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횡령사건 속출..공금은 내 쌈짓돈?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올해 들어 기업과 관공서를 가릴 것 없이 대형 횡령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억' 소리 날 정도의 거액을 마구 빼돌려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 도박이나 사치생활에 탕진하다 꼬리가 잡히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데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 횡령 사고들,
이재동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공금을 쌈짓돈 쓰듯…꼬리에 꼬리 무는 대형 횡령 / 이재동 기자]
새해 벽두부터 터진 오스템 임플란트 횡령 사건.
2,215억원에 달하는 상장사 사상 초유의 횡령 사건에 한 때 주식 거래까지 중단되며 투자자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이모 씨 / 전 오스템임플란트 재무팀장(지난 1월)> :(왜 횡령하셨습니까?) ……"
신용이 생명인 금융권에서도 횡령 사건은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은행에서는 직원이 외국에 지급해야 할 600억원 넘는 공금을 빼돌려 절반을 선물 옵션 상품에 투자했다가 잃은 것으로 조사됐고.
<전모 씨 / 전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직원(지난 4월)> "(횡령액 다 쓴 게 사실인가요?)……"
KB저축은행, 모아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을 비롯해 전국 지역 농협 곳곳에서도 많게는 100억원 가까운 고객 돈이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직사회도 횡령 사건의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서울 강동구청 7급 공무원 김모씨는 폐기물처리시설 투자 유치금 115억을 횡령해 1심 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밖에도 계양전기, LG유플러스, 아모레퍼시픽, 신한은행 등 특정 업종과 관계없이 잊을만하면 횡령 사건은 터져 나왔습니다.
피의자들은 횡령의 상당액을 주식이나 파생상품, 가상화폐 투자에 쓰거나 도박으로 탕진해 피해 복구가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 피해를 주주 아니면 고객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 "재무 보고라든지 이런 것을 믿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회사가 갖고 있는 신뢰성이 떨어지고, 기업의 현재 가치뿐 아니라 미래 가치도 떨어뜨리고요. 그러면 투자자들이 투자도 안 할 것 아닙니까."
검찰청의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2014년 3만8,646건이던 형법상 횡령 범죄는 해마다 늘어 2020년에는 6만539건으로 집계됐습니다.
각 기관은 횡령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과 민간 영역 할 것 없이 연이어 터지는 횡령 사건에 총체적인 내부통제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이재동입니다.
[이광빈 기자]
그렇다면 이런 횡령 범죄가 최근 특히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업 재무관리에 대한 감시 체계가 부실하다는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요.
최근 들어 월급보다는 주식 같은 투자 수익에 '올인'하는 사회풍조가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입니다.
구하림 기자입니다.
[한탕주의? 직업윤리 부재?…횡령 범죄 급증 '왜'? / 구하림 기자]
올 들어 발생한 대형 횡령 사건의 공통점은 피의자들 대다수가 횡령한 회삿돈을 주식이나 가상자산에 투자했다는 점입니다.
2,000억원을 빼돌린 오스템임플란트 직원은 주식 투자와 부동산 구매에 회삿돈을 썼고, 서울 강동구청 주무관도 주식투자에, 우리은행 직원들은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며 아모레퍼시픽 직원 일당은 가상자산 투자에 횡령액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투자 붐이 일면서, 일단 회삿돈을 빼내 투자 수익을 낸 뒤 원금을 채워놓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승재현 /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주식시장이라든가, 워낙 활성화 돼있어서… 10만원 횡령했다가 다음 날 10만원 집어넣는 게 전혀… 합법적 수단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수단을 갖고도 손해 보지 않는 시장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횡령을) 하고자 하는 유혹이 발생하겠죠."
하루하루 성실히 일해 돈을 모으기보다는 '한 번에 많이 벌자', 일명 한탕주의가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퍼진 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최근 2, 3년 사이 벼락부자, 벼락거지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투자를 잘하면 한순간에 부자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갑자기 거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입니다.
<이소정 / 서울 양천구(금융권 종사자)> "주식이라는 게 저희가 매일매일 일개미처럼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에 비해서 어마어마하게 큰돈이고… 악순환 같아요. 일해서 버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이 가치가 없게 느껴지고…"
이런 상황에서 고객이나 회사 계좌에 접근 권한을 갖게 된다면, 또 제도적 감시까지 미비하다면 횡령 범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은행연합회가 지난해 은행 이사회의 내부통제 역할을 강화하는 내부통제기준을 개정했는데, 과연 실제로 현장에서 어느 정도 강도로 지켜질지는 미지수입니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역시 금융기관에 대한 정기, 수시검사를 하고 있지만 내부 시스템을 훨씬 잘 알고 있는 실무자의 횡령을 원천봉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올해 언론 보도로 알려진 횡령 사건 피해 금액만 수천억원… 투기 과열 풍조와 상대적 박탈감 확산이 뒤섞인 시대, 지금도 누군가는 남몰래 회사의, 고객의 돈을 빼돌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TV 구하림입니다.
[코너 : 이광빈 기자]
해외에서는 더욱 규모가 큰 황당한 횡령 사건들이 발생해왔는데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횡령 사건 중 하나는, 1999년 보험자산 관리인이 30억 달러, 현재 가치로 한화 4조원에 가까운 고객 돈을 빼돌린 금융사기극입니다. 미국 5개주, 12개 중소보험회사를 상대로 수십개의 가명을 사용해 사기 행각을 벌였습니다.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행방불명됐다가 4개월 만에 독일에서 덜미가 잡혔습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기업들을 위한 재난지원금을 노린 수백억원대의 횡령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에서 거주하던 부부는 여러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정부로부터 150여차례에 걸쳐 2천만달러 상당의 구호 대출을 받았습니다. 횡령한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부부는 당국에 발각되자 10대 자녀 3명에게 "작별이 아니라 짧은 헤어짐"이란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중국에서는 지난 2001년 4억8천500만달러(6천300억원)를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중국은행 광둥지점장이었던 쉬차오판이 벌인 행각이었습니다. 1949년 중국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의 은행자금 횡령 사건이었습니다. 쉬차오판은 공금 횡령 의심을 받자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17년 만에 검거돼 중국으로 강제 송환됐습니다. 쉬차오판은 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회삿돈을 횡령해 가상자산을 사들였다가 덜미가 잡히는 일은 해외에서도 빈번합니다.
지난해 말 일본 한 보험회사의 회사원이 회삿돈 1천700억원을 횡령해 비트코인을 구입했습니다. 행각이 발각되기 전까지 8개월간 암호화폐의 가치는 17%가 올랐는데요. 회사원이 사들인 비트코인은 미국 FBI가 압수해 일본을 반환됐습니다.
독일에서는 지난 2009년 슈퍼마켓 체인 점원이 단돈 2천원도 안 되는 돈을 횡령했다가 해고되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독일에서는 플라스틱병과 유리병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음료수병 가격에 보증금을 포함시킵니다. 음료수를 마신 뒤 빈 병을 슈퍼마켓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줍니다. 그런데 슈퍼마켓 계산원이 2병의 보증금 1.3유로를 횡령했다가 해고됐습니다. 독일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이를 놓고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금융권의 경우 수십억유로를 날리고도 경영진들이 건재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푼돈 때문에 직원을 해고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 전역에서는 이 사건을 놓고 해고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게 벌어졌습니다.
거액 횡령범들은 덜미가 잡힌 뒤 대체로 돈의 대부분을 사용해 남은 돈이 별로 없다고 오리발을 내밉니다. 거짓말인 경우가 적지 않지만, 범죄수익금이 제대로 추징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입니다.
횡령금을 써버리거나 숨긴 뒤 몇 년만 징역살이하면 된다는 계산이 횡령을 부추긴다는 지적입니다.
윤솔 기자입니다.
[숨기면 그만? 못받은 범죄추징금 31조…처벌도 미미 / 윤 솔 기자]
지난 2011년,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서 발견된 현금 110억 원.
자금은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벌어들인 범죄 수익금이었습니다.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 돈의 행방은 알 수 없었습니다.
경제범죄로 발생한 불법 수익은 추징하도록 돼 있고 실제 법원도 추징을 선고하지만, 작정하고 숨기면 이렇게 찾아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올해까지 미납된 추징금은 31조 원에 달합니다.
지난 2015년에 비하면 6조 원가량 늘어난 건데 추징금 환수율은 1%가 되지 않습니다.
횡령을 결심한 사람들에겐 이런 현실이 범죄 수익을 숨겨놓고 몇 년만 버틴다면 된다는 생각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웅혁 /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많은 경우 이미 다 소비를 했거나 혹시 다른 곳에 은닉해서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합리적으로 따져보게 되면 사실상 오히려 이득이 되는 범죄다…"
돈을 탕진했다고 주장해도 실제로는 돈을 숨긴 경우가 적지 않고, 이를 위해 횡령한 자금을 세탁할 여지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끝까지 횡령액을 추징할 수 있게 추적을 강화하는 동시에,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횡령 배임 범죄 양형 기준을 보면 50억 원 이상에서 300억 원을 횡령했을 때 기본 징역 4년형에서 7년형, 300억원 이상인 경우는 기본 5년에서 8년형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낮은 처벌을 받을 여지가 적지 않습니다.
<엄태섭 /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 "범죄 수익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나 소급 가담했다거나 이런 것들을 감경 요소로 보고 있거든요…횡령이나 배임을 통해서 얻은 금원을 제3자에게 전달해버리거나 은닉해서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을 뿐인 경우가 많고…"
공금을 개인 쌈짓돈처럼 유용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는 횡령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추징부터 처벌까지 적극적인 제도 손질과 집행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연합뉴스TV 윤솔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국제범죄통계에 따르면 횡령범죄는 2011년 2만 7,882건에서 2020년에는 6만539건으로 최근 10년 새 약 117%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내에 다른 경제범죄의 발생 건수와 비교해, 무려 2배 이상이나 높은 수준인데요.
횡령 금액 또한 작게는 억대로 시작해 많게는 수천억 원에 이르기까지… 점점 커지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횡령범죄의 증가 원인을 '내부통제 미비', '낮은 처벌 수위', '한탕주의' 이렇게 3가지로 분석했습니다. 횡령이 '유행'이 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데, 횡령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이 시급해 보입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집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횡령 #범죄추징금 #벼락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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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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