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피살, 일 극우 세력 자극할까..'2·26사건' 떠올리는 이들도

박은하 기자 2022. 7. 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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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 이후 빈번한 정치인 암살
신념 아닌 원한에 의한 암살 차이점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를 하던 중 한 남성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아베 전 총리는 피격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 도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사진은 2012년 12월 26일 총리실에서 첫 기자회견을 하는 아베 전 총리의 모습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살해당한 일곱 번째 총리이다. 일본 현대사에서 총리 암살 사건은 정당정치가 붕괴하고 군국주의가 세를 떨치는 계기가 됐다.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 역시 극우세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이 전해지자 일본 정치인들은 애도의 목소리와 함께 ‘민주주의’를 거론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는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며 9일 선거유세를 재개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도 이날 후쿠시마시에서 열린 거리 연설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테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간신을 참한다’…민주주의 위협한 암살 전통

메이지 유신 이후 최근까지 일본에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습격과 암살 사건은 여러 건 일어났다. 수백 건이라는 집계도 있다. 대부분 우익 세력이나 군부가 저질렀으며 특히 민주주의에 친화적인 총리나 거물 정치인이 대상이 됐다. 메이지유신의 주역 오오쿠보 도시미치부터 1878년 살해당했다. 일본 최초의 평민 출신 총리이자 식민지 조선의 문화통치에도 영향을 미친 하라 다카시 총리는 1921년 극우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는 1930년 영국, 미국과 해군 군축조약에 합의했다 천황의 군 통수권을 침해했다며 도쿄역에서 우익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박훈 서울대 교수는 “총리 암살은 역설적으로 일본에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빈발했다”며 “대의를 위한 참간(斬奸·간신을 베는 것)은 멋있는 것이라는 사무라이 문화의 미학적 감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거로 뽑힌 정치 지도자를 ‘정당한 지배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천황’과 같은 초월적인 대의가 존재하고 이 대의를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감각이 근대 일본에서 거물 정치인을 상대로 한 암살이 빈번해진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전전 총리 암살은 일본의 정국을 급변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일본 해군 위관급 장교들이 1932년 현직 총리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살해한 ‘5·15 사건’은 정당정치를 무너뜨린 계기로 평가받는다. ‘5·15 사건’의 영향을 받아 육군 청년 장교들은 1936년 ‘2·26 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입헌군주정을 벗어나 천황이 친히 일본을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황도파 장교들이 병력 1483명을 동원해 일으킨 쿠데타이다. 사이토 마코토 전 총리, 다카하시 고레키요 전 총리가 이 사건으로 이 살해당했다.

쿠데타는 진압됐지만 이 사건은 내각을 완전히 위축시켜 군부가 중심이 돼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본 군국주의화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1909년 일본의 침략에 반발해 일어난 안중근 의사의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암살도 일본에서는 식민지배에 대한 더 강경한 목소리가 커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전후에도 여러 정치인이 암살이나 습격을 당했다. 아사누마 이네지로 사회당 위원장이 1960년 도쿄에서 미·일 안보협정 연설 중 우익 청년의 칼에 찔려 숨졌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도 같은 해 관저에서 습격을 당했다. 1990년에는 니와 효스케 전 노동부 장관이 육상자위대 기념행사에서 정신분열증을 가진 괴한에게 살해당했다. 1975년에는 미키 다케오 전 총리, 1994년에는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가 현직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암살 위기를 겪었다.

21세기에도 습격을 당해 사망한 정치인이 계속 나왔다. 정경유착 문제에 집중해 의정활동을 벌여 왔던 이시이 고키 민주당 중의원은 2002년 자택에서 나와 차를 타려던 순간 우익단체의 칼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숨졌다. 이토 잇초 나가사키 시장도 2007년 야쿠자의 공격을 받아 숨져 일본에서 총기규제가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그의 전임인 모토시마 히토시 시장은 1988년 시의회에서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2년 뒤 테러를 당했다.

다만 전후에는 이 같은 암살 및 암살 시도가 일어나도 정국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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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원한 암살 차이점에도 경계 목소리

아베 전 총리 살해는 정치 신념이 바탕이 된 암살이 아닌, 종교 단체 관련한 개인사적 원한이 동기가 된 범행으로 추정된다. 이 점에서 과거 우익 청년이 ‘참간’을 내세우며 저지른 정치인 암살과 다르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극우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자민당 내 우파를 대변하는 아베 전 총리는 역설적으로 극우 세력의 욕구를 통제해가며 일본의 우경화를 추진했다는 평가도 있다. 아베 총리 시절 진행된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에도 강제 동원된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는 불만을 품고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가 개헌을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는다며 불만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극우의 열망을 대변하면서도 통제하는 역할을 했던 아베 전 총리의 ‘빈 자리’가 향후 극우의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남 교수는 아베 전 총리의 피살이 곧바로 극우의 결집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불확실하며 “범행 동기나 용의자에 대한 정보가 더 알려져야 영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념적 배경과 무괂게 극단적 행동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나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을 애도하는 목소리가 다수이지만 인터넷 일각에서는 야마가미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치야마 유 도쿄대 교수는 “한때 ‘세계 최고 일본’이라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일본은 태어났을 때부터 하강하는 나라이며 코로나19 불안에 물가고도 더해져 답답하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정치인들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선거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과격한 수단에 호소하는 흐름이 나타나면 위험하다”며 주간 플래시에 말했다.

미쿠시야 다카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2·26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일본의 의회 민주주의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완벽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테러리즘이 일어나기 어려운 나라를 만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성과였다”며 “오랫동안 총리를 맡은 정치인이 총격 살해된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의회 민주주의의 실적을 평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결의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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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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