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한파에 떠는데..수탁 거부에 벤처펀드 결성 차질

고석용 기자 2022. 7. 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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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게티이미지뱅크

벤처투자시장 위축으로 스타트업들 사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자금 실탄을 공급해줄 벤처투자업계는 금융권의 벤처펀드(벤처투자조합·개인투자조합) 수탁 거부로 펀드 결성에 차질을 빚고 있다. 벤처캐피탈(VC)과 액셀러레이터의 벤처펀드 결성이 차질을 빚으면서 스타트업의 자금난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0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소형 벤처캐피탈과 액셀러레이터들은 펀드 결성을 위해 금융기관 5곳 이상을 전전하고 있다. 현행 벤처투자법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펀드 결성 후 자산관리를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위탁하도록 하고 있는데 금융기관이 수탁업무를 꺼리고 있어서다.

한 벤처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민간에서 100억원을 출자받아 펀드를 수탁하려고 하니 은행 5곳이 모태펀드 출자가 없다는 핑계로 이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도 "해외투자가 있으면 업무가 더 늘어나서 200억원 이상 규모로 결성하라고 했다"며 "투자금을 모으고도 펀드를 결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1분기 기준 벤처투자조합은 총 93개(2조5668억원)가 결성되면서 역대 최대실적을 기록했다. 벤처투자시장이 커지면서 결성된 펀드도 늘었지만 업계는 금융권의 수탁 거부로 펀드 결성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공성현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사무국장은 "양적으로 보면 성과지만 현장을 뜯어보면 상황이 다르다"며 "업력이 짧거나 금융그룹과 계열 관계가 아닌 중소형 액셀러레이터나 VC들은 투자금을 확보하고도 펀드를 결성하지 못하는 곳이 늘고있다"고 말했다. 벤처펀드 수탁만 제대로 이뤄졌으면 더 많은 펀드가 결성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시민단체 회원들과 옵티머스펀드 피해자들이 지난해 NH농협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사진=뉴스1

금융기관이 수탁을 거절하는 이유는 높은 리스크와 마진 때문이다. 2020년 발생한 옵티머스펀드, 라임펀드 등 사모펀드들의 불법운용에 수탁사의 관리책임이 불거지면서 펀드 수탁은 리스크가 큰 업무로 평가받고 있다. 수익성도 높지 않다. 통상 벤처펀드의 수탁수수료율은 연간 펀드 설정액의 0.05% 수준으로 100억원 펀드를 수탁할 때 수익은 연 500만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기관 입장에선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데 리스크만 크다고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펀드 쪼개기' 현상도 발생한다. 벤처펀드 중 개인투자조합은 20억원 미만에 수탁의무가 없다는 점을 활용해 100억원의 펀드를 5개로 쪼개는 방식이다. 한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은행 담당자가 수탁을 거절하면서 이 방법을 직접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펀드가 쪼개질 경우 기업당 투자규모가 줄어들 수 있고, 결성·운용·청산 등 펀드 운영비용도 높아진다.

스타트업·벤처투자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시중은행 등 수탁사들을 찾아가 수탁활성화를 부탁하고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기부는 액셀러레이터협회, 벤처캐피탈협회 등 투자사들과 일부 금융기관을 연결해 수탁업무를 몰아주고 수수료율을 올려 수익성을 보장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월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사진=뉴시스

벤처펀드에 한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공공기관을 수탁사로 지정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수탁업무는 금융기관만 가능한데, 중진공은 금융기관이 아니어서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관리·감독의 한계 등으로 수탁기관 확대에 긍정적이지 않다. 해당 문제는 범정부 규제혁신TF 등에서도 논의될 것으로 전해진다.

펀드 결성이 차질을 빚으면서 스타트업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벤처투자 자체가 위축되는 분위기여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스타트업 투자유치액은 7577억원으로 전년동월(1조1452억원)보다 34.7% 감소했다. 벤처투자 실탄 격인 펀드까지 결성이 어려워지면 자금 확보가 더욱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공성현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사무국장은 "기업공개(IPO) 철회가 이어지고 후기투자는 꺼리는 분위기에서 초기투자라도 적극적으로 공급돼야 스타트업들 생태계에 돈이 돌 것"이라며 "초기투자 활성화 분위기를 꺼트리지 않고 스타트업들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기 위해서라도 수탁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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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용 기자 gohsy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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