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게 없어' 게임하던 아이들 "스마트폰 대신 음악·운동해요"
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 23만명.."어른이 게임 대체할 즐거움을 줘야"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코로나가 터지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할 게 없으니까 스마트폰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17세 고모군)
"미술이 좋은데 도구가 비싸서 못하니까 그냥 핸드폰을 만지게 됐어요."(14세 강모군)
"집이 시골이라 주변에 친구들이 없으니까 할 게 없어서요."(14세 남모군)
최근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인터넷 중독 치유 합숙소인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이하 드림마을)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에 과의존하게 된 이유를 묻자 입을 모아 '달리 할 게 없어서'라고 답했다.
올해 4월 기준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 하나 이상에서 과의존 위험이 있는 것으로 진단된 청소년은 23만5천687명으로, 조사 참여자의 18.5%에 달한다.
전국 유일 합숙형 스마트폰 대신 악기·운동에 열중
전북 무주군 소재 드림마을은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디톡스' 상태에서도 즐겁게 놀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짧게는 7박 8일, 길게는 25박 26일간 스마트폰·인터넷과 격리된 환경에서 합숙하며 집단상담, 동아리 활동, 체육 활동을 한다.
드림마을에 따르면 2014년 8월 개원한 이후 2019년 12월까지 6년간 매년 600여 명이 입소했다. 참가 청소년 대상 조사 결과 평균적으로 '인터넷 중독 지수'는 34점이었다가 추후 29점으로 떨어졌고, '스마트폰 중독 지수'도 사전 35점에서 추후 30점으로 개선됐다.
참여 청소년들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프로그램은 집단상담이라고 한다.
점심시간 직전 참관한 집단상담에서는 노란 조끼를 입은 청소년 9명이 자신의 '인터넷 과다사용 타임라인'을 공유하고 있었다. 가로축에는 나이, 세로축에는 인터넷 사용 시간을 표기해 최근 몇 년간 자신의 인터넷 사용 패턴을 종이에 그리고 그 내용을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식이다.
드림마을 지도사는 청소년의 발표 중간중간 "그래서 피파랑 롤을 많이 하게 된 거야?", "현금을 써야 해서 게임을 하는 시간이 줄었구나"라며 호응했고, 자리에 앉은 청소년들은 대부분 딴짓하지 않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소년들의 주의를 인터넷 바깥으로 돌리기 위한 음악과 홈트레이닝 동아리 활동도 활성화돼있다.
집단활동실에서는 청소년 5명과 멘토 3명 등이 아이유의 '가을아침' 노래를 기타와 칼림바로 연주하고 있었고, 다목적 강당에서는 청소년과 멘토 등 14명이 '핸드클랩' 노래에 맞춰 손발을 마주치는 율동을 하고 있었다.
지도사가 "친구들 달릴 준비 됐어"라고 묻자 청소년들이 "예"하고 화답했고, 율동은 약 4분간 이어졌다.
"나가면 뭐 하고 싶어요?" 묻자…게임 대신 "명상·그림그리기"
12일(2주)짜리 프로그램에서 8일차에 접어든 청소년들을 동아리 활동과 점심 식사 이후에 만났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온 이모(14)군은 "평소에 공부, 축구, 게임밖에 안 하니까 스트레스를 풀 수단이 축구와 게임밖에 없다. 그래서 그 두 개를 계속했다"고 했다.
게임 아이템을 사는 데 세뱃돈을 털어 450만원까지 쓴 적이 있다는 박모(14)군은 "게임에서 친구들한테 격려랑 칭찬을 받으니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박군은 드림마을 입소 전에는 게임에서 보너스를 받기 위해 오전 5시에 기상할 정도로 게임에 '진심'이었다.
박군은 이제 "드림마을에서 배운 명상을 집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지겹고 움직이고 싶었는데, 저번에는 명상하고 눈을 떠보니 5분이 지나있어서 신기했던 거 같다"고 했다. 게임 없이도 시간을 보낼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드림마을 관계자들은 입소 당일에도 도저히 스마트폰과 떨어져 지낼 수 없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청소년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가 만난 청소년들은 스스로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이군은 "시간표를 보니까 재밌을 것 같아서 오히려 오고 싶었다. 에버랜드 가는 일정도 있었는데 그건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다"며 아쉬워했다.
무주에서 온 고모(17)군은 평일에는 하루에 6시간, 휴일에는 10시간씩 스마트폰을 사용했었다고 한다. 고군은 스마트폰 과의존 검사를 받고 학년에서 유일하게 '고위험' 진단을 받아 드림마을에 왔다.
고군은 "(드림마을 입소)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면서도 "전에는 휴대폰 없이 못 살았는데, 이제 없이도 살만하네 싶어서 나가더라도 스마트폰 사용을 좀 줄여볼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참여 청소년들이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은 예상과 달리 '게임', '유튜브 시청'가 아니었다.
원래 미술을 좋아했다는 강모(14)군은 "캠프 끝나면 부모님이 미술학원을 보내주기로 했다. 드림마을에서 해본 나노블록도 사서 집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군은 "드림마을에서 전주 서바이벌체험장에 갔는데, 돌아가서 학교 친구들이랑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군은 "핸드폰을 많이 하지 않고 가족들이랑 놀러 다니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고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부모 교육…아이들 변화 뿌듯해"
드림마을 관계자, 대학(원)생 멘토들은 청소년들의 인터넷 과의존을 해결하려면 결국 집에 돌아간 후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의 변화도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드림마을은 부모양육태도검사, 부모 대상 비대면 교육과 개별 전화상담으로 청소년들의 변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4년째 멘토로 활동해온 유석민(28)씨는 부모님들이 '게임 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청소년들이 '게임 아니면 공부'라는 이분법에 갇히게 됐다고 했다. 유씨는 "게임, 스마트폰, 인터넷을 줄이려면 그만큼의 대체재가 필요한데 그걸 제공할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멘토들이 가장 힘든 순간은 집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달랠 때다. 실제로 탈출을 시도하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유씨는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안 통하니까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걸어서 10분 거리까지 도망간 아이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멘토 김민성(26)씨는 "세상의 모든 아이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드림마을 아이들은 제가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뿌듯하다"며 청소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씨는 "어떤 청소년은 드림마을 수료 후 집에 가다가 말고 '놔두고 온 게 있다'더니 '멘토선생님을 놔두고 갔다. 멘토선생님을 챙겨 갈 거다'라고 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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