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쪽지로, 외출은 밤에 무장하고" 어느날 내 딸이 숨어버렸다

김지현 기자, 기성훈 기자 2022. 7.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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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외톨이 선택한 청년들(상)

[편집자주] 취업난과 가정불화, 따돌림 등 다양한 이유로 방문을 걸어 잠그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고립·은둔청년)'가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늦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고립·은둔청년을 취약청년으로 분류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고립·은둔청년의 현황을 살펴보고,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삼수→반수→자퇴…"나만 초라해" 4평 방 안에 나를 가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어요. 손가락질 받는 것 같았고…"

올해 25살(1997년생)이 된 최모씨에게 지난 4년은 깜깜한 상자 속에 갇혀버린 시간과 같았다. 4평이 채 되지 않는 방 안에서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가족과 같이 지냈지만, 일주일에 부모님이나 오빠와 대화하는 시간은 채 10분을 넘지 않았다. 최씨는 "점심, 저녁을 물어볼 때 정도나 얘기를 했던 것 같다"며 "한창 심했을 땐 그 대화조차 하기 어려워 쪽지로 엄마에게 대답했던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최씨가 유일하게 밖에 나오는 시간은 해가 진 늦은 밤이었다. 그마저도 가족이 외출한 날을 골랐다. 그는 "검은 볼캡과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편의점에 간식을 사러가는 게 거의 유일한 외출이었다"며 "방에서는 누워 있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게임을 했다"고 말했다. 움직이지 않으니 입맛이 있을 리도 없었다.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먹었다.

최씨와 같은 청년을 우리는 '은둔형 외톨이'라 분류한다. 최근 몇 년 새 10~20대 청소년·청년 중 고립을 자처한 이들이 늘며 '고립청년', '은둔청년'이라는 단어도 생겼다. 통상 현장에서는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으로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을 '고립청년',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방 안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는 이들을 '은둔청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확히 몇 명의 고립·은둔청년이 있는지 통계조차 없는게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은둔의 계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따돌림'이나 '학업·취업 실패'를 겪은 사례가 많다. 최씨의 경우는 '대입실패'였다. 첫 실패는 18살이던 고3, 두 번째 실패는 19살이던 재수 시절, 세 번째는 대학을 다니며 '삼반수(삼수+반수)'를 하던 때였다.

최씨는 "오빠도 공부를 잘한 데다 부모님의 기대가 컸었다"며 "그걸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실패가 반복되며 무기력함에 사로잡혔다"고 한숨을 쉬었다. 삼반수에 실패한 그는 6개월 정도 학교를 다니다 휴학하고, 결국 자퇴를 했다.

방 밖으로 나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년 전 부모님의 지인이 소개한 상담센터에 가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최씨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남들은 대학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는데 나만 치료를 하는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 가기가 싫었다"고 했다.

다행히 지난해 말부터 최씨는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 상담센터를 찾았고,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도 병행했다. 하지만 그를 방 밖으로 밀어낸 가장 큰 힘은 엄마의 이해와 칭찬이었다. 최씨는 "무작정 대화를 하기보다 성취감을 느끼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게 더 중요했다"고 먈했다.

전문가들은 "고립청년 문제는 더는 개인의 몫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사단법인 파이나다운청년들 대표)는 "젊은 친구들이 치열한 경쟁에 놓여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 힘들게 만든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며 "은둔청년들을 생산연령이 아닌 복지의 대상으로 보고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취업 등에 집중한 정책보단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 사회성을 길러주는 프로그램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따돌림 당한 아들, 집 밖을 안 나가요"…대책도 통계도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3년 전 아들이 방에 숨어버렸다는 이모씨(55). 그는 처음 아들이 3일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방에서 오래 나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며 "그게 몇 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들 A씨는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왜 그런지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학교에 찾아가니 아들이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지고 오랜 시간 따돌림을 당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씨는 "아들에게 전학도 권유했지만, 거기서도 다 자기를 싫어할 거라고만 했다"며 "두 달이 지나서야 아들이 '은둔형 외톨이' 증세가 있단 걸 인식했다"고 털어놨다. 고통스러운 건 A씨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가족 모두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며 "남들에게 말을 하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 사회가 만든 '고립청년'…정확한 통계 없어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이씨와 같이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립의 시간을 함께 견딘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국내에선 고립·은둔청년(이하 고립청년)에 대한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고립청년 숫자는 매년 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청년의 사회적 고립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조사대상 청년 2041명 중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돼 있다고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13.4%였다. 또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자는 16.6%에 달해 10명 중 1명 이상은 고립감을 느꼈다. 평소 잘 외출하지 않고 주로 집에만 머문다는 비율은 5.1%로 2019년(3.2%), 2020년(4.7%)보다 높아졌다. 지난해 5월 기준 통계청 청년층 인구인 879만9000명으로 추정치를 계산해보면 약 45만명 정도 고립청년인 셈이다.

관련 실태조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2019년 청년재단이 발간한 '은둔형 외톨이(고립청년) 실태조사'가 이들의 현실을 알려준다. 재단은 고립청년 47명과 고립청년의 부모 34명, 총 81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고립청년의 나이는 20~29세 사이가 80.8%로 가장 많았고, 남자(31명)가 여자(16명)보다 더 많았다.

■ "온라인 공간에서 시간 보냈다"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특히 고립청년 대부분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없거나 1~2명의 제한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응답자의 대부분이 상담센터나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약물치료 경험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식사는 대부분 2끼 이상이고 수면의 질도 양호한 편이었으나,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인터넷 게임이나 스마트폰 사용에 할애하고 있었다.

실제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고립청년들도 방 안에 숨어 지내는 동안 주로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답했다. 6년간 고립생활을 한 최모씨(30)는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고, 주로 컴퓨터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3년간 방 안에 머물렀던 박모씨(30) 역시 "잠을 자거나 게임을 했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영화를 봤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고립의 계기로 대인관계 유지의 어려움, 학교생활 부적응, 학업·취업 실패 등을 꼽았다. 2019년부터 3년째 고립청년으로 지내고 있는 김모씨(29)도 "사회생활을 하며 인간관계에서의 서투름 때문에 은둔하게 됐다"고 답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청소년 시절 따돌림을 당했거나,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청년들이 많았다.

고립기간은 1~2년이 가장 많았고, 고립 직전이나 초기에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가 있었다. 다만 5년 이상 장기화되면 깊은 절망감과 무기력함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4년부터 고립청년을 돕고 있는 김옥란 푸른고래리커버리 센터장은 "고립청년에게도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당장 잡아줄 수 있는 기관이나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 구체적인 실태조사에 맞춤형 지원 필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립·은둔청년 지원기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미술치료 활동 모습 /사진=김지현 기자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실태조사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국정과제 발표에서 가족돌봄청년, 자립준비청년과 함께 고립청년을 취약청년으로 묶고 실태 파악 및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를 돕는 전문기관 육성이 필요하다"며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간사, 사무 등 최소 필요 인력에 대한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각 복지관에도 상담서비스가 있지만,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일자리 마련이나 자격증 제공이 아닌 체육 및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김 센터장은 "신체활동 등을 하며 자연스레 타인과 교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게 좋다"고 전제한 뒤 "미술치료, 인문학 수업을 통해 완성한 성과물을 선보이는 전시회·공연도 도움이 된다"면서 "따돌림이나 잦은 실패로 낮아진 자존감을 올릴 수 있게 성취감을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고립청년은 니트(NEET·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가 없는) 청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심리적인 건강함을 보장할 수 있게 작은 부분이라도 성공 경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이 먼저 이뤄지지 않은 채 취업 위주의 지원만 이뤄진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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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flow@mt.co.kr, 기성훈 기자 ki03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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