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혼자 안 돼".. 에스토니아에게 '동맹=생존'이었다

김태훈 2022. 7. 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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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냉전이 막바지에 이른 1988년 당시만 해도 소련(현 러시아) 점령 아래에 있던 에스토니아의 11살 소녀가 모처럼 부모 손에 이끌려 동독 동베를린 관광을 갔다.

독일이 자유민주주의 서독과 공산주의 동독으로 갈라진 것처럼 베를린도 도심 중앙의 베를린장벽을 사이에 두고 분단돼 있었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뜨거웠던 에스토니아는 1991년 소련 해체와 동시에 독립의 꿈을 이뤘고, 그날 동베를린에서 함께 자유의 냄새를 맡았던 부녀는 둘 다 주권국가 에스토니아의 총리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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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한 동맹 없어 1939년 소련에 국권 강탈
소련 무너지고 독립 달성한 뒤 나토·EU 가입
칼라스 총리 "다시는 홀로 남지 않기로 결심"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오른쪽)가 8일(현지시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에스토니아와의 친선을 위해 모인 비즈니스, 정치, 문화 등 각계 인사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칼라스 총리 SNS 캡처
동서 냉전이 막바지에 이른 1988년 당시만 해도 소련(현 러시아) 점령 아래에 있던 에스토니아의 11살 소녀가 모처럼 부모 손에 이끌려 동독 동베를린 관광을 갔다. 독일이 자유민주주의 서독과 공산주의 동독으로 갈라진 것처럼 베를린도 도심 중앙의 베를린장벽을 사이에 두고 분단돼 있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딸에게 장벽 너머 서베를린 쪽을 가리키며 “깊게 숨을 쉬어보아라. 이것이 자유의 냄새란다”라고 말했다.

1977년생으로 올해 45세인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독일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던 중 들려준 일화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뜨거웠던 에스토니아는 1991년 소련 해체와 동시에 독립의 꿈을 이뤘고, 그날 동베를린에서 함께 자유의 냄새를 맡았던 부녀는 둘 다 주권국가 에스토니아의 총리 자리에 올랐다.

칼라스 총리는 8일(현지시간) 세계 각국에서 에스토니아의 ‘친구’를 자처하며 이 나라 수도 탈린에 모여든 이들과 미팅을 가졌다.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비즈니스, 정치, 문화 등 활동 영역도 제각각인 이들을 향해 칼라스 총리는 “우리가 국권을 회복했을 때 우리는 결심했다,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기로(never alone again)”라고 외쳤다. 이어 에스토니아가 서방 세계의 일원이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및 유럽연합(EU)의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국내총생산(GDP)의 상당한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쓰고 있음을 소개하며 국제사회에 우크라이나 원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칼라스 총리의 언급은 에스토니아처럼 작고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있는 나라가 독립을 유지하며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동맹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에스토니아는 면적은 한반도의 약 5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도 우리나라 울산광역시보다 조금 더 많은 122만명가량이다. 더군다나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안보를 위협받고 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왼쪽)가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와 나란히 참석하는 모습. 에스토니아는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브뤼셀=EPA연합뉴스
실제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소련 스탈린 정권은 에스토니아와 인근 라트비아·리투아니아까지 발트3국에 “주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불응하면 소련군을 진주시키겠다고 협박했다. 그때 발트3국의 운명에 관심을 기울인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나치 독일은 소련과의 비밀조약에서 발트3국을 소련 영향권으로 인정했고, 영국·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느라 북유럽이나 동유럽 상황에 개입할 형편이 못 됐다. 결국 발트3국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이 소련에 강제로 병합되었고, 1991년까지 공산주의 체제를 강요당했다.

변변한 동맹이 없어 독립을 잃고 자유도 빼앗긴 에스토니아 역사를 잘 아는 칼라스 총리는 앞서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적극 지지했다. 나토가 두 나라와 가입 의정서를 채택한 직후 에스토니아 의회는 신속히 이 의정서를 비준했다. 칼라스 총리는 또 그간 나토와 EU에서 대(對)러시아 제재 및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력히 촉구해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그의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정권을 둘러싼 잇단 스캔들의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낙마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서 더는 존슨 총리의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가운데 세계 각국의 시선은 이제 ‘자유의 투사’를 자처하는 칼라스 총리한테 쏠리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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