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은지 5년 됐는데.. 엄마의 뼈에 바람이 들었다 [토닥토닥엄마건강]

김희원 2022. 7. 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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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후풍 : '보송보송'한 피부가 중요하다
관절염과 달리 시리고 아린 통증..우울감도
불현듯 찾아올 수 있어..산욕기 관리가 관건
"피부 젖은 상태에서 바람쐬면 관절 나빠져"
방치 땐 고생.. 관절에 좋은 음식 먹고 스트레칭
극복 위해선 "남편 등 가족 이해와 도움 절실"
“나 요즘 너무 힘이 없고 몸 여기저기 아파서 한의원에 갔는데….”
“응, 갔는데?”
“산후풍이래.”
“무슨 소리야. 너 애 낳은지 5년 됐잖아?”
“내 말이.”
 
정확히 4년 8개월 전 쌍둥이를 낳은 친구 남씨가 최근 본인이 산후풍에 걸렸다고 했다. 황당해서 ‘이렇게 늦게 산후풍이 올 수 있냐’고 물었더니 한의사 선생님이 “산후조리가 부실한 상태에서 큰 문제가 없어 몇 년 버티다가 갑자기 환경이 변화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중에 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단다.

출산 후 나타난다고 해서 이름이 산후풍인데 나중에 나타나기도 한다니. 그것보다, 산후풍이 정확히 뭐지? 뼈마디가 쑤시면 다 산후풍인가? 그럼 나한테도 올 수 있는 것 아닌가? 두려운 마음으로 산후풍의 정체를 파헤쳤다.

사진=gettyimagesbank 제공
◆산후풍, 관절염과 뭐가 달라?

어른들은 예로부터 ‘출산 후엔 뼈에 바람이 들기 쉽다’며 옷을 껴입고 땀을 내야한다고 했다. 나도 첫째를 낳았을 땐 봄인데도 내복에 수면양말까지 야무지게 챙겨 입었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다들 그렇게 하라니 따랐다.

둘째를 낳고는 좀 자만했다. 조리원 생활복만 입고 맨발로 돌아다니던 내게 조리원 선생님은 “바람 든다. 나중에 크게 고생한다”며 장목 양말을 꼭 신으라고 말했다.

그게 ‘산후풍’을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뼈에 어떻게 바람이 들어간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에어컨 바람에 손·발목이 시큰거릴 땐 ‘조리원에서 양말을 안 신어서 그런가…’ 때 늦은 후회가 몰려온다.

산후풍은 왜 이름에 풍(風)이 들어가게 됐을까. 바람은 형태가 없고 변화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출산 후 몸에 나타나는 증상은 여러가지인데, 통증은 몸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나타나며 강도와 증상도 다양하다. 온도변화에 민감해져 더웠다가 추웠다가 하며, 기운이 없고 우울하기도 하다. 이때문에 산후에 겪는 통증 및 각종 증상을 통칭해 산후풍이라고 부르게 됐다.

산후풍은 서양의학은 물론 한의학에서도 정식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다. 한의서에도 산후풍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한의학계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 민간에서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양의학엔 왜 산후풍과 같은 진단명이 없을까. 서양여성들에겐 산후풍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한의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산후풍은 일본, 한국, 중국 등 주로 동아시아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며 다른 지역 여성들이 산후통증을 겪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산후풍의 주요 증상은 관절통이지만 관절염과는 다르다. 신생아를 기르는 엄마들이 흔히 앓는 질병이 손목, 무릎, 허리 등의 관절염이다. 출산 후 6개월 동안 분비되는 릴렉신 호르몬 때문에 유연해진 뼈들이 아기를 키우느라 혹사(?) 당하면서 쉽게 고장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벼운 염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퇴행성 관절염, 류마티스 관절염이 오는 산모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통증의 근거가 명확히 ‘염증’이기 때문에 소염제를 비롯한 약물과 물리치료 등으로 치료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환자는 분명히 통증을 느끼는데 염증수치 등 객관적 지표들이 정상일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 한의원뿐만 아니라 양의원 선생님들도 “산후풍인 것 같다”고 말한다.

산후풍의 통증은 관절염과는 다르다. 보통 “시리다” 혹은 “아리다”고 표현된다. 갑자기 찬 바람에 노출되는 등 기온변화가 클 때 통증이 더 심해진다. 산후풍을 호소하는 산모들은 “바람이 불면서 갑자기 발목이 에는 듯 아팠다”, “여름인데도 오한이 들고 뼛속까지 저릿저릿한 느낌이 든다”고 증상을 설명한다.

사진=gettyimagesbank 제공
◆산후풍의 시작 ‘산후조리 불량’

한국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산후풍을 겪지는 않는다. 산후풍은 왜, 어떤 사람에게 생길까.

30년간 산모를 진료하며 산후통증에 대해 연구한 이진무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부인과 교수는 산후풍의 원인에 대해 “산후조리를 충분히 잘 하지 못했거나 산후조리 기간 무리해서”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 말하는 산후조리 기간은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기간이 아니다. 보통 몸이 회복되는 기간으로 보는 100일간의 ‘산욕기’, 그리고 아이에게 손이 많이 가서 엄마들이 자신을 잘 돌볼 수 없는 2년정도까지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산모의 몸은 회복 과정에서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체온이 37도에 가깝게 오르고 땀을 많이 흘린다. 임신 중 늘어났던 체수분이 땀과 대소변을 통해 배출되면서 붓기가 빠지고 몸이 회복된다.

땀이 나면 체온이 떨어지고 피부 온도도 낮아진다. 그런데 피부가 젖은 상태에서 바람을 쐬면 급격히 한기를 느끼게 된다. 몸이 회복되기 전에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한의학에선 관절에서 기가 빠져나가 진액이 부족해진다고 한다. 이 상태로 산욕기가 지나면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급격한 기온 변화가 있을 때마다 ’뼈가 시리는’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자율신경실조(불균형) 역시 관절통과 함께 산후풍의 대표 증상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람은 기온의 변화에 따라 춥고 더움을 느끼는데, 출산 후엔 기온변화를 정상으로 느끼는 폭이 좁아져 따뜻한 정도에서 더움을, 시원한 정도에서 추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심할 때는 식은땀을 흘리거나, 온 몸에 기운이 없고 무력감과 우울감이 든다. 몸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면 산욕기 이후에도 컨디션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자율신경실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산후조리가 부실하면 산후풍 증상이 나타나는데, 제대로 회복하지 않을 경우 산욕기 이후에도 증상이 지속되거나, 잠재돼 있다가 수년 뒤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출산 4년 8개월 만에 산후풍이 나타난 친구의 상황이 납득이 간다. 쌍둥이를 낳은 남씨는 아이 둘을 돌보느라 산후조리를 잘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도 ‘엄마니까 그러려니’하고 지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바쁘고 신경쓰이는 일이 잇따라 터지면서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친구들 모두 그의 건강을 염려했는데 그게 산후풍으로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진=gettyimagesbank 제공
◆잘 먹고 잘 쉬기…가족들 도움 필수

산후풍을 단번에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일단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산후풍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산후풍 예방법은 곧 산후조리를 잘 하는 법인데 이진무 교수는 “몸을 보송보송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산후조리를 두 번 해본 사람으로서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산모가 땀을 많이 흘려 몸이 젖으면 체온을 빼앗기고 한기가 쉽게 드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샤워를 자주 하고, 옷이 눅눅하지 않도록 자주 갈아입고, 바람이 직접 피부에 닿지 않도록 긴 옷을 입고 양말을 신으라는 것이다. 그는 “몸을 보송보송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초기 산후풍 환자의 70∼80%는 갑자기 증상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주의할 점은 옷을 너무 많이 껴입지 말라는 것이다. 옷을 많이 입으면 땀이 더 많이 나고 피부가 더 축축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샤워를 자주하되 너무 더운물로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뼈가 시리다고 한증막 등에서 일부러 땀을 빼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샤워한 뒤에는 피부가 찬바람을 쐬지 않도록 몸을 잘 말리고 옷을 다 입은 뒤 밖으로 나오는 것이 좋다. 그리고 관절을 덜 써야 한다.

이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관절을 덜 쓰라니. 하루 4시간만 자고 버티던 수습기자 시절, 몸살로 병원을 찾았더니 “잠을 많이 자라”는 처방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교수는 “물론 수유도 해야하고 아기 목욕도 시켜야하는 산모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면서 “틈틈이 유튜브 등을 보며 산모 관절에 좋은 스트레칭을 하고 활동을 할 때는 짧게 끊어서 하라”고 팁을 알려줬다. 몸이 약해진 산모는 한번 기력이 떨어지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예전에 집안일을 1시간 하고 30분 쉬었다면, 이제는 20분 하고 10분 쉬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100일 때까진 산모란 생각을 갖고 매우 신경써서 관리해야 하며, 적어도 1∼2년은 장시간 무리한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면서 “산후조리는 여성의 평생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산후풍이 증상이 나타났다면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으로 여기지 말고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방치한 기간만큼 회복기간도 오래 걸린다. 영양적으로 균형잡힌 식사를 충분히 해야하며 관절에 좋은 음식, 영양제 등을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면서 관절 스트레칭을 틈나는대로 해주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가족들의 이해와 도움’이 산후풍을 극복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들은 집에 들어갔을 때 집이 깨끗이 청소돼 있으면 좋아하지 마시고 아내를 걱정해야 한다.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 얘기해야 한다”면서 “적어도 1∼2년은 예민해진 산모를 이해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당부에 눈물이 찔끔 난 것은 왜인지. 출산 전 산후풍에 대해 부부가 함께 공부했더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알더라도 출산 후 관절을 아끼고 충분히 산후조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만 이 글을 읽는 엄마들이 이제라도 자신의 관절건강을 위해 영양과 시간을 투자하길 바라며, 남편에게도 살포시 링크를 보내주시기를.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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