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불능", "공화당과 결탁".. 바이든의 대법원 때리기

김태훈 2022. 7. 10. 10: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낙태권 판결 이후 보수 대법관 겨냥 비난 쏟아내
'공화당과 보수 대법관은 한 몸' 이미지 각인시켜
11월 중간선거 때 민주당 지지표 늘리려는 전략
일각선 "도 넘어.. 사법부 위협은 삼권분립 침해"
지난 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 등 백악관 참모진과 함께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여성의 낙태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연방정부 차원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SNS 캡처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판결을 내놓은 뒤 대법원을 향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오는 11월 연방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보수 우위의 대법원을 개혁하려면 공화당 아닌 민주당 후보한테 표를 줘야 한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삼권분립을 보장한 미 헌법을 감안할 때 지나친 대법원 때리기는 자칫 ‘사법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져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헌법은 모든 미국인이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며 “이는 출산 및 육아, 결혼, 가족 등 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관 다수가 무슨 말로 포장하든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의 번복은 역사적 결단이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이 1973년 내놓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간주해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거의 반세기 만인 지난달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할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으로 볼 수 없다”며 이 판례를 깼다. 그러면서 “미국의 50개주(州)는 저마다 여성의 낙태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후 미국 여러 주에서 낙태를 제한 또는 금지하는 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에는 “우리는 통제 불능의 대법원이 우리의 자유와 개인의 자율성을 빼앗기 위해 극단적 의제를 밀어붙이는 공화당 인사들과 결탁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으며, 또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통제불능(out of control)의 대법원’, ‘대법원과 공화당의 결탁(conjunction)’ 등 발언 수위가 상당히 세다. 이를 두고 미 정가와 언론계에선 “대통령이 대법원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려는 것처럼 들린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재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보수 성향의 대법관 6명, 진보 성향의 대법관 3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진보 대법관 3명은 민주당 대통령(버락 오바마 2명, 바이든 1명)에 의해 임명됐다. 반면 보수 대법관 6명은 전부 공화당 대통령(조지 H W 부시 1명, 조지 W 부시 2명, 도널드 트럼프 3명)이 지명했다. 이 6명 가운데 5명이 최근 ‘로 대 웨이드’ 판례 변경에 찬성표를 던졌다.
9명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낙태에 반대한 5인. 왼쪽부터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알리토,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미 연방대법원 홈페이지
결국 바이든 대통령의 대법원 때리기는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 민주당을 상·하원 모두의 다수당으로 만들어 달라는 호소가 깔려 있다는 게 미 정가 및 언론의 분석이다. 낙태에 반대하는 보수 대법관과 공화당을 사실상 ‘한통속’이라고 몰아붙인 뒤 “그러니까 민주당에 표를 줘야 한다”며 대중을 설득하는 전략인 셈이다.
당장 보수 진영에선 사법권 침해 논란을 정치 쟁점으로 삼을 태세다. 가뜩이나 대법원의 낙태권 판결 이후 보수 대법관들을 향한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에 100만명 넘는 인원이 동의하는가 하면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지난 7일 식사 도중 항의 시위대가 식당 앞으로 몰려들자 황급히 밖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판결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특정 대법관을 공격하는 행위는 사법권 독립을 위축시켜 결국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게 보수 진영의 시선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 제한 판결을 내린 지난 6월 24일 대법원 청사 앞에 낙태 찬반 시위대가 나란히 몰려든 모습. 워싱턴=AP연합뉴스
당장 8일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사법부를 대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 그리고 낙태에 반대하는 대법관들을 겨냥한 시위대의 무리한 행동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법원에 관한 대통령의 언급이 과하다’는 지적에 카린 장-피에르 대변인은 “결국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대법관들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행정부는 대법관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