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코르셋' 없는 일터, 집에 가면 잠도 잘 오더라

한겨레 2022. 7. 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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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
게티이미지뱅크

때아닌 회사 자랑 좀 해야겠다. 우리 회사는 복장이 자유롭다. 캐주얼 착장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른바 ‘외모코르셋’이 없다. 얼평과 몸평을 하지 않고, 옷차림을 비롯한 겉치레를 중시하지 않는다. 저커버그식 단벌 패션도 가능하다. 핵심은 성별 불문이라는 거. 내게도 한동안 유니폼이 있었다. 흡습속건이 우수한 조거팬츠, 헐렁한 남방, 운동화였다. 왜 그런 옷 있잖은가. 거추장스럽지 않고 편안해 일에만 집중하기 좋은. 그런 옷을 매일 유니폼처럼 입어도 “외박했냐”는 말 따위 듣지 않는다. 그런 말 했다간 큰일 나는 곳이다, 우리 회사가.

예전 직장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염려(?)한다는 미명 아래 옷차림과 얼굴을 평가하는 일이 잦았다. 블라우스가 올드하다는 타박이며, 화장을 안 하니 부어 보인다는 핀잔이며, 안경은 쓰지 말라는 권유인지 훈계인지 모를 오지랖이며, 오늘은 어제보단 낫다며 은근 ‘멕이는’ 돌려까기며. 칭찬이랍시고 하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외모 평가는 여성들에게만 일상이었고,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 여성 기자는 안경 쓰고 마이크 잡으면 안 되지만, 남성 기자는 그래도 되는 때였다.

불면이 주제인데 왜 이런 얘길 하는가. 불면과 직장문화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무슨 관계인가. 일단 불면에 시달리면 아침잠이 소중해진다. 아니, 아침잠이란 모름지기 쿨쿨 잘 자는, 잠 많은 사람들이나 찾는 거 아닌가? 글쎄, 밤새 뒤척이다 동틀 무렵 까무룩 잠들어보라. 5분 간격 알람을 3개씩 맞춰놔야 한다. 5분짜리 얕은 잠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 일찍 잠들었어도 별이 총총할 때 깨보라. 이불 속에서 다시 잠들고자 애쓰는 나 자신과 사투를 벌이게 된다. 잔 것도 안 잔 것도 아닌 상태. 고도로 농축된 피곤함만 남는다.

이럴 때 꾸밈노동 없는 루틴이 도움을 준다. 예전엔 거울 보는 시간이 너무 아까우면서도 패션에 무신경하기 힘들었다. ‘선택 피로’로 가득한 아침이었다. 지금은 최소 30분, 길게는 1시간 더 잘 수 있다. 별 고민 없이 똑같은 옷을 꿰입어도 되고, 얼굴에 이것저것 바를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반드시 더 자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눈만 감고 있어도 괜찮다. 오은영 박사가 불면을 겪는 배우에게 말하길, “불을 끈 채 눈만 감고 있어도 수면과 90% 비슷한 효과가 난다”. 그마저 마뜩잖을 땐 유튜브 명상을 틀어놓는다. 전쟁 같은 부산함을 덜어냄으로써 하루를 간결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꾸밈노동을 강권하지 않는, 성인지감수성이 장착된 직장문화 덕이다.

“너 먹으러 왔어!” 얼마 전 점심시간, 회사 근처 식당에서 느닷없이 듣게 된 말이다. 나를 똑바로 보면서 저 말을 한 사람은 생면부지 남성이었다. 사람을 먹겠다니. 무슨 개소리인지? 알다시피 저 말엔 성적인 함의가 담겨 있다. 황당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동료들 앞에서 품위 따윈 내팽개친 채 드잡이라도 할까 봐 참았다. 오히려 화를 낸 것은 후배들이었다. “선배, 참지 마세요! 언제든 막 싸우셔도 돼요.” 든든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저깟 일은 신발창에 붙은 흙먼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러 수위의 성폭력을 겪으며 살아왔으나, 그때마다 내가 들어야 했던 건 이런 말이었으니까. “참아, 그 사람(새끼) 인생을 위해 봐줘.”

그렇다.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을 겪으면서도 이런 동료들의 연대와 지지 덕에 일할 힘을 얻게 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때로 나는 잠자리에 들며 생각한다. 아,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있구나. 직장에 얼평과 몸평, 성희롱과 성폭력만 없어도 이렇게 삶의 질이 상승하는구나. 사무환경은 사무실이 번지르르하거나 기깔나는 장비가 있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점이야말로 내가 만성적 불면에도 일을 지속하는 이유다. 불면이라고 다 같은 불면은 아니다. 직장 내 낮은 성인지감수성으로 유발된 불면에는 우울과 좌절이 깔린다면, 그게 배제된 불면은 대부분 업무를 더 잘해보려는 의욕 때문에 생긴다. 지금 겪는 불면은 물론 후자다. 불면을 유발하는 요인에 성인지감수성으로 인한 불필요한 피로감 따위는 포함되지 않는다.

동시에 울분이 솟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성은 왜 안전을 보장받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흡족함을 느껴야 하는가? 최근 포스코 성폭력 사건을 봐도 그렇듯 한국은 직장 내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데다 피해자의 상처보다 가해자의 장래를 걱정해주느라 여념이 없는 사회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불면증 유병률이 남성보다 1.5배 높고,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통계에는 이런 폭압적 직장문화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어쩌면 우리 회사는 유니콘 같은 곳, 지하 벙커 같은 곳인지 모른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여기 있을 뿐이고. 이심전심이라던가. 지금 이 순간 한 후배가 남긴 주옥같은 말이 떠오른다. 우리 회사가 성인지감수성을 중시한다는 점을 두고 한 말이다. “이런 건 유네스코문화유산, 아니 서울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돼요.” 쓰다 보니 회사 자랑이 된 글은 여기까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송구합니다.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

잠들기 전 다음날 업무를 떠올리거나 계획을 세우면 뇌가 각성돼 숙면하기 힘들다. 엠비티아이(MBTI) 중 계획형 인간인 제이(J)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주의하자. 깊은 고민도 불면의 주범이다. 당일 받은 스트레스는 취미활동으로 적절히 관리하며 해소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저부터가 잘 못하고 있네요.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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