보에 올렸다.

아베 전 총리 피격 소식에 달린 댓글 중에는 이 7·7 사변과 연결 지은 것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7월 7일 발생했더라면', '미국 시각으로는 아직 7월 7일이다', '역사를 잊지 말자', '역사는 돌고 돈다'는 식입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의 한 평론가가 노구교 사건을 언급하며 "어제(7일) 발생하지 않은 게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관영매체 "아베, 논란의 인물"…울먹인 중국 기자는 뭇매

중국 관영매체도 아베 전 총리의 사망에 대해 애도하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아베 전 총리 사망 직후 '아베는 중국에서 중일 관계에 대한 자신의 공헌을 망친, 논란의 인물로 여겨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 매체는 기사에서 "아베 전 총리의 피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가장 큰 정치적 사건으로, 아베 전 총리는 한때 중일 관계에 기여했지만 나중에 그 업적을 찢어버렸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일제 침략 역사 부정 등 아베 전 총리의 반중국 행보를 열거했습니다. 지난해 12월 "타이완의 비상사태는 일본의 비상사태"라고 한 아베 전 총리의 발언을 언급하면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도발했다고 전했습니다. 불의의 사건으로 명을 달리한 외국 최고위급 인사에 대한 기사로는 보기 드문, 냉정하기 그지없는 기사입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8일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진과 함께 '아베는 중국에서 논란의 인물로 여겨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중국 기자가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감정적으로 보도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중국 매체 펑파이의 일본 특파원은 아베 전 총리 피격 직후 현지에서 소식을 전하면서 아베 전 총리의 긍정적인 대중국 업적을 소개했습니다. 와중에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본 중국 네티즌들은 '기자가 일본인이냐', '당신의 눈물을 보고 14억 중국인은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역사 공부를 더 하라'고 맹공을 가했습니다. 해당 특파원은 결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프로답지 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펑파이의 일본 특파원은 아베 전 총리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울먹였다가 비난을 받고 사과했다.

시진핑, 아베 사망 다음 날 높은 수준의 조의 표해

반면 중국 지도부는 높은 수준의 조의를 표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9일 기시다 일본 총리에게 개인 명의로 조전을 보냈습니다. "아베 전 총리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아베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중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유익한 공헌을 했다"고 썼습니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시 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아베 전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에게도 조전을 보냈고, 중국 권력 서열 2인자인 리커창 총리도 기시다 총리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조전은 다른 나라 정상들의 조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늦었습니다.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지 하루 뒤에 보낸 것입니다. 이미 아베 전 총리에 대한 관영매체의 부정적인 평가가 보도된 이후였고, 네티즌들의 위와 같은 반응이 나온 뒤였습니다. 계산된 것일 수 있습니다. 미중 갈등 속 친미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일본에 불편한 심기를 먼저 보여준 다음, 일본과의 관계 관리에 나선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관영매체나 네티즌들의 반응이 과하다 싶어 조의 수준을 조정해 수습에 나섰을 수도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일본은 더 보수화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일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고인의 불행한 죽음마저 정치적으로 소비할 경우 국제적인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앞서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아베 전 총리 피격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해선 평론하지 않겠다"며 "이번 사건이 중일 관계와 연관돼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시진핑 주석이 오랫동안 일궈온 자국의 민족주의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외교적 예의를 유지해 미묘한 균형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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