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지킴이' 된 독일 청년들 "영구 보존해 역사 기억"
독일 카셀에도 '평화의 소녀상'
카셀대 캠퍼스 안에 소녀상 설치
베를린 이어 공공부지에 두번째
"잘못된 역사에 대한 저항의 상징
우리 모두 아직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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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상은 전세계 전시 성범죄 희생자들의 고통을 추모하는 기억의 공간이다. 또한 스스로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그러한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삶을 바쳐온 생존자들의 특별한 용기를 기린다.”
지난 8일(현지시각) 독일 중부 헤센주 카셀대 캠퍼스 안에 이런 내용의 독일어 비명이 새겨진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이 설치됐다. 비문은 “일본의 전시 성범죄는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할머님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증언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는 수십년간 참아 왔던 전시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침묵을 깬 사건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카셀 소녀상은 2020년 9월 베를린시 미테 지역에 이어 독일에서 두번째 공공부지에 설치된 소녀상이다. 지난 1월 카셀대 총학생회(ASta)가 “베를린 소녀상을 둘러싼 문제와 어려운 상황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우리 캠퍼스에 소녀상을 설립해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며 독일 코리아협의회에 설치를 문의해 왔고,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김서경 부부작가가 이런 뜻을 전해 들은 뒤 흔쾌히 소녀상을 기증했다. 카셀대학 본부 쪽은 설치 공간 사용을 영구 허가해 소녀상이 이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했다.
대학 캠퍼스 안에 소녀상 영구 설치를 이끈 토비아스 슈노어 카셀대 총학생회장은 7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소녀상은 잘못된 역사에 대한 저항의 기억이자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캠퍼스 내 소녀상 영구존치에 담긴 뜻
―독일 대학에 뿌리내린 소녀상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나?
“소녀상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억압을 겪어야 했던 수십만명 여성뿐 아니라 현재 유럽에서도 (인종적인 이유로)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이고 약자라는 이유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짓밟혔다. 소녀상은 이 같은 역사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기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카셀에 소녀상이 영구적으로 남게 된 까닭이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난해 언론을 통해 일본 정부가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위해 압력을 넣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베를린 한인 커뮤니티와 연대 단체들의 저항에 깊은 감명을 받아 여기에 관련된 역사를 공부하고 들여다봤다.”
―일시적 전시가 아닌 영구 보존이다.
“영구 보존이 아니면, 가해자들이 철거를 노릴 수 있다고 봤다. 또 카셀은 연 관람인원이 500만명에 이르는 국제현대미술축제 ‘카셀 도쿠멘타’가 열리는 곳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이곳처럼 눈에 띄는 공공장소에선 가해자들이 이 동상을 모른 척할 수도, 철거를 시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설치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맨 처음 걱정은 지속가능 여부였다. 소녀상을 통해 강제 성매매와 국가폭력 문제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다음 세대 학생들이 계속해서 소녀상을 주제로 작업하도록 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설치 비용도 문제였다. ‘평화의 소녀상’ 작가 부부의 기증과 독일 코리아협의회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평화의 소녀상’은 열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에 짧은 단발머리를 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는 그러나 신발도 신지 못했다. 군인들에게 삶을 짓밟힌 채, 땅에 뿌리내리지 못한 소녀의 슬픔이 발뒤꿈치를 든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그러나 소녀의 어깨에는 평화의 새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의 옆 빈자리에 이번에는 독일 카셀대 청년들이 연대의 마음을 내려놨다.
―베를린과 뒤셀도르프 등에서 일본 정부의 압력으로 소녀상 철거가 시도된 일이 있다. 카셀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카셀은 반파시스트 도시이다. 이미 네오나치, 음모론자들에게 적극 맞서온 경험이 있다. 우리는 반동적 사고에 저항하도록 훈련돼 있다. 소녀상 철거 시도와 같은 행동이 이곳에서 이목을 끌지 못할 것이다. 또 평화의 소녀상은 중요한 역사적 정보이자 예술 작품, 학문이기도 하다. 독일 대학은 공적인 곳이고,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어느 나라 대사관이나 정부, 심지어 파시스트들이라고 하더라도 캠퍼스에서 소녀상을 철거하지 못한다. 그랬다간 대학에 더 많은 소녀상이 들어서게 될 거다. 그들의 압력이 전혀 두렵지 않다.”
―독일 역시 가해자로 아픈 과거가 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 일본의 식민지 청산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독일은 과거 홀로코스트로 인해 ‘기억 문화’가 확립돼 있다. 그러나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을 인정하는 데도 큰 차별이 존재한다. 일본 식민지 경우처럼 수십만명의 여성이 강제 성매매에 동원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짓밟혔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그들에 대한 연구나 추모는 없다. 식민주의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제국주의 범죄를 저질렀던 국가들은) 모두 자신의 죄책감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이해하고, 자각해야 한다는 과제와 씨름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수치심을 느낀 나머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다른 식민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식민주의는 구조적으로 인종차별적 사회불평등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이 범죄라는 것은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계속해서 설명하고 교육하려 한다. 우리 모두 아직 배울 것이 많다.”
평화의 소녀상이 해줄 일
최근 독일에선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 한국 내 극우보수단체들이 베를린 미테구에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에 맞서 지난 5일 한국의 정의기억연대와 독일 코리아협의회가 국내외 시민 3만1317명(단체 559곳)의 ‘평화의 소녀상 존치 지지 서명’을 받아 미테구청 쪽에 전달하기도 했다.
슈노어 총학생회장은 “보수단체들이 베를린 소녀상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철거 압력을 시도할 것이란 우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카셀 소녀상은 대학 공간 내부에 설치된데다, 수백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어서 그런 ‘방해 작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소녀상 관련 활동은 어떤 게 있나?
“소녀상 제막식(8일) 다음날인 9일 학술 프로그램에서 ‘이것이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레기나 뮐호이저·전시 성폭력 분야 학자)는 등의 주제 발표가 준비됐다. 다음 학기부터 성폭력 피해자(특히 전쟁 중) 문제에 대한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도 준비할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이 향후 이 같은 활동의 중심에서 역할을 할 것이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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