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러시아 화력 전시장 우크라이나 전쟁.. 韓, 세계 시장 휩쓸 준비해야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2022. 7. 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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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A2 자주포, K239 다연장로켓 등 우수 국산 무기 즐비
한화디펜스가 ‘유로사토리 2022’에서 선보인 K9A2 자주포 모형. [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포병 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다. 옛 소련 시절부터 포병 전력에 열광했다. 소련의 영향을 받은 옛 공산권 국가들도 포병 전력을 상당히 중시한다. 여기엔 "포병은 전쟁의 신(神)"이라며 포병 전력 육성과 전술 개발을 중시하던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교시가 큰 영향을 끼쳤다.

소련 작전기동군의 그림자

이는 곧 소련군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시킨 군사 전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력 투사에 대한 미군과 소련군의 인식은 전혀 달랐다. 압도적 공군력을 보유한 미군은 언제 어디서든 무전기로 부르면 아군 전투기가 잽싸게 날아와 적진을 초토화한다는 경험과 믿음이 있었다. 반면 공군력이 취약한 소련군은 어떻게든 지상군의 힘으로 적과 싸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소련군 역시 항공폭탄 한 발이 수십 문의 야포가 날린 포탄보다 정확하고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군을 믿지 못한 이유는 필요할 때 반드시 그들이 와준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탈린도 참모들과 회의에서 "항공기는 기상 영향을 크게 받지만 포병은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화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런 배경하에서 냉전 시절 소련군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연합군을 제압하고자 '작전기동군'(Operational Maneuver Group·OMG)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OMG 작전 수행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포병이다. 나토군 방어선 돌파는 기갑부대가 하지만, 포병과 대전차화기로 중무장한 적 방어선을 무력화해 기갑부대가 돌파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은 포병이기 때문이다. 이에 소련군은 각 제대에 촘촘하게 포병을 배치해 기동부대와 한 몸처럼 움직이게 했다. 기동부대가 필요할 때 즉각 화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발전시킨 것이다.

㈜한화가 개발한 K239 천무 다연장로켓. [동아DB]
가령 냉전 시기 소련군 정규 전차사단은 2개 전차연대와 2개 기계화보병연대로 구성됐다. 전차사단은 사단 직할 포병연대에 152㎜ 자주포 54문과 122㎜ 다연장로켓 18문을 편성했다. 각 전차연대와 기계화보병연대에도 122㎜ 자주포를 18문씩 갖춘 포병대대를 별도로 뒀고, 대대마다 120㎜ 박격포와 107㎜ 다연장로켓을 배치했다. 같은 시기 미 육군 정규사단의 포병 전력이 자주포 또는 견인포 54문 수준이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소련은 사단별로 편성된 포병 전력은 물론, 군단과 집단군이 운용하는 별도의 포병여단과 포병군단도 따로 두고 있었다. 이처럼 무지막지한 포병 전력의 임무는 개전 초기 기동부대가 돌격하기 전 어마어마한 화력을 쏟아부어 적 방어선을 초토화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토도 소련군 포병 전력에 대응한 무기체계와 전술을 개발했다. 효과적 대응책이 나왔을 무렵 소련이 붕괴하면서 창과 방패의 싸움은 끝나는 듯 보였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포병 자산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작전 개념과 전술에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걸프전 이후 서방 세계에 이른바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RMA)이 유행하면서 군 구조와 전술, 작전 개념 전반이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소련 시대 유산을 유지하기 급급해 새로운 포병무기나 전술 개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구식 포병 전력

이 때문에 현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 포병 전력의 90% 이상은 소련 시절 생산된 구식이다. 러시아군에 맞선 우크라이나군의 상황은 더 나빴다. 우크라이나군 포병 자산은 모두 소련 시절 생산된 모델이다. 소련 붕괴 이후 30여 년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장비가 대부분이라 우크라이나군 포병은 전쟁 초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쫓겨 다니기 바빴다. 그 탓에 러시아군은 30~40년 넘은 낡은 곡사포와 다연장로켓으로도 충분히 우크라이나군을 몰아세울 수 있었다.
폴란드가 한국 K9 자주포 차체에 영국제 포탑을 결합해 만든 자주포 ‘크랩’. [사진 제공 · 폴란드 HSW]
하지만 러시아 포병의 압도적 우위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제 포병 무기를 전선에 배치하면서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포병 전력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충격은 폴란드가 제공한 '크랩(Krab)' 자주포의 위력이었다. 한국이 개발한 K9 자주포 차체에 영국제 AS-90M 포탑을 결합한 이 자주포는 돈바스 전선에 투입되자마자 러시아군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이번 전쟁에서 기존 화력전은 러시아가 먼저 우크라이나군 진지를 포격하면 우크라이나군이 대포병레이더나 무인정찰기로 적 위치를 찾아 아군 포병에 포격을 요청하는 식이었다. 우크라이나군 포병이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은 대부분 견인포나 구식 자주포였다. 이동 중인 견인포가 사격진지를 선정해 방열하고 첫 포탄을 날리는 데 빨라도 10분 이상 걸렸다. 구식 자주포 역시 사격제원 계산과 초탄 발사까지 모든 과정이 수동이기에 러시아군을 향해 날린 대응탄이 목표에 떨어질 때쯤 러시아군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경우가 적잖았다.

그러나 크랩 자주포는 달랐다. 이 자주포는 고속으로 달리다 무선으로 사격 명령을 받으면 즉시 정차해 자동으로 사격제원을 계산하고 방열한다. 장전장치도 반(半)자동화돼 정차 후 초탄 발사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1분 미만이다. 급속사격하면 1분에 포탄을 최대 6발 퍼부을 수도 있다. 사격 임무가 끝나면 곧바로 급가속해 도망갈 수 있기에 적의 대포병 사격에 당할 위험도 적다. 심지어 사거리도 러시아군 자주포보다 훨씬 길다. 적 포병 사정권 밖 안전한 곳에서 포탄을 쏘고 도망가기를 반복하는 이른바 슛 앤드 스쿠트(Shoot & Scoot)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크랩이 배치된 6월 초부터 돈바스 전선에서 러시아군 포병 피해는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강철비가 진지 초토화"

미국의 M142 ‘하이마스’ 다연장로켓. [뉴시스]
러시아군이 받은 두 번째 충격은 미국이 제공한 M142 '하이마스'(HIMARS·High Mobility Artillery Rocket System)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군에 18문 배치된 크랩 자주포와 달리 하이마스는 단 4문만 배치됐다. 다만 그 충격파는 크랩 못지않았다. 다연장로켓 무기인 하이마스의 파괴력과 사정거리는 크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길기 때문이다. 하이마스는 미군의 표준 5t 트럭인 오시코시 FMTV 차체에 227㎜ 다연장로켓 6연장 모듈 발사기를 얹은 모델이다. 이름 그대로 고속으로 움직이면서 치고 빠지는 전술에 특화된 다연장로켓 무기다. 도로에서 85㎞/h 빠른 속도로 달리다 사격 명령이 떨어지면 1분 이내에 사격 준비를 마치고 6발의 로켓탄을 모두 쏟아붓는다. 필요한 경우 3분 이내에 6발을 재장전하고 추가 사격을 퍼부을 수 있다.

여기서 발사되는 227㎜ 로켓 사거리는 구형탄은 32㎞, 개량형탄은 45㎞다. GPS(위성항법시스템) 유도 기능이 추가된 GMLRS 계열탄은 70~90㎞, 최신 GMLRS-ER 버전은 150㎞까지 초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GMLRS 로켓탄 1발엔 적 병사뿐 아니라 장갑차도 파괴할 수 있는 이중목적고폭탄 M85 자탄이 404발 탑재된다. 걸프전 당시 GMLRS 공격을 당한 이라크군 부상병 포로들은 "하늘에서 강철비가 내려와 진지를 초토화했다"며 두려워했다. 하이마스 역시 러시아군 포병의 사정권 밖에서 일반 자주포보다 훨씬 강력하고 정밀한 로켓탄을 퍼붓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러시아군 처지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크랩이나 하이마스로 구사하는 전술과 능력은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일 것이다. 러시아군 포병은 느릿느릿 움직이다 사격 명령이 내려오면 빨라야 10분 후에나 사정거리 10~30㎞에 초탄을 쏘는 존재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이 지원받은 서방제 무기는 냉전 말 소련 포병을 제압하고자 만들어져 엄청난 기동성과 화력, 정밀도를 갖췄다.

우리는 걸프전 당시 인상적 활약을 보인 패트리엇 미사일이나 M1 에이브럼스 전차, MLRS 등이 종전 후 세계 방산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린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크랩과 하이마스 등 무기들의 활약상에 구매 의사를 타진하는 국가가 점점 늘고 있다. 한국은 이보다 성능은 우수하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생산 중인 K9A1 자주포는 화력과 방어력, 기동력 모든 면에서 크랩을 능가하는 현존 최강 자주포다. 그 개량형 K9A2 개발이 현재 마무리 단계로, 영국 자주포 획득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완전 자동화된 무인 포탑을 적용해 사거리, 발사 속도, 정밀도 등에서 세계 최정상급 성능을 갖출 예정이다. 2분 안에 최대 54㎞ 거리 표적에 포탄 10발을 퍼부을 수 있어 크랩보다 한 수 위다.

군사외교 및 활발한 판촉전 벌여야

K239 천무 다연장로켓도 훌륭한 수출 상품이다. 천무는 하이마스와 대등한 기동력을 갖췄으면서도 방어력은 더 우수하고 화력은 2배 이상이다. 사격 명령을 받으면 16초 이내에 초탄 발사가 가능하다. 발사 로켓 수도 12발로 하이마스의 2배다. 유도 로켓을 사용하면 80㎞ 밖 표적을 초정밀 타격할 수 있다. 하이마스를 운용하다 천무를 도입한 아랍에미리트(UAE)군도 성능에 대단히 만족한다고 한다. 수요가 있는 시장이 존재하고 경쟁력을 갖춘 제품까지 소유하고 있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세일즈'다. 폴란드 한 나라에서만 최소 10조 원 이상 방산 수출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정부와 국내 업계가 힘을 모아 유럽은 물론, 세계 각국 군대를 대상으로 더 활발한 군사외교 및 판촉전을 벌여야 하는 이유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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