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초등생 숨지게 한 신호위반 굴착기 '솜방망이' 처벌..도대체 왜?

이가영 기자 2022. 7. 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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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합니다.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하던 굴착기에 초등학생이 치어 숨진 경기도 평택시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 8일 오후 학생과 학부모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평택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굴착기가 초등학생 2명을 덮쳐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보행신호에 따라 정상적으로 횡단보도를 건넜으나 굴착기 기사 A씨가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A씨는 사고 후 별다른 조치 없이 3㎞가량 도주한 혐의도 받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인 스쿨존에서 사고가 났지만 일명 ‘민식이법’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민식이법’에 대한 설명 부탁합니다

‘민식이법’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13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법규를 준수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할 의무를 위반해 13세 미만인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했습니다.

◇스쿨존에서 신호위반으로 어린이가 사망했는데, 민식이법 적용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민식이법이 적용되려면 ‘자동차’가 일으킨 사고여야 합니다. 법에서 말하는 자동차 범위에는 굴착기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식이법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하던 굴착기에 초등학생이 치어 숨진 경기도 평택시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 8일 오후 학부모와 학생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 굴착기 기사한테 ‘뺑소니’로 가중처벌은 할 수 있는 거죠?

안타깝지만 안 됩니다. 굴착기 기사는 “사고를 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계속 주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하는데요. 이것과는 별개로 소위 ‘뺑소니’ 운전으로 가중처벌 받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역시 법이 처벌할 수 없게 규정해 놓았습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3은 도주 운전자를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자가 피해자를 구호(救護)하는 등 조치하지 않고 도주해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습니다.

즉 자동차 운전자가 소위 뺑소니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데, 역시 굴착기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지난 5월 2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 굴착기가 앞차와의 추돌을 피하려고 급정거해 뒤집어질 뻔한 모습이 담겼다. /온라인커뮤니티 보배드림

◇바퀴가 달려 도로에서 움직이면 자동차 아닌가요?

우리 법은 ‘차’와 ‘자동차’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굴착기는 ‘차’에 포함됩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는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범한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합니다.

또 도로교통법 제54조에 따르면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해 사람을 사상한 경우에 그 차의 운전자는 즉시 정차해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자동차가 아닌 ‘차’에 대한 법률을 적용해 굴착기 기사를 처벌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스쿨존에서 파란불을 믿고 길을 건넌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데, 가중처벌 규정은 하나도 적용할 수 없어 처벌 범위가 최하 1개월에서 최대 7년 6개월이라니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합니다.

특가법상 도주 후 미조치와 민식이법을 적용하면 최대 무기 또는 45년, 최하 징역 5년 범위에서 처벌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대체 법이 왜 이런 건가요?

도로교통법에서 ‘자동차’ 범위에 덤프트럭, 아스팔트살포기, 콘크리트믹서트럭, 콘크리트펌프 등의 건설기계는 포함됩니다. 그 이유는 덤프트럭 등은 도로를 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굴착기가 자동차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굴착기는 도로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굴착기는 다른 자동차에 실려 건설현장에 가야 합니다. 굴착기에 달린 바퀴는 도로 위를 달리라고 붙어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굴착기 등이 8차선 도로 위에서 출퇴근 시간에 달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국가는 하루속히 입법의 공백을 메울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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