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전통주가 아니냐구요".. 막걸리의 항변 [이슈 속으로]

이강진 2022. 7. 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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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업계, 분류 기준 재정립 요구
온라인 판매 덕택 체급 높인 '전통주'
무형문화재·식품명인이 제조하거나
지역생산 농산물 주원료 사용 시 인증
주세 경감·시설기준 완화 등 혜택
박재범 소주는 되고 장수막걸리 불가
전문가 "전통주·지역특산주 분리를"
국세청, 전통주 산업 활성화 추진
주류 무역 적자 상방.. 2021년 1.2兆
관광계 판로 주선·국산 효모 보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은 온라인상에서의 주류 판매를 금지하지만 ‘전통주’는 예외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술의 표상인 막걸리는 온라인 구매가 가능할까. 현행법상으로는 가능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구매하려는 막걸리가 법에 규정된 전통주 요건을 갖췄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주류업계에선 전통주 분류 기준을 놓고 “개념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전통적 방식으로 제조됐으나 국산 농산물을 이용하지 않은 술은 전통주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전통주로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와인·진 등이 오히려 법적 요건만 맞으면 전통주로 분류되는 상황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와 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개념 재정립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법적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 허용·주세 경감

전통주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혼술’(혼자 마시는 술) 트렌드와 온라인 구매 활성화, 2030세대를 중심으로 커진 관심 등에 힘입어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해 전국 19∼59세 성인 2000명(월 1회 이상 주류 소비자이면서 6개월 이내 전통주 음용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통주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는 54.8%로,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49%)과 비교해 5.8%포인트 상승했다.

정부가 원칙적으로 주류의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면서도 전통주는 판매를 허용하는 이유는 ‘국산 농산물 소비 확대를 통한 농업인 소득 증가’와 전통주 산업의 보호·육성 등이다. 전통주로 분류되면 주세 경감, 시설기준 완화 등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현행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전통주산업법)과 주세법에 따르면, 전통주는 크게 3가지 개념으로 분류된다. △주류부문의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하는 술(민속주) △주류부문의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제조하는 술(민속주) △농어업 경영체 및 생산자 단체가 직접 생산하거나 주류 제조장 소재지 관할 또는 인접 시·군·구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하는 술(지역특산주) 등 3가지 항목 중 하나에 해당하면 전통주로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외에 예로부터 전승돼 오는 원리를 계승, 발전시켜 진흥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술은 ‘전통주 등’으로 따로 분류된다.

◆원소주는 ‘지역특산주’, 장수생막걸리는 ‘전통주 등’

최근 품절 사태까지 부르며 인기를 끈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는 전통주 중 ‘지역특산주’로 인정돼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원소주는 농업회사법인 원스피리츠가 강원 원주산 쌀 ‘토토미’로 만든 증류식 소주다. ‘미국인이 만든 전통 소주’로 불리며 화제를 모은 ‘토끼소주’ 역시 충북 충주에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고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제조함으로써 지역특산주로 인정받았다. 현재 인터넷상에서는 지역특산주 요건에 맞춰 제조된 와인·진 등 다양한 종류의 술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1962년 서울지역 50여개 제조장이 함께 설립한 서울탁주제조협회에서 만든 ‘장수생막걸리’는 법적 전통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온라인 판매 등 관련 혜택을 받지 못한다. 전통 발효기법인 ‘생쌀 발효법’으로 생산하는 국순당의 ‘백세주’도 마찬가지다. 국산 농산물과 수입 농산물을 함께 사용하거나 농업회사법인이 아닌 경우 등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대신 ‘전통주 등’으로 분류돼 정책적 지원 대상에는 포함된다.

지역특산주에도 민속주와 동일한 혜택이 부여된 배경으로는 농업의 부가가치 상승 및 농가소득 증대 기여 등이 꼽힌다. 다만 소비자들이 흔히 전통주라고 생각하는 술과 법적 전통주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하는 만큼, 정부도 ‘제3차 전통주 산업발전 기본계획(2023∼2027년)’ 준비와 함께 전통주 개념 재정립 논의에 착수했다.
◆“전통주·지역특산주 개념 분리 필요”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통주와 지역특산주의 개념을 분리하는 방향 등이 거론된다. 전통주의 범주에 지역특산주가 포함됨에 따라 발생하는 혼란을 둘을 분리함으로써 해소하자는 것이다.

전통주 연구자인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는 “(온라인 판매 등의) 혜택은 그대로 가되, 지역특산주가 (전통주와) 분리돼야 현재 제기되는 논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사는 “국산 농산물 또는 지역 농산물을 쓰는 일반 (주류) 업체들도 세금 혜택 등의 지원을 하는 방향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통주업계에서는 전통주 개념 재정립에는 동의하지만 온라인 판매 등 혜택 대상을 확대하는 데에는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 업체들까지 동일한 혜택을 받게 될 경우, 전통 방식으로 술을 생산하는 소규모 영세 업체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성호 한국전통민속주협회장은 “지역 농산물만 쓰면 무조건 지역특산주로 해 주는 등 혜택 범위를 확대할 경우 큰 업체들이 (소규모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면서 영세 업체들이 피해를 볼 것이 뻔하다”며 “기존의 혜택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명칭에 대한 재정립은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우리 술 ‘글로벌 酒도권’ 잡기 팔 걷은 정부

주류 무역수지 적자 폭이 점차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세청이 전통주 산업 육성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8일 업계 등에 따르면 국세청은 전통주 수출과 국내 유통 채널 확보 등 주류 산업 육성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 중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 등 자료 수집이 선행돼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종합대책은) 올해 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올해 하반기 수출 설명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 5월 한국전통민속주협회 등 전통주 제조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당시 전통주 업계는 전통주에 대한 주세신고 편의 제공, 알코올 도수 허용 범위 확대 등 다방면에 걸친 제도 개선 및 세정 지원을 국세청에 요청했다. 국세청도 업계의 건의 사항을 바탕으로 개선 가능한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국세청은 전통주 육성 및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사진=뉴시스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전통주 반출량은 1만3031㎘로 국내 전체 주류(290만821㎘)의 0.45% 수준에 불과하다. 아울러 지난해 주류 무역수지 적자는 10억6396만7000달러(연평균 환율 적용 시 약 1조2000억원)로 2019년(6억4790만4000달러)과 2020년(7억8909만5000달러)보다 심화한 상황인 만큼, 와인·위스키 등을 대신할 우리 술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은 국내 항공사·호텔·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에도 전통주 판로를 열 수 있도록 거래선을 주선하고, 품질 인증 제도 도입을 통해 프리미엄 전통주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올해 초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과 공동으로 개발한 주류용 국산 효모를 전통주 업체에 보급하고, 이를 이용한 양조 기술을 영세 업체에 제공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국내 효모시장 규모는 연 230억원(약 8000t) 수준으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외화 낭비 및 국산 주류 전통성 훼손 등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국세청은 국립생물자원관과 함께 자생효모 균주 채취 및 양조 적합성 연구 등을 통해 발굴한 6종의 우수 효모를 지난달부터 국내 주류업체에 보급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금은 효모를 전량 수입해서 쓰고 있는데, 개발한 효모를 양산화해서 많은 업체가 관심을 갖고 사용하면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최근 문의 전화도 많이 오는 등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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