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외교수장, 8개월여만에 '5시간 회담'.."유용·건설적"(종합)

블링컨 "中, 러 제휴-대만 향한 도발적 언행 우려"..왕이 "왕이 "美, 영토주권 수호 결의 과소평가 안돼"
양측 갈등 관리 위한 가드레일 설치 등 방안 논의..북핵 문제도 거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고 있다. 2022.07.09.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워싱턴·서울=뉴스1) 김현 특파원,김민수 기자 = 치열한 패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수장이 9일(현지시간) 8개월여만에 대면 회동을 갖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 북핵 문제 등에 대한 심도깊은 대화를 나눴다.

회동 이후 양측이 내놓은 발언을 보면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 것으로 보이지만, 양측은 "건설적인 대화였다"고 평가했다.

로이터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7~8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가 끝난 뒤인 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양자 회담에 이어 오찬을 함께 하며 5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두 장관이 대면 회담을 가진 것은 지난해 10월말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때 이후 8개월여 만이다.

블링컨 장관은 왕 부장에게 '투자·제휴·경쟁'을 원칙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직접 설명하는 한편,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데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삼았다.

블링컨 장관은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저는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간 제휴를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왕 부장과 공유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립'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과 관련, "명백한 침략자가 있고, 분명한 피해자가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삶과 생계에 대한 도전을 물론 중국과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지켜야 할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도 있다"며 "저는 이런 침략에 대해 중립적이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블링컨 장관은 "저는 중국이 중립을 시사하는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은 유엔에서 러시아를 지지했고, 러시아의 허위·과장 선전을 증폭시켰다. 돌이켜보면 러시아가 병력을 결집시키고 있을 때조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제한 없는 파트너십' 발표를 선택했다. 지난 6월13일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 통화에서 그가 그 결정을 변함없이 지지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잔혹한 침공이 있은지 4개월이 넘은 지금에도 중국은 여전히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상임이사국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심지어 (러시아와) 합동 군사훈련까지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제가 왕 부장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모두가 그 침략을 규탄하고, 러시아의 봉쇄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곡물들에 대한 접근을 허용을 요구하며, 전쟁을 끝내도록 일어서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이었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나눈 대화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자신이 러시아측과 만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 전쟁은 어느 순간 끝날 것이고, 그것은 외교를 통해 끝날 것이다. 미국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외교를 통해 충돌을 종식시킬 방법을 찾을 준비가 항상 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현재 러시아가 의미있는 외교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어떠한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또 의견 불일치 영역과 위험 관리 및 감소 방안을 논의했다며 특히 갈수록 증가하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도발적인 언행과 대만해협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미국의 깊은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홍콩의 자유 억압, 강게 노동, 티베트에서의 소수 민족과 종교적 소수자들에 대한 처우, 신장에서의 집단학살에 관해 미국의 우려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외에도 북한 핵 프로그램 문제 등 양국이 강력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역내 및 글로벌 이슈를 논의했으며, 기후위기와 식량 안보, 세계 보건, 마약류대응 등 양국이 더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중국내 억류 미국인에 대한 사례도 제기했다고 블링컨 장관은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022년 7월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김현 특파원

이에 맞서 왕 부장은 미중 관계가 틀어진 근본 원인은 미측에 잘못된 인식에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대만 문제에 있어선 미국이 영토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중국의 굳은 결의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력 경고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왕 부장은 회담에서 "미중 관계는 이전 미국 정부가 조성한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점점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같은 상황의 근본원인은 "미측의 대중 인식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에 따라 대중 정책이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왕 부장은 "미국의 대중 정책 중 일부는 자가당착과 언행이 불일치한다"면서 "이로 인해 미국이 갈수록 심해지는 '중국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이같은 '위협 팽창'을 방치하면 미국의 대중 정책은 막다른 골목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중 관계가 난국을 탈출하는 핵심은 양국 정상이 합의한 바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시 주석이 제시한 '상호존중·평화공존·상생협력 3원칙에 따라 미중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4불(不)·1무(無)의' 중요 공약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4불1무'는 신냉전, 중국의 체제 변화, 반중 동맹 강화 등을 추구하지 않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미국측이 중국 체제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만큼 중국 인민들이 선택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을 존중하고 중국의 정치제도와 대내외 정책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미측은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상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제로섬 게임을 하지 않으며 패거리를 만들어 소울타리를 만드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 부장은 특히 "미측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상 중국의 정책을 왜곡하는 것을 중단하고, 대만 문제에서 살라미 전술을 중지해야 하며, 대만 카드로 중국의 평화통일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왕 부장은 이어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엄정한 입장을 설명하면서 "미국은 반드시 언행을 삼가야 하며, 대만 독립 세력에 어떠한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중국 인민의 영토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과소평가해선 안 되며, 대만해협의 평화를 매장시키는 파괴적인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그는 "미측이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고 약속한 만큼 중국의 주권과 영토보전을 존중하고, 내정간섭을 중단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워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대중 추가 관세도 조속히 철폐하고 중국 기업에 대한 일방적 제재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왕 부장은 미측이 미중 관계에 '충돌을 막는 가드레일'을 언급했다면서 "각자 약속한 바를 충실히 이행하고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며 장애물을 제 때 제거하고 길을 터줘야 양국 관계가 탈선하거나 통제 불능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드레일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양국 정상 합의를 이행할 채널을 만들어 각 영역에서의 이견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Δ미국의 잘못된 대중 정책과 언행 중 바로잡을 것 Δ중국의 관심 중점 사안 Δ중국의 중점 관심 법안 Δ양국간 협력할 8개 분야 등이 적힌 4개의 리스트를 미국측에 제시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신화통신은 블링컨 장관이 미국의 대중 정책을 소개하면서 "대중 신냉전과 중국 체제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중국 공산당의 집권 지위에 도전하지 않고, 중국 포위를 추구하지 않으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고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7월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김현 특파원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미가 선순환한다는 구상도 제시했으며, 양측은 한반도 정세 등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회의 후 양측이 내놓은 언급들은 양측간 날선 신경전에 무게가 실리지만, 양측 모두 이번 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과 올 가을 시 주석의 3기 집권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중국의 정치적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양측이 '갈등 관리 모드'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블링컨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관계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논의가 유용하고 건설적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미국은 중국과의 대화 채널이 계속 열려 있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신화통신도 "양측은 미중 관계 및 공통 관심사인 국제·지역 현안에 대해 포괄적이고 깊이 있으며 솔직하고 장시간 동안 소통했다"며 "양측은 이번 대화가 실질적이고 건설적이며, 상호 이해 증진과 오해 및 오판을 줄이고 양국간 미래 고위급 교류 여건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이번 회동은 지난달 10일 싱가포르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계기에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 간 만남, 지난달 13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의 룩셈부르크 회동에 이은 것이다.

gayunlov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